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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한국식·일본식이 기묘하게 뒤섞인 고종 황제 장례식
1919년 2월 9일 덕수궁(경운궁) 함녕전에서 데라우치 총독을 비롯한 총독부 고위 관리가 참석한 가운데 일본 신관(神官) 주재로 일본 왕가의 장례의식인 봉고제가 열렸다. 고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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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한센병 환자 소록도 수용 … 죄도 없이 사실상 ‘무기수’ 생활
1947년 소록도갱생원에서 열린 환자와 자녀들 간의 면회식. 혹시 자녀가 감염될까봐 환자들은 멀찍이 떨어져 바람을 마주 대하고 섰다. ‘미감아’란 ‘아직은 감염되지 않은 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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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 보도사진전
한국사진기자협회 대전·충남지부(지부장 전우용)는 일선 사진기자들이 취재현장을 누비며 앵글에 담았던 생생한 사진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전·충남 보도사진전’을 18일부터 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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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독일인 음악가 에케르트, 대한제국 군악대장 되다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음악회를 마친 후 외국인 청중들과 함께한 한국 군악대원들. 1902년. 원내는 프란츠 에케르트. 에케르트는 한국에서 실직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회현동 자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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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 경찰, 생계 위해 거리 나온 ‘어린이 행상’ 단속 나서다
1910년대 서울 종로의 땔감장수를 찍은 사진. 10살 남짓한 아이 둘이 나뭇짐을 잔뜩 실은 소 한 마리씩을 끌고 와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캐러멜·과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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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구한말 ‘돌싸움’에 끼어들어 살인 저지른 미국인
돌싸움. 1880년대 이 ‘놀이’를 본 알렌은 “군인들이 보았다면, 이렇게 격렬하게 싸우는 주민들이 아주 훌륭한 군사훈련을 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기록했다. (『사진으로 보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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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외환은행 外
◆외환은행 ▶글로벌상품본부장 김재웅 ▶글로벌상품개발부 김태경 ▶론센터 조길종 ▶법규부 강철수 ▶사무지원부 안창용 ▶여신심사부 김상견 ▶외국고객부 장치규 ▶외환업무부 심영섭 ▶감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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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불에 탄 화신백화점, 6층짜리 ‘초고층’ 건물로 다시 태어나다
화재 직전의 화신백화점. 왼쪽이 ‘선전’ 건물을 증개축한 서관이고 오른쪽이 동아백화점을 매수한 동관이다. 1935년의 화재는 서관에서 일어나 동관으로 옮겨 붙었다. 화재 후 신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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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풍기문란’ 이유로 방아타령·춘향가 공연 금지
1902년 야주개(현 새문안교회 부근) 봉상사(奉常司) 자리에 세워진 협률사 극장. 5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이었는데, 최남선은 이 건물이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떴다고 썼다.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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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광장시장 평민 주주들, 주식 매집해 양반 사장 몰아내다
1920년대의 광장시장. 18세기 이후 동대문 안 배우개(梨峴·이현)는 ‘도성 삼대시’의 하나였는데, 광장주식회사는 이 자리에 창고와 상점 건물을 지어 근대적 시장을 설치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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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조선총독부, 경복궁 터를 잔디로 덮고 그 앞에 신청사를 세우다
조선총독부 신청사 건축 현장. 일제는 경복궁 내의 대다수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앞에 르네상스 양식의 위압적인 총독부 신청사를 지었다. 조선왕조의 ‘초라함’과 일본 제국의 ‘위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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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윤보선, 대통령 관저 명칭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변경
6·25전쟁 중 임시 수도 부산에서 환도하기 직전의 경무대 대통령 관저. 일제 강점기 이 건물을 지었을 때의 공식 명칭은 그냥 ‘총독 관저’였다(『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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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 ‘거북선’ 도안, 일제 방해로 인쇄 못 해
셔우드 홀이 처음 구상한 크리스마스 실 도안. 이순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발명하여 일본 침략자를 물리쳤다는 내용을 부기했다. 홀이 이런 도안으로 총독부에 협조를 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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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서울 상권 지배하던 육의전, 왕조와 함께 몰락하다
1910년대 말의 지전(紙廛). 육의전 상인들은 대개 망했지만 건물은 남았다. 조선지주식회사 설립 당시 이 건물 가액은 1만8000원 정도였는데, 당시 서울 일반 주택지의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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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식민지 조국 하늘을 날다
안창남은 1923년 오쿠리비행학교의 의뢰로 일본 정치가 호시 도루를 추모하는 인쇄물을 공중 살포하던 중 도쿄 인근 논바닥에 추락했다. 추락한 뒤에도 카메라 앞에서 당당한 포즈를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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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조선과 청나라 간 국경회담 결렬되다
1910년께 간도 용정 거리. 한국인의 간도 이주는 18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간도 이주자가 계속 늘어나자 이주를 엄하게 처벌하던 정부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190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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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황궁 주변엔 2층 건물 안 된다” 대한제국의 ‘고도제한’ 지침
1900년께의 경운궁 대안문(현 덕수궁 대한문) 주변. 왼편 앞에 팔레호텔이, 뒤쪽으로 자국 국기를 내건 영국공사관과 러시아공사관 건물이 보인다. 경운궁의 규모가 훨씬 컸지만, 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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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대추나무집 건너 최주사댁”… 집 찾느라 진땀 뺀 구한말 집배원
1895년의 체전부. 고깔모자 모양의 벙거지를 쓰고 우편행낭을 어깨에 멨다.온화하고 당당한 자세에서 ‘글을 아는 사람’의 풍모가 엿보인다.1884년 11월 17일 한성 우정총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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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세상 부러워하던 눈들, 서울을 보기 시작하다
서울 원서동 한옥 풍경. 옹기종기 아담한 한옥이 어깨를 맞댄 좁은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푸근해 보인다. [민음인 제공]정독 도서관, 덕수궁 돌담김, 삼청동길, 창덕궁, 청계천,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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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대한제국, 민심 달래려고 김장철에 ‘채소상인 체포령’
1900년대 서울 종로 네거리의 임시 채소시장 모습. 김장철에는 서울 전역이 채소시장으로 바뀌다시피 했다(『민족의 사진첩』).겨울은 생명에 적대적인 계절이다. 많은 생명체가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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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하의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 서러운 ‘가갸날’ 기념식
일제하의 학교 수업. 학생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교실 안의 글자는 한자와 가나뿐이었다. 일제 강점기 공교육에서 조선어 교육은 계속 축소되다가 끝내는 사라졌다(『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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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항일의 상징 장충단, 일제시대에 갖은 수모 당해
일제 강점기의 장충단공원. 일제는 장충단이라는 이름은 유지하되, 주변에 집창촌을 설치하는 등 이름에 깃든 항일의 의미에 모욕을 가했다(『사진으로 본 서울의 어제와 오늘』).국립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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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가 강요한 ‘교육칙어’, 모든 학생 의무적으로 암송
1910년대 보통학교 어린이들의 돗자리 짜기 실습. 교육칙어는 학문과 기예를 함께 강조했지만 한국인에게는 단순 기능을 가르치는 데에만 역점을 두었다(『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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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고종 ‘대한제국’ 선포 … 문화선진국 의지 국호에 담다
현재의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환구단. 고종은 독자적인 천하를 상징하는 원형 제단을 짓고 이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생활과 풍속·서문당)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