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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기고싶은 이야기들(427) 필자는 윤석오경무대 사계|황규면(제자는 윤석오)

    피난 수도 부산의 임시관저는60평 남짓한 일본식건물이다. 이 비좁은 건물을 한군데도 수리하지 않고 대통령부처와 측근 비서들이 사용했다. 아래층에는 응접실, 온돌방2개, 「다다미」

    중앙일보

    1972.04.06 00:00

  • (426)경무대 사계|황규면(제자는 윤석오)

    6·25로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았지만 국회의 피해가 특히 더했다. 정부의 수도사수공언과 국회자체의 사수결의 때문에 2백10명의 의원 중 62명이 피난을 하지 않고 서울에 머물렀

    중앙일보

    1972.04.05 00:00

  • (419)(46)황규면

    이대통령이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신 국방장관으로부터 한강방위선이 무너져 공산군이 수원을 향해 물밀 듯 내려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미24사단의 선발대인「스미드」기동부대

    중앙일보

    1972.03.28 00:00

  • (407)경무대사계|고재봉

    5월4일 새벽3시 소위 개성지구 38선 경비 인민군 대대 2천여명이 중화기로 개성시를 향해 남침을 자행했다. 이날 4시반쯤 개성시내 신관지서후방에서 전투가 벌어져 155고지와 1

    중앙일보

    1972.03.14 00:00

  • (399)제26화 경무대 사계(26)

    대통령이 되기 전 이 박사의 생활비는 태창방직의 백낙승 사장이 주로 댔다는 사실은 이미 얘기했다. 정부수립 전에는 매월50만원씩을 보내왔다. 그때 돈 심부름 주로 내가 맡아했었다

    중앙일보

    1972.03.04 00:00

  • (397)경무대 4계(24)|윤석오(제자 윤석오)

    이대통령은 경무대에 들어간 뒤에도 일상생활에 별 변화가 없었다. 아침 6시면 일어나 7시 반부터 8시 사이에 「토스트」와 우유나 홍차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들고 8시 반만 되면 중

    중앙일보

    1972.03.02 00:00

  • (388)|경무대 사계|윤석오(제자는 필자)

    좌익세력의 집요한 「테러」로 숱한 파란을 겪었지만 선거는 치러졌다 개표결과는 무소속85석, 이박사의 국민회 55석, 한민당 29석, 대회청년단 12석, 민족청년단6석, 이밖에 군소

    중앙일보

    1972.02.21 00:00

  • (352)발명학회(6)|육돈상

    (상) 과학 지식 보급회가 제1회 과학「데이」행사의 하나인 과학 지식 보급 좌담회 석상에서 싹튼 것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제l회 과학「데이」행사도 꽤 요란했거니와 특히

    중앙일보

    1972.01.10 00:00

  • 조계종·태고종 두 곳서 출간 준비|「불교성전」나온다

    우리 나라 불교도들의 정신적 양식이 되고 생활의 지침이 될 불교성전이 72년 상반기에 출간을 목표로 두 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한국불교의 양대 산맥인 대한 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

    중앙일보

    1971.12.29 00:00

  • (331)가요계 전이면사(11)고복수(제자는 필자)

    초기의 가수들은 대개 학벌이 없었다. 다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목소리를 작곡가들이 일찍 알아주는 것이 가수 데뷔의 길이기도 했다. 1931년에 가요계에 등장한 남인수도 학벌이나 체

    중앙일보

    1971.12.13 00:00

  • (320)-제자는 필자|부산 통화 개혁(13)

    9일간의 긴급통화조치 실적은 구권 예입 액, 금융기관 시재금, 국세 등의 국고 불입을 포함한 총액이 1조2천2백62억 원이었다. 이중 구권 예입 액은 조치 실시 직전인 2월14일

    중앙일보

    1971.11.30 00:00

  • (316)제22화 부산통화개혁(9)

    김병옥 발권국장이 마련한 현금수송계획을 비롯, 정부 각 부처가 소관별로 분담 실시토록 된 일련의 특별조치들이 또한 14일 밤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내무부는 통신망을

    중앙일보

    1971.11.25 00:00

  • (315)제22화 부산통화기금(8)

    직원들에 대한 「브리핑」을 14일 하오 4시에 시작되어 장장 11시간이 지난 15일 상오 3시께 끝이 났다. 직원들은 파견될 지역과 지역별로 준비된 유인물 뭉치를 나누어 받았다.

    중앙일보

    1971.11.24 00:00

  • (308)(1)|김유택(제자는 필자)

    필자 김유택씨(60)는 53년2월15일 긴급통화조치를 지휘한 당시의 한국은행총재(2대). 김씨는 일본 구주 대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한은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 조선은행 이사·

    중앙일보

    1971.11.16 00:00

  • 『고독한 시인』편모 가득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시를 읊고 인생을 이야기 하다가 63년6월3일 병석에서 숨을 거둔 공초 오상순씨의 유품 및 그의 상징인 「청동 문집」 50책이 6일부터 13일까지 영등포구

    중앙일보

    1971.11.09 00:00

  • (294)미·소 공동위원회|문제안(제자는 필자)

    「스티코프」등 소련 측 대표단이 평양으로 돌아간지 3일 만인 8일에 회담결과와는 아랑곳없이 평양에서는 김일성과 김요봉이 주동이 된 소위「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위원장에

    중앙일보

    1971.10.30 00:00

  • 법 준수해야 학원자유향유

    나는 그동안 일부 불순학생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우리 학원이 대다수의 선량한 학생들과 교수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단시일 내에 그 질서를 회복하게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

    중앙일보

    1971.10.30 00:00

  • 학원질서의 회복

    정부의 「10·15특명조치」로 말미암아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있던 대학가에 간신히 정상화 기운이 들고있어, 국민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8일 문교·국방 두

    중앙일보

    1971.10.30 00:00

  • 다시 찾은 캠퍼스

    대통령의 대학 진주군 철수지시로 대학가는 오래간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지난 15일 위수령발동으로 서울대를 비롯, 고대·연세대·성대·외대·서강대 등 서울시내 7개 대학에 진주한 군은

    중앙일보

    1971.10.23 00:00

  • (284)전문학교(12)|김효연(제자는 필자)

    일본의 군국주의가 193l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다음해에는 청말 최후의 황제인 오의를 옹립하여 괴뢰 만주국을 수립하는데 성공하자 이 같은 사실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정책에도 영

    중앙일보

    1971.10.19 00:00

  • 교육공해의 추방

    10월6일부터 12일까지 항례의 제19회 교육주간행사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 주간행사의 주최측인 대한교련은 올해의 주제로서 「교육공해추방」을 내걸고 있다. 대한교련은 시설부족, 제

    중앙일보

    1971.10.06 00:00

  • 「교육공해」추방운동

    대한교련은 우리 나라 교육풍토가 시설·교사자질 등 내적 공해와·유해 출판물,「매스컴」의 저질「프로」, 학부모들의 일류병 등 외적공해에 덮여있다고 지적, 오는 6일부터 시작되는 교

    중앙일보

    1971.10.04 00:00

  • (269)제19화 형정 반세기(12)

    높은 벽돌담에 둘려있어도 바깥 사람보다 바깥소식을 더 빨리 아는게 형무소 안 죄수들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들과 같이 지내오면서 수감자들이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중앙일보

    1971.09.30 00:00

  • (267)제19화 형정반세기(10)

    일제 36년 동안의 그 숱한 사건 가운데 백백교 만큼이나 끔찍스럽고 충격적인 사건도 드물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1937년2월16일 경기도 경찰부가 백백교

    중앙일보

    1971.09.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