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마산의 위기 (4)|낙동강 공방전 (14)|「6·25」20주…3천명의 증인 회견·내외 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 전쟁 3년
킨 작전에서 좌익을 맡은 미 해병대는 12일 아침 사천을 향해 진격을 재촉했다. 봉암리에서 적에 포위된 우군 포병대를 구출하려고 제3 대대가 그곳으로 차출됐지만 주력 부대는 그대로
-
(129)|낙동강 공방전(11)|마산의 위기(1)|「6·25」20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마산 점령 부산 목 조르려
북괴군 제6사단이 호남일대를 휩쓸고 하동·진주에 진출하자 부산의 관문인 마산방어가 급하게되었다. 원래 적6사단은 중공군출신이 기간인 정예부대로서 남침 초에는 옹진·개성·김포·인천을
-
<민족의 증언<(125)|낙동강 공방전(7)|동부전선(4)|「6·25」20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육본, 분대장에도 처형권
동부전선의 안강·기계전투도 낙동강 교두보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혈전의 하나였다. 북괴군 제12사단과 제766유격연대는 8월 공세가 개시되자, 단숨에 비학산을 돌파, 11일에는 포항에
-
(278)신년특집|분단 26년 숙원의 정상 백두산
백두산 정상에 올라 분화구의 벽 어느 마루턱에서 천지를 내려다볼 때의 첫눈의 인상은 무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장대하고 삼엄한 신비감에 질려서 한참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모두 우두
-
제4화 명월관
토요회는 전회에서 적은 바와 갑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모인 모임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친일파가 있는가 하면 배일파도 있고 사적으로도 서로 영합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
(115)적치하의 3개월(28)|요인납북(3)
수많은 납북 자 중에는 성직자·외교관·신문 기자를 포함한 여러 외국인들도 끼여 있었다. 이들은 비전투원이지만 공산 국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북으로 끌려가 2년 내지
-
(108)종교수난(1)|적치하의 3개월|「6·25」20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무신론을 표방하는 공산주의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종교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이야기다.「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칼·마르크」가 말한바와 같이 북괴는 처음부터
-
곳감
실과에도 차등이 있어서 종묘의 천신물목에 드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능금·배·감·복숭아·귤 등은 그중에도 중요한 품목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유득공의 경도잡기에 의하면 배는 황해도
-
이성보다 감정적…소박성 짙어
한국 문인협회는 28일 하오 교육회관에서 「한국문학의 풍토적 성격」을 주제로 한 문학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날 시인 김현승씨는「한국문학과 한국의 자연」, 평론가 곽종원씨는「한국
-
군비증강광분이 평화통일 의사표시인가|최 외무 성명 요지
▲평화통일방안에 대해=북괴의 소위 「정부비망록」에서 드러난 연방제, 불가침 약정, 남북 감군 등은 60년 초부터 선전해 온 것을 반복한 것으로서 그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
청와대 안보담당보좌관 유재흥 예비역중장
김성은씨의 후임으로 제2대 청와대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장관급)에 임명된 유재흥씨는 7일 아침 보좌관으로 첫 출근했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60년 7월 육군 중장으로 자진 예편하기까
-
(61)한국전쟁 3년 (8) 스미드 기동부대 (하)
이때까지 몇 증인이 말한 「스미드」기동부대의 전투상은 단편적이어서 전체전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종합적인 전황은 역시 「T·R·페런바크」저 『이런 전쟁』(This Kind of W
-
명작 속의 명소 북의 산하
급수강산의 아름다운 한반도가 광복과 더불어 두 동강이로 뵀고 여기서 민족의 비극이 시작됐다. 해방 25주년을 맞이하여 새삼 선연히 떠오르는 북녘의 산하명승 들-백두산·금강산·묘향산
-
(8) 변신···· 휴전선
50년 9월 30일 미 8군사령관 「워커」장군이 「유엔」군의 38선 월경 북한진격을 명령했고 이어 그해 10월 4일 「유엔」군의 전차가 동해안에서 38선을 뚫었을 때, 38선은 영
-
한국 휴전은 불명예로 시작됐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이 이승만 박사의 주장만 따랐더라도 한국의 통일은 17년 전에 벌써 이뤄졌을 것이다.』-조국의 허리를 다시 끊어놓은 한국 휴전조인 17돌을 맞아 당시 정전회
-
(44)「남」과 「북」의 형세(7)|남침준비⑦
소련과 중공이 북괴의 남침계획에 직접 관여했다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북괴의 창군과 증강과정에서 소련의 콧김이 쏘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의 남침
-
사회부 「데스크」에 비친 그 실례
현대에 살면서 예절을 들먹이는 것조차가 걸맞지 않을지 모른다. 예절이 살아있는가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오늘의 사회에 얼마나 될까. 상냥한 에티켓은 사회를 명랑하게 해주는
-
장마전선
전국은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한반도는 이무렵이면 중국 산동반도에서 밀려오는 저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지도를 펼쳐보면 산동반도는 우리나라 서해의 옹진반도와는 악수를 나누려는 듯이 팔
-
6·25 스무돌
25일은 6·25동란이 일어난지 스무돌. 이날 전국에서는 각 공공단체 및 사회단체별로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20년전 그날의 비극을 되새기며 조국수호를 다짐했다. 일요일이었던 20년
-
(256)6·25 20돌 옛 격전장서 만난 노병과 신병
꾀꼬리 소리만 들려왔다. 이따금 햇쓰르라미가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느티며 떡갈이며 상수리-. 숲은 한결 푸르름을 떨치고 깊은 평화경에 묻혀 있었다. 하지만 20년전 6월의 미명을
-
(38)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북과 남의 형세(1)
이번 회부터는 북과 남의 형세 부제로 6·25직전의 북괴와 우리 한국의 실정을 비교 대조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결론부터 한마디한다면 여기에는 북괴의 빈틈없는 남침준비와 우리측(
-
(37)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가장 길었던 3일(37)
(4) 한강교 폭파는 결과적으로 사후약방문격이 됐지만 마지막 순간에 가서 또 한번 연기될 뻔했다. 28일상오 l시40분쯤 채병덕소장이 육본을 빠져나간 후 서울에서 사실상 참모총장
-
105인 사건으로 망명 57년
105인 사건에 얽혀 망명길에 올랐던 독립투사 곽태종시(85·사진)가 17일상오 NWA편으로 57년만에 조국 땅을 밟았다. 팔순의 노투사 곽옹은 노인답지않은 건강한 모습으로 트랩을
-
(22)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가장 길었던 3일(22)
북괴군이 침공을 개시했을 때, 38선에서 수도서울에 가장 가까운 경원가도를 주 공로로 택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짐작했던 사실이다. 38선에서 동두천 의정부를 거쳐 서울까지는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