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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실패 땐 가족 뒤 봐주게"…5·16 명단서 내 이름 뺐다
■ 「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철강왕’ 박태준(1927~2011)의 이야기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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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이제 좀 놓아주십시오” 박정희 “왜, 총리 하기 싫어?” (62) 유료 전용
1975년 12월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국무총리직을 사퇴했다. 4년6개월 전 총리에 취임한 뒤 쉴 새 없이 달려오다 보니 육체적으로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이후락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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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대발 박정희 “잡아들여!”…‘항명’ 김성곤 콧수염 뽑혔다 (41) 유료 전용
1969년 3선 개헌을 주도한 민주공화당의 4인 체제(김성곤·백남억·길재호·김진만)는 기세가 등등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3연임을 성공시킨 이들의 세력은 공고해 보였다. 하지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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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중화학공업 국가 기틀 닦은 ‘한국 경제의 설계자’
━ 김정렴 1924~2020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회고록『아, 박정희』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구성하는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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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비판하다 입각
1976년 6월 18일 남덕우 부총리가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44년 전인 1969년 10월 21일 청와대 신임 각료 임명식장. 당시 45세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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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과 외환위기 … 모두 경제부총리 있었다
지난 8일 정부 서울청사 국무회의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올해 첫 위기관리대책회의가 열렸다. 12개 부처 장관 등 20개 기관의 수장이 모이는 자리다. 하지만 두 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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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떡고물권력' 이후락] 그는 美CIA 스파이로 박정희 감시했다 ②
>>박정희 신도관련사진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 대통령 후보(가운데)에게 이후락 비서실장이 귀엣말을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육영수 여사.민주당 정권 시대에 이후락 씨가 만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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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시시각각] 경제팀장의 부활
운동경기에서 주장의 역할은 적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팀을 대표해서 공격권을 가리는 추첨을 하거나 판정에 항의할 때 앞장서는 정도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 주장선수의 존재감은 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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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은 국가 운명 판가름하는 선택"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포스코 영빈관 앞마당에서 제철소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960년대 말 영일만에서 모래 바람을 헤치던 그 시절을 설명했다. [포항=김형수 기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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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④경제] 32. 경제주역의 이동
작아진 정부, 힘 세진 기업 ▶ 정부는 여러 제철소 후보지를 물색하다가 포항으로 정했다. 사진은 포철 공장이 들어서기 전 경북 영일군 대농면 동촌동 일대.▶ 70년 4월1일 김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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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DJ와 인복
DJ에겐 확실히 인복(人福)이 없는 것 같다. 믿고 총애했던 측근.부하들이 줄줄이 비리의혹에 관련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야당이나 소위 '비판언론'보다 오히려 이들이 더 DJ에게 상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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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해임안 역대 사례]
우리 헌정사에서 장관 해임건의안은 30건이 표결됐으며 이중 3건이 가결됐다. 1955년(3대국회) 임철호 농림장관(불신임 결의안), 1969년(7대국회) 권오병 문교장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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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길
토정비결에 흔히 나오는 '일모도원' (日暮途遠)이란 말이 요즘 DJ정부에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갈 길은 멀다는 이 말처럼 DJ정부도 '성공한 대통령'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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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경제대통령과 부총리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방식은 대통령의 스타일에 따라 사뭇 달랐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철저하게 경제부총리에 힘을 실어줬다. 장기영(張基榮).김학렬(金鶴烈).남덕우(南悳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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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협회 집행부 대폭 물갈이
레슬링협회 집행부가 30~40대 젊은 인사들로 대폭 물갈이됐다. 대한레슬링협회(회장 천신일.세중 대표)는 22일 천신임회장을 주축으로 한 24명의 새 집행부 명단을 발표했다.협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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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논리조정
「업자들에게 돈을 받은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여기 적혀있는 관리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끌고가는 인물들입니다. 이런 정도의 관리를 키우려면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드는데 이일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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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권부의 파워게임|"서로 먼지 한번 털어볼까"
71년 4월 중순 7대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둔 어느 날 저녁. 청와대와 인접한 궁정동 안가에는 당정의 핵심인사들이 모여 막바지 선거전략을 짜고 있었다. 백두진 국무총리·김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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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 예산실장|나라살림 꾸리는 돈줄 "조율사"
해마다 6∼7월이면 과천청사 1동 6층은 복도마다 서류뭉치를 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제 한해 30조원을 넘어서는 나라살림을 짜는 예산실이 이곳에 있고 6∼7월은 각 부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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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직원들에 악의없는 욕설|성안차면 회의하다 노래 불러
아니나다를까 김부총리가 「가만있어」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그러더니 박대통렁앞이 나가가 갑자기 볼펜하나를 빼들어요. 그리고 「각하 이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요. 각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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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 고비 때마다 이후락 활약(청와대비서실:4)
◎71년 대선 앞두고 정보부장에 컴백/「윤필용사건」 이후 급격히 내리막길 절대권력자 박정희 대통령을 보위했던 3공의 실력자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최대한의 충성경쟁을 벌였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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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팀장의 할 일
74년 9월 경제팀 개편 때 태완선 부총리가 물러가고 그 자리를 남덕우 재무장관이 옮겨 앉았는데 남 장관이 재무부 기자실로 이임 인사차 와서는 약간 긴장할 때 나오는 특유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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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 일변도」서 적극적 대응으로
「1·7 개각」에서 경제 팀은 농수산·상공 장관을 남겨 놓고 팀 리더인 부총리를 비롯, 재무·동자·건설 등 4 각료가 교체됐다. 전체적으로 10개의 자리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총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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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만평
청와대 7·6일부개각은 발표직전까지 철저히 보안이 지켜졌다.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과 황선필대변인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시간이 이날하오1시 전후. 자주있는 일이라 이「부름」이 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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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대폭개각의 배경|여망부응 내건 "연착내각"
「9·18」개각은 71년 6월 김종필 내각이 출범한 후 지난해 「12·3」개각 때의 10부 장관 경질에 이은 두 번째 대폭 개편이다. 이번 대폭 개각은 한·일간의 분규로 이룩된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