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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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토정비결에 흔히 나오는 '일모도원' (日暮途遠)이란 말이 요즘 DJ정부에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갈 길은 멀다는 이 말처럼 DJ정부도 '성공한 대통령' 이란 골인지점까지 가자면 할 일은 엄청 많은데 임기는 많이 남지 않았다.

*** 할일은 '정치' 보다 정책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자면 좋은 업적을 남겨 퇴임 후 후계정부와 민심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다음 정부에 좋은 국정유산을 물려줘야 하고, 민생도 잘 챙기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음 정부에 국정난맥.혼선.표류.바닥을 기는 경제, 이런 것을 물려주고서도 좋은 평가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민심이 등을 돌린다면 역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이처럼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 국정.민생에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DJ정부는 목표를 향해 바른길을 가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현실문제를 생각해보자. 이미 12조원 이상 들어갔다는 현대그룹 문제는 임기 내 해결될 수 있을까. 파탄에 직면한 건강보험 재정은 임기 말까지 성공적인 복구가 가능할까. 국민의 원성이 높은 교육 붕괴를 임기 내에 얼마나 정상화할 수 있을까.

하나같이 거대하고 골치아픈 이런 문제들을 만일 해결 또는 크게 개선하지 못한 상태로 다음 정부에 넘길 경우 다음 정부의 입에서 DJ에게 좋은 소리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다 금강산 관광.새만금.대우차 같은 빼도 박도 못할 난처한 문제들까지 그냥 넘긴다면 다음 정부 사람들이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도 아마 좋은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남은 2년간 할 일은 '정치' 보다는 '정책' 인 것이 분명하고, 경제.산업.교육.복지 등 국정 전반의 쇄신.개선.마무리가 당면 최대 과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난 개각이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아직도 정책보다는 정치가 집권측의 최대 관심사인 것 같다. 정치인 장관을 대거 포진시킨 정치내각이 그렇고, 강한 정부와 강한 여당을 표방하고 3당연합.개헌론 등에 분주한 것을 봐도 그렇다. 무엇보다 소위 실력자는 정치쪽에 있지 정책쪽에는 없다.

지금처럼 국정난제가 첩첩이고 위중한 상황이라면 천하의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모아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정부가 밤낮없이 긴장감있게 일하는 모습이 나와야 마땅할 것이다. 대통령의 체중과 관심도 그쪽에 가 있어야 하고 권력과 정부 에너지의 큰 부분이 국정타개에 집중되고 있음을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책실력자가 가장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정치전문가' 들이 득세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김학렬(金鶴烈).남덕우(南悳祐)나 전두환 때의 김재익(金在益) 같은 인물이 지금 있는가.

정치실력자가 판치고 권력이 정치를 더 중시하는 것은 결국 정권재창출을 해내자는 뜻이다. 정권재창출로 퇴임 후를 보장받고 성공한 대통령도 되자는 생각인 것 같다. 더구나 현재 국정상황도 썩 좋지 않고 원한세력도 많은 만큼 더더욱 그런 집념을 굳히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점을 생각해야 한다.

설사 신임하는 후계정권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한다고 해도 그로부터 보호받고 예우받는 일은 별개라는 사실이다. 全씨가 노태우씨에 의해 백담사로 귀양가는 것을 다 보지 않았는가. 더구나 엉망의 국정을 넘겨주고서도 보호.예우받길 기대한다면 그건 분명 과욕일 것이다. 권력은 흔히 부자(父子)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한다.

*** 권력은 부자간도 못 나눠

전(前)정권에 큰 신세를 졌다 해서 국민의 직접투표로 집권한 정권이 독자성.정체성을 주장하지 않을 리 없고,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문제를 전정권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역사의 경험이다. 그러므로 정권재창출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요한 한 조건이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한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더욱이 목에 힘주고 강한 정부를 외친다고 성공한 대통령이나 정권재창출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국정이 엉망인데도 다수세력 형성→야당 제압.장애물 제거→선거 승리를 밀어붙인다는 것은 무리가 무리를 낳고 장차 어떤 결말을 빚을지 예측키도 어려운 위험한 발상이다. 이제 와 신문고시 같은 걸 부활하는 것도 그런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닌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남은 2년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날은 저물어 가고 갈 길은 먼데 엉뚱한 데서 오래 헤매고 있어서야 될 일이 아니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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