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재일 동포 모국방문|2백88명 또 입국

    조총 년 계 재일 동포 한식 성묘 단2백88명이 7일 KAL편으로 입국했다. 이로써 지금까지 입국한 재일 동포는 8백여 명에 이른다. 애지현·양나시·명고성시동에 살고있는 이들 동포

    중앙일보

    1976.04.08 00:00

  • 조국에의 사랑심어

    【천원=홍계호기자】조총련계 재일동포 한식성묘단 및 민단청년봉사단원2백50명은 5일상오9시충남천원군성거면요방리산6의1 4만평 구릉지에 새로마련된 「망향의동산」을 찾아 잣나무·은수원사

    중앙일보

    1976.04.05 00:00

  • 묘목대금 6백만원 김 내무장관에 전달

    「60만 재일동포 새마을심기」기념 식수에 참석키 위해 입국한 민단 청년단원 2백명을 대표하여 인솔단장 심종효씨(민단 중앙본부임원)가 2일 내무부로 김치열 장관을 예방, 묘목대금 6

    중앙일보

    1976.04.02 00:00

  • 식목일 참가 귀국

    재일민단청년봉사단원 2백여명이 고국의 식목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31일과 1일 두차례에 걸쳐 KAL편으로 서울에 왔다. 이들은 5일 재일동포모국방문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충남 천원군

    중앙일보

    1976.04.01 00:00

  • 재일동포 한식성묘단 귀국

    조총련계 재일동포 한식성묘단 1천5백명이 또다시 고국을 찾아온다. 1일낮 12시50분에는 1진58명이 대한항공편으로 입국, 따스한 조국의 품에 안겼다. 동경·복강·찰황·선태·하관등

    중앙일보

    1976.04.01 00:00

  • 조총련 조직분열

    【동경25일 동양】조총련계 재일 동포의 모국방문사업의 성공으로 조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조총련은 최근 자체조직의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 조총련의장인 한덕수 일파와 반한 덕수파간에

    중앙일보

    1976.03.26 00:00

  • 달라지는 재일교포사회(1)|성묘방한계기로 동요하는 조총련|가슴에 심은 모국

    「30년 만에 고향을 찾은 감격에 아직도 밤잠을 설친다. 직장에서 귀가해서는 고향에서 찍은「앨범」을 펴보는 것이 생활의 즐거움이다. 서울서 사온 가요곡집도 자주 듣는다. 이럴 때마

    중앙일보

    1975.12.04 00:00

  • (1453)제47화 전국학연(65)

    대구폭동(46년10월1일)·「족청」발족(10월11일)·입법의원선거(10월21일) 등으로 정국이 혼란한 때 개성으로부터 한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 발신인이 민완식씨로 되어있는 이편지

    중앙일보

    1975.10.02 00:00

  • 조총련계, 민단원에 폭행 선전 착판 파괴 막다 충돌… 둘 부상

    【대판=양태조특파원】8·15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수사 태도를 규탄하고 북괴와 조총련의 일본 대남 공작 기지화를 항의하는 민단측「데모」가 일본 곳곳에서 일어나자 조총련은

    중앙일보

    1974.09.09 00:00

  • 청삼현 한국청년회 북괴만행 규탄대회

    【동경=박동순 특파원】「아오모리」현 민단지부소속 재일 한국청년회는 26일 하오「아오모리」시 교육회관에서 북괴와 조총련의 만행을 규탄하고 일본의 미온적인 수사태도를 규탄하는 집회를

    중앙일보

    1974.08.27 00:00

  • 문세광 송치의견서|박 대통령 저격사건 총결산

    가. 문이 김호룡에게 포섭 당한 경위 ①7·4남북공동성명 직후인 1972년9월3일경 대판소재 「페스티벌·홀」에서 민단과 조총련이 회동하여 단합대회(공동대회)가 열렸을 때 문세광은

    중앙일보

    1974.08.27 00:00

  • 「한청」의 동경「9·7회의」문서

    구한청(재일한국청년동맹위원장 김군부)은 작년9월7일 동경국철노동회관에서 소위 「9·7회의」를 열었으며 같은 무렵 대판지부에서는 지부장회외를 열었다. 문은 이 두 회의에 모두 참석했

    중앙일보

    1974.08.24 00:00

  • 조총련「오오사까」본부를 가다

    【대판=양태조 특파원 현지르포】60만 재일교포 중 17만 여명(일본 안에서 최고)이 살고있는 대판에서 지하조직과 행동대 등 비밀을 안고있는 조총련 「오오사까」본부는 박대통령 저격범

    중앙일보

    1974.08.23 00:00

  • 북괴 대남 공작에 새로운 「패턴」|대통령 저격범 문세광의 배후를 추적한다

    민단 분열 후 반민단화 재일한국 청년 동맹은 원래 민단의 하부 행동대였던 것이 3년 전 민단 분열의 여파로 반민단·반정부파 손아귀에 들어간 불온 변신조직이다. 한청의 전신은 45년

    중앙일보

    1974.08.19 00:00

  • 대사관 폭파하겠다-협박한 적도

    김대중씨 사건 후에는 「오오사까」한국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한국대사관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일도 있다. 문은 고교시절부터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논쟁을 좋아했으며 3학년 때부

    중앙일보

    1974.08.16 00:00

  • 범인은 재일교포 "문세광"-광복식전 대통령 저격사건 일인이름 도용한 여권소지

    【동경=박동순특파원】범인 문세광(23·일본「오오사까」부 생야구 중천정2정목9의4)은 재일 거류민단으로부터 제적된 민단반주류파의 측면행동대 「한국청년동맹」의 전 간부로 항상 반정부·

    중앙일보

    1974.08.16 00:00

  • 분하다…대통령저격사건

    성스러운 광복절식장을 피로 물들인 대통령 저격사건은 온 국민의 격분을 사고 있다. 흉탄은 천우신조로 대통령에 맞지 않았고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육영수여사가 운명하게되어 국민

    중앙일보

    1974.08.16 00:00

  • (1089)|약사창업(10)|이치벽

    1897년부터 오늘날까지 77년간을 내려오는 동화약방의 활명수엔 창업자 민립 호로부터 민단→민인 복으로 이어지는 민씨3대의 영고성쇠가 어려 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한·일합방

    중앙일보

    1974.07.18 00:00

  • 울릉도 거점 대규모 간첩단 범죄사실

    전영관 (44·울릉군 남면도 동 373-8) 62년 12월 남파간첩 전덕술에게 포섭, 그와 함께 월북 노동당에 입당 당시 연락부장 이효순으로부터 울릉도를 전진기지화하여 지하망을 조

    중앙일보

    1974.03.15 00:00

  • (39)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행적기(1) 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

    김옥균(자=백온·호=고우·별호=고균)이 일본에 들른 것은 도합 네 차례. 첫 번째는 1881년12월 31세 때. 그는 단순한 시찰목적으로 홀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반년만에 돌아왔다

    중앙일보

    1973.12.14 00:00

  • 한일 의원 간친회 이모저모

    동경에서 이틀간 열린 한·일 의원 간친회는 양국정치인들간에 있었던 회의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참석한 두 나라 의원 1백명(한=28명·일=72명)의 숫자도 그렇거니와 양

    중앙일보

    1973.06.16 00:00

  • 「약속」난무하는 막후 접촉

    신민당 전당대회 개최여부는 25일 밤까지 계속될 각파의 막후협상에 걸린 채 계속 유동적이다. 김홍일 당수 쪽과 손잡고 대회유산을 추진하고 있는 비주류는 양일동씨 에게 이번 대회만

    중앙일보

    1972.09.25 00:00

  • 큰 성과 거두고 돌아오길… 뜨거운 겨레의 성원

    【평양=대한민단신문·통신 공동취재단 이광표 본사특파원】 단절 27년만에 평양땅을 밟았다. 29일 상오10시30분 판문점 판문각 앞에서 북적측이 마련한「벤츤220」승용차를 탄 한적대

    중앙일보

    1972.08.29 00:00

  • 「합동대회」는 거짓

    재일한국거류민단은 그 조직운영면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있다는 것이 이곳 교포사회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다. 특히 남북공동성명에 의해 촉발된 극적시세변화를. 배경으로 아연 활기를 띄

    중앙일보

    1972.08.2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