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대동강도 올해는 안 얼어"

    【판문점=임시취재반】남북적십자 예비회담 대표들은 10일 낮 12시40분 판문점 중립국감시위원회 휴게실에서 간담회 형식의 새해 들어 첫 공동휴식을 갖고 양쪽의 날씨와 꽃 소식 등을

    중앙일보

    1972.02.10 00:00

  • 우리에 불리한 미·중공 결정 승복 않겠다|박대통령 연두회견

    박정희 대통령은 1l일 연두회견에서『북괴가 무력적화동일의 야욕을 버릴 것을 확실히 약속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북괴가 무력적화통일을 포기한다

    중앙일보

    1972.01.11 00:00

  • 『네쪽(저쪽)에 가서 이야기돔(좀) 하자우. 』 『뭔 얘기를 하잔 말이냐?』『말 돔(좀)똑똑히 하라우. 왜 그따위 왜곡보드 하니?』『왜곡보도가 뭔지나 아니?』『더게 (저것이) 데일

    중앙일보

    1971.12.18 00:00

  • 국회예결위 정책 질의·답변 요지

    ▲송원영 의원(신민) 질문=북괴의 남침이 금시에 있을 것 같이 선전하여 국민은 불안의식을 느낀다. 이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려는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수도권방위문제를 새삼스레

    중앙일보

    1971.11.29 00:00

  • 한국문제 국제회의 길터, 한·미·일·중공·소·북괴 포함

    【워싱턴 8일=김영희 특파원】「닉슨」미국 대통령의 북평방문은 한국문제를 다루기 위한 동북아안보회의 소집의 길을 열지도 모른다고 8일 한미국무성관사의 연구논문이 밝혔다. 미국무성의

    중앙일보

    1971.10.08 00:00

  • 남북 구면의 악수

    『안녕하십니까.』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부드러운 인사 속에 마주앉은 2차 예비회담은 처음으로 상오에 1시간34분, 하오에 49분 등 2시간 반이나 계속되었다. 점심을 같은 판

    중앙일보

    1971.09.29 00:00

  • 남북대화 시대의 언론

    ▲차기벽(성균관대 교수) ▲노재봉(서울 문리대 교수) ▲박봉식(서울 문리대 굣N) ▲손제석(서울 문리대 교수) 사회=김인호(중앙일보 편집국장) 기록=윤기병,허준 기자 때=1971

    중앙일보

    1971.09.22 00:00

  • 남북예비회담에 가벼운 흥분

    【판문점=임시취재반】대한적십자사의 8·12제안에서 비롯된 남북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한 걸음 진전, 남북대화의 실마리가 풀렸다. 3일 낮12시 네 번째로 만나는 대한적십자사의 이창

    중앙일보

    1971.09.03 00:00

  • 엿새만의 구면…미소의 재회|남-북 적십자 두 번째 접촉의 날

    남-북 적십자사가 26일 낮 12시 두 번째로 판문점에서 만났다. 지난20일 첫 번째로 만났을 때와는 달리 긴장이 가시고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만난 남-북 적십자사의 파견

    중앙일보

    1971.08.26 00:00

  • 「단 4분」에 불 뿜은 취재 전|판문점「남-북 대좌」낙수

    단 4분 동안에 끝난 남북대화를 취재하기 위해 신문·방송 등 보도기관은 20일 하루동안 불 뿜는 열전을 벌였다. 26년만에 교환된 악수의 한 장면, 『안녕하십니까』하는 인사말 한마

    중앙일보

    1971.08.21 00:00

  • 남북회담 들뜬 분위기 경계

    광복26주를 기념하는 경축연이 15일 저녁 경회루에서 20여명의 야당의원을 포함하여 2천여명의 내외귀빈이 참석한가운데 베풀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만난 김홍일 신민당수

    중앙일보

    1971.08.16 00:00

  • (3)한국문제의 한국화-김홍철 이호재 이영호 교수

    군사정전위의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인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로저즈」소장의 제안은 통일에 이르는 단계로서 제기된 방법 가운데 정치적 함축성이 가장 깊은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중앙일보

    1971.08.11 00:00

  • (2)DMZ평화이용론|한국서"큰일"변치 않는 미의 간접의사 표시

    통일문제「세미나」에 참석했던미국의「글렌·페이지」교수는 한국의 비무장지대 안에「통일공원」을 설치, 그 속에 농사문제연구소·양로원 등을 세울 것을 제안한 일이 있다.「페이지」교수의 제

    중앙일보

    1971.08.10 00:00

  • 「단독초청정책」에 신축

    정부는 「유엔」에서 한국문제토의에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해 이번 제26차 총회를 계기로 한국 단독 초청안의 문안표현에 상당한 신축성을 둘 방침이다. 김용식 외무부장관은 9일 동경

    중앙일보

    1971.08.09 00:00

  • 「남북 직접 대화」론의 배경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측 수석 대표 「필릭스·M·로저즈」미 공군 소장은 3일 AP통신의 「에드윈·Q·화이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8년간 판문점에서 열려온 군사정전위원

    중앙일보

    1971.07.06 00:00

  • 판문점 「남북 대좌」는 가능한가

    정치 판단 서면 절차 문제 안돼|유엔군 구성 구체적 규정 없어 유엔군 대표 일원으로 가능|군의 대화가 정치 성격 띨 수 있나 의문|이한기 휴전 협정에 한국이 조인하지 않았다는 사실

    중앙일보

    1971.07.06 00:00

  • 미상원 사이밍턴위원회 대한 증언

    【워싱턴15일동화】다음은 지난 2월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실시된 미상원 외교위원회 「사이밍턴」소위원회의 한국문제에 관한 비밀언에서 한국안보, 한국군의 파월, 미국의 대한방위공

    중앙일보

    1970.09.15 00:00

  •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한국방위"|미 상원 사이밍턴 위원회 대한증언

    【워싱턴13일동화】다음은 지난 2월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실시된 미 상원외교위원회 사이밍턴 소위원회의 한국문제에 관한 비밀증언에서 한국안보, 한국군의 파월, 미국의 대한방위공

    중앙일보

    1970.09.14 00:00

  • 한국의 지성과 대학의 과제

    한국의 지성 그리고 대학은 오늘 무엇을 구상하고 또 어떤 자세로 서있는가. 60년대에 대망의 70년대를 맞은 「캠퍼스」는 이봄에도 사회의 역군을 배출하고 또 신입생을 받아들인다.

    중앙일보

    1970.01.17 00:00

  • 70년대 한국의 안보|주변정세와 그 전망-좌담회

    60년대를 뒤로 물려고 70년대의 문턱에선 지금 한국의 안전보장문제는 우리생활과 국가존립에 직결되는 가장 절박한 현실문제로 나타난 듯하다. 북괴는 70년대를 이른바 그들의 남한무력

    중앙일보

    1970.01.01 00:00

  • 끝없는 평화공세|월남서 총성이 멎을 날은 언제?

    지금까지 미국이 월남전율 확대해오면서 그 바탕으로 삼아온 개념은 『제한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군사적 압력을 가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월맹정권을 군사적

    중앙일보

    1967.09.12 00:00

  • (1)「체코슬로바키아」를 다녀와서

    이 글은 대한체육회 이사이며 배구 국제심판인 구연묵씨가 지난 9월 4일부터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시에서 열린 66년도 세계배구연맹 총회에 다녀와서 본사에 보내온 것입니

    중앙일보

    1966.09.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