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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송찬호 '임방울'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용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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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도종환 '초겨울'
올해도 갈참나무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에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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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천양희 '직소포에 들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 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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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파불로 네루다 '시'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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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관식 '병상록'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방 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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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신경림 '갈대'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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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황동규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는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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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나희덕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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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남진우 '저녁빛'
붉은 저녁해 창가에 머물며 내게 이제 긴밤이 찾아온다 하네…. 붉은 빛으로 내 초라한 방안의 책과 옷가지 비추며 기나 긴 하루의 노역이 끝났다 하네… 놀던 아이들 다 돌아간 다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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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다희 '섬진강'
강가에 갔다 우리 반 애들과 갔다 선생님도 갔다 선생님이 큰돌을 던져서 물이 튀어 오르고 무지개가 나타났다 서창우도 그렇게 해 보았다 김다솔도 그렇게 해 보았다 박창희도 그렇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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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고은 '눈물'
아 그렇게도 눈물 나리라 한 줄기의 냇가를 들여다 보면 나와 거슬러 오르는 잔 고기떼도 만나고 그저 뜨는 마름풀 잎새도 만나리라 내 늙으면 어느 냇가에서 지난날도 다시 거슬러 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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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수영 '책'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지요. 까만 표지에 손바닥만한 작은 책이지요. 첫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했지요. 바람도 잠 든 숲 속, 잠 든 현사시나무들 투명한 물관만 깨어 있었지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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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고재종 '날랜사랑'
얼음 풀린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 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 오르는 저 날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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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이시영 '서시'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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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정호승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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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박형진 '입춘단상'
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 내리는 추녀 물을 세어 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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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서동수 '사랑'
나는 어머니가 좋다 왜 그냐면 그냥 좋다. - 서동수 '사랑' 그렇다. 그냥 좋은 것이 사랑이다. 그 어떤 것이 좋아서 사랑이 이뤄졌다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리라. 어떤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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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장석남 '그믐'
나를 만나면 자주 젖은 눈이 되곤 하던 네 새벽녘 댓돌 앞에 밤새 마당을 굴리고 있는 가랑잎 소리로써 머물러보다가 말갛게 사라지는 그믐달처럼 - 장석남 (37) '그믐' 보름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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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정채봉 '엄마'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히 끊어지는데 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 정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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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유하 '無의 페달을 밟으며'
두개의 은륜이 굴러간다 엔진도 기름도 없이 오직 두 다리 힘만으로 은륜의 중심은 텅 비어 있다 그 텅 빔이 바퀴 살과 페달을 존재하게 하고 비로소 쓸모 있게 한다 텅 빔의 에너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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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이용악의 '꽃가루 속에'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직이 나를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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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책동네] '호랑이 뱃속에서 고래잡기'
"할머니, 옛날 얘기." "그려, 우리 이쁜 강아지." 엉덩이를 토닥이며 손녀를 아랫목에 눕혀주시던 외할머니. 겨울 방학 때면 시골 외갓집 안방에 그렇게 누워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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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서정주의 '봄'
복사꽃 피고, 뱀이 눈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서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서정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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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책동네] '호랑이 뱃속에서 고래잡기'
"할머니, 옛날 얘기. " "그려, 우리 이쁜 강아지. " 엉덩이를 토닥이며 손녀를 아랫목에 눕혀주시던 외할머니. 겨울 방학 때면 시골 외갓집 안방에 그렇게 누워 외할머니가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