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용악의 '꽃가루 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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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직이 나를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 이용악(李庸岳.1914~71년)의 '꽃가루 속에'

이용악의 시를 읽고 있으며 철커덩철커덩 압록강 다리 위를 건너는 철로 소리에 흔들리는 나라 잃은 백성들의 웅크린 모습 위로 길게 울리는 기적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의 시는 함경도 사나이들의 듬직하고도 느린 몸짓이 그려진다.

파도 같이, 바다를 밀고 오는 파도 같이. 크고 거대한 산맥을 넘는 사나이들의 꿈속에 그는 이렇게 배추 꽃가루 속에 숨어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고 싶은 섬세함이 있었던 것이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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