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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전의원 경제고문 위촉
대구시는 김만제(70)전 한나라당 의원을 경제 고문으로 위촉한다고 20일 밝혔다. 김 고문은 앞으로 2년간 경제정책과 관련한 자문.조정 역할을 하게 된다. 경제고문은 대구시 직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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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서강학파
1969년 10월 20일 남덕우 당시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택시 속에서 '재무장관에 남덕우'라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동료인 이승윤 교수가 집에 찾아와 청와대에서 급히 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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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사회주의 발상" 반대
한나라당이 30대 그룹의 출자총액한도 초과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의결권 제한' 방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출자총액한도 제도 변경은 공정거래법 개정 사항이므로 국회 심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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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사회주의 발상" 반대
한나라당이 30대 그룹의 출자총액한도 초과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의결권 제한' 방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출자총액한도 제도 변경은 공정거래법 개정 사항이므로 국회 심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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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정 경제토론… 할 말 다한 11시간 지상중계
'밥먹는 데 한 시간, 잠자는 데 다섯 시간을 제외한 열한 시간의 마라톤 토론' . 여(민주당 5명.자민련 1명).야(한나라당 6명)의 경제 전문가와 정부 경제부처 장관(5명)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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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70)
70. 故 정주영씨의 청탁 재무장관으로서 은행 임원 인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던 나의 원칙은 결국 이어지지 않았다. 나로서는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철저하게 지킨 원칙이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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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재계에 힘줘야 경제 살아"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은 15일 " '재벌 눈치보기' 가 현 정권 들어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 고 주장했다. 전날 자신이 발표한 '재벌 개혁정책 개선론' 을 민주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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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재계에 힘줘야 경제 살아"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은 15일 " '재벌 눈치보기' 가 과거보다 현 정권 들어 더 심해졌다" 고 주장했다. 전날 자신이 발표한 '재벌 개혁정책 개선론' 을 민주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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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당직개편… 정책위의장에 김만제의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9일 당직개편을 단행,당3역(役)중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을 바꿔 후임에 김만제(金滿堤)의원을 기용했다.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유임됐고,그만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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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63)
63. 한 ·미 쇠고기 마찰 조율 "정인용(鄭寅用) 부총리가 정초에 워싱턴을 급거 방문, 미국측 대표들과 연쇄회담을 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빈 손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정부총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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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6)
56. '연출'한 환율외교 베이커 미 재무장관을 만나고 돌아온 나는 김만제(金滿堤) 부총리(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앞으로 환율에 관한 협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하기로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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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5)
55. 미국과 환율마찰 외자를 들여오는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되도록 장기 자금을, 또 간접투자보다는 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편한 맛에 단기 외자를 너무 많이 들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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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45)
45. 미주지점 부실정리 당시 우리나라가 영국산 스카치 위스키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사 주지 않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 통상 문제가 빚어질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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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42)
42. 안기부장 부탁 거절 강경식(姜慶植) 재무장관(현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찾아간 나는 취임 후 첫 임원 인사안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어디 보기나 합시다. " 봉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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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33)
33. 부실기업 주식 처리 1980년대 부실기업 정리는 10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막을 내렸다. 정리 당한 쪽의 누구도 잡아 넣지 않았고 정리한 쪽의 아무도 잡혀 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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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3)
23. "원칙대로 해 고맙다" 외환은행장을 할 때 윤석민(尹錫民) 대한선주 회장을 비롯해 부실 징후 기업의 오너들이 돈을 싸들고 나를 찾아왔었다. 사정이 다급해져 대출 청탁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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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9)
19. "부도 막아줄 수 없나" 국제그룹 문제로 시끄러운 동안에도 부실 기업 문제가 한두 건씩 계속 터져나왔다. 대한선주는 1986년 6월께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4백50억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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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8)
18. 사람은 잡아넣지 말자 1986년 6월 재무장관을 할 때 내가 작성한 '부실기업 정리 원칙' 은 10개항으로 돼 있다. ①기업 갱생의 원칙. 기업인은 망하더라도 기업은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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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7)
17. 부실기업 정리 원칙 극동건설 김용산(金用山) 회장이 다녀간 뒤 나는 재무부 직원들에게 그가 한 얘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장관에게 손을 뻗치는 사람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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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6)
16. 특혜는 안된다 김만제(金滿堤) 부총리는 김용산(金用山) 극동건설 회장이 자꾸 찾아와 "동서증권을 제일은행의 인수가에 넘겨 달라" 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상사 건설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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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5)
15. 극동건설의 억지 국제그룹이 자금난을 겪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모기업인 국제상사는 건설업을 합병, 종합상사와 건설 두 부문으로 돼 있었다. 신발업은 1981년 대미(對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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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4)
14. "은감원장 맡아주소" 경남기업㈜는 한국운수.경남금속.경남유통 등 5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도급순위 12위의 건설회사로 해외 종업원이 8천여명이나 됐다. 1983년 11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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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4)
14. "은감원장 맡아주소" 경남기업㈜는 한국운수.경남금속.경남유통 등 5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도급순위 12위의 건설회사로 해외 종업원이 8천여명이나 됐다. 1983년 11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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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2)
12. "경남기업 맡아라" 1989년 1월 7일 대검 중수부는 ADB(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로 재직하고 있던 내게 대한선주 처리에 대해 서면 답변을 요구하는 신문서를 보냈다. 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