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정완의 시선] 청년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주정완 논설위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제목의 미국 영화가 있다.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2008년)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2024년 대한민국에선 이렇게 바꾸고 싶다. ‘청년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는 말이다. 지난 22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의 발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날 시민대표단의 다수안으로 발표한 내용에선 청년 세대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아서다.   특히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에는 핵폭탄급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천하람 국회의원 당선인(개혁신당)이 “미래 세대 등골을 부러뜨리는 ‘세대 이기주의 개악’”이라고 비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22대 국회에서 흔치 않은 30대 당선인인 그는 “미래 세대에 더 큰 폭탄과 절망을 안겨야 하느냐. 이러다가 미래 세대 자체가 없어질지 모른다”라고 토로했다.     ■  「 공론화위 다수안, 개혁 아닌 개악 17년 전 연금개혁 노무현도 배신 미래 세대의 등골 빼먹기 멈춰야 」    공론화위원회의 다수안이 왜 문제인가. 청년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독소 조항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재 40%에서 50%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듣기 좋은 말로 ‘더 내고 더 받기’라고 했지만 겉포장에 속으면 안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도대체 소득대체율 40%는 언제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원래 이 비율은 70%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2월 이 비율을 60%로 낮췄다. 당시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외환위기의 충격이 역설적으로 연금개혁의 원동력이 됐다.   그래도 연금 재정의 구조적 적자는 심각했다. 이번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그 결과물이다. 여기엔 소득대체율을 단계적으로 40%까지 낮춘다는 내용을 담았다. 물론 노 전 대통령 혼자 다 했다고 할 순 없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던 유시민 작가는 이런 회고(『한국 대통령 통치 구술 사료집 5: 노무현 대통령』)를 남겼다. 그는 “법안을 만들어 여당(열린우리당)에 주기 전에 먼저 야당(한나라당)하고 협상한 걸 대통령이 일일이 다 보고받았고, 그래서 백지 위임장을 받고 협상해 나갔다”고 말했다. 물밑 협상에서 법안 통과의 대가로 야당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선 “(노 대통령이) 뭐든지 다 해주겠다고 했다. 뭐든지 다”라며 “(협상이) 막힐 때마다 전 과정에 대통령이 개입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성사된 게 2007년 2월 9일 당시 노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여야 영수회담이었다. 유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를 봉건적이라 그래서 싫어하셨는데 ‘그래도 여야 영수회담을 해줘야 됩니다. 그쪽에서 원하기 때문에’라고 말씀드렸다”고 회고했다. 이날 영수회담에선 공동 발표문까지 채택했다. 여기엔 “국민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향의 국민연금 제도 개혁”이란 내용이 들어갔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해 4월 국회 본회의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올라갔지만 야당 의원들의 주도로 부결됐다. 당시 임채정 국회의장은 부결을 우려하면서 법안 상정을 망설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직접 임 의장에게 전화해 “정부가 책임질 테니 표결에 부쳐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법안 부결의 여파로 유 장관은 사퇴하고 한덕수 총리가 야당과의 협상에 나섰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여야 합의에 이른 게 현재의 소득대체율 40%다. 인제 와서 재원 대책도 없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른바 ‘노무현 정신’도 배신하는 것이다.   미래가 암울할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던 1980년대 얘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참모의 보고를 받고 이렇게 질색을 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라니, 나라 말아먹자는 얘기 아니오. 국민연금 하다가는 우리도 영국처럼 망해요.” 과도한 연금 적자로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던 영국처럼 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2020년대 대한민국은 1980년대 영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연금 재정의 부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나라가 거덜 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진영을 떠나 연금 적자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4.26 00:32

  • [안혜리의 시선]'잘못이 잘못이 아닌' 대통령의 남은 3년

    지난 16일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국민은 사과를 기대했지만 윤 대통령은 "국정방향은 옳지만 국민체감이 부족했다"며 변화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병식이 전혀 없네. '    여당의 4·10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첫 육성 입장표명 자리였던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생방송 직후 한 젊은 의사가 SNS에 올린 글이다. 이 포스팅을 보자마자 좀 과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썼는지 묘하게 이해가 가는 구석도 있었다. '병식(病識)의 부재'는 병에 걸렸지만 인지를 못 하거나 아예 부정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의학용어인데, 오죽 답답하면 이런 표현까지 썼을까 싶었다. 대통령이 이번에도 또, 진솔한 사과를 기대한 국민을 배반해 화만 더 돋웠으니 하는 말이다.     ■  「 형식·내용 부적절한 담화 반복 강서 보궐 참패 때도 "웬 호들갑?" 총선 참패 불구 태도 변화 없어 」    지금껏 민심과 어긋난 게 어디 사과의 타이밍뿐인가.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사회적 합의를 구하기는커녕 정부 내의 공론화 과정조차 없이 대통령 혼자 어느 날 뜬금없이 불쑥 관련 이슈를 꺼내 방침을 지시하곤 했다. 이렇게 나온 대통령 말 한마디로 입시(사교육)·연구 개발(R&D)·의료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여러 시스템이 한순간에 초토화되다시피 하는 걸 국민은 무기력하게 목격해야 했다. 취임 후 2년 넘게 지속해온 이같은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의 원인을 놓고 그동안 '김건희 여사의 입김'이라느니 '대통령실 내 특정 강성 문고리 권력의 오판', 혹은 '참모의 무능' 등 여러 해석이 분분했다. 공식적인 보고 라인을 통한 결정과 집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고들 느꼈기에 나온 반응들이다. 이런 추측을 하다 하다 '병식의 부재'라는 상상력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디올백'으로 상징되는 김건희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을 작위적 연출의 KBS 사전 녹화 대담으로 어물쩍 넘기려던 것이나, 출국금지까지 당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피의자인 전 국방부 장관을 굳이 대사로 임명하고 서둘러 출국시켜 외교적 망신을 자초한 일, 1999나 2001은 절대 안 되고 꼭 2000명이어야만 하는 오로지 대통령만 납득 가능한 의대 증원 수 지침 탓에 단 한 발도 앞으로 못 나가고 교착 상태에 빠져버린 의료대란까지….     잘못은 알지만 고집을 꺾기 싫어하는 성정의 발현이거나, 적당히 버티면 해결될 거라는 오판에서 내린 결정일 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뭐가 잘못인지에 대한 인식이 국민과 사뭇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특히 정권 초부터 반복되는 인사 참사를 볼 때마다 이런 의구심이 더 강하게 든다.    지난해 10월 12일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뒤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여당은 국민의 경고로 받아들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다. 연합뉴스 이번 총선 참패의 예고편과도 같았던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몇 주 뒤 대통령 최측근 중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들려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잠시 복기해보자면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당시 강서구청장의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 3개월 만에 윤 대통령이 무리하게 특별 사면을 하고, 바로 그 보궐 선거의 귀책 사유자를 다시 강서구청장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하도록 한끝에 결국 17.1% 포인트의 큰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에 완패했다. 여당의 선거 전략 실패라기보다 측근만 계속 돌려쓰는 윤 대통령 인사의 결정적 실패였다. 언론의 비판이 들끓었던 것은 물론이요, 여당 내에서도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작 그런 민심을 가장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윤 대통령이 선거 다음 날 이 최측근에게 "그깟 구청장 선거 하나 진 걸 갖고 웬 호들갑이냐"고 오히려 타박하더란다.     총선 참패와 관련해 겉으로는 참모를 내세워 비공개 대리 사과를 했지만, 이번에도 속으로는 "웬 호들갑이냐"며 의아해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결코 비약이 아니다. 요직을 검사와 지인으로 돌려막는 인사 스타일까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런 의심을 할 만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여당의 총선 열세가 점쳐지던 지난달 말, 윤 대통령이 여론은 아랑곳없이 갑자기 없던 자리를 만들어 본인의 20년 지기인 검찰 수사관 출신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당위원장을 민생특별보좌관에 임명한 게 대표적이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측이 위성정당 비례대표로 지원한 그를 안정적 당선권 밖 순번에 배치한 데 따른 분풀이 인사였다. 국회의원 자리를 거저 주지 않는다고 대통령 측근이 몽니 부리는 꼴도 볼썽사나운데, 대통령이 이를 만류하는 대신 그 엄중한 시기에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다니 정말 뜨악했다. 특히 정권 초기 주 특보 아들을 대통령실에 불러들여 이미 사적 채용 논란을 일으킨 전력을 고려하면 국민 입장에선 더더욱 해석 불가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3년, 정말 걱정된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4.18 00:30

  • [장세정의 시선]생각을 바꾸면 '나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4·10 총선 최종 성적표를 받은 정치권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성난 민심이 '검찰 정권'을 심판했다"며 환호하고, 다른 쪽에선 "범죄자들의 국회 입성을 막지 못했다"며 탄식한다. 민심이 홍해처럼 좌우로 쫙 갈라졌으니 앞으로 남은 3년 내내 정쟁이 일상이 되고 국민 통합이 요원해져 분열과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듯해 걱정스럽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각에서는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방치해 조국혁신당이라는 '기생 정당'의 출현을 못 막았다고 지적하고, 승자독식(勝者獨食)의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지 못해 사표(死票)가 양산됐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전국 254개 지역구의 총투표수는 2923만4129표였는데 민주당이 1475만8083표(50.5%), 국민의힘은 1317만9769표(45.1%)를 득표했다.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에 불과하지만,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1석, 국민의힘 90석으로 차이는 1.78배나 됐다. 선거 제도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일리가 있지만, 버스 지나간 뒤의 뒷북일 뿐이다.   ■  「 총선 참패로 윤 대통령 최대 위기 민심 얻을 과감한 쇄신 인사 필요 민정수석 되살려 정밀 검증해야 」   192석의 범야권은 이빨 빠진 사자를 공격하는 하이에나처럼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할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 등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할 태세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만, 집권 3년 차에 사실상 레임덕 처지인 대통령으로선 방어가 여의치 않을 듯하다. 22대 국회에 진출할 여당 정치인들이 공천권도 없고 힘도 빠진 대통령을 자기 일처럼 감싸주려 할지 의문이다.    벌써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의 탈동조화(decoupling) 움직임이 감지된다. 안철수(분당갑) 당선자는 "채상병 특검에 찬성한다"면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김재섭(도봉갑) 당선자는 "김 여사에 대한 여러 문제가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았다"며 "독소 조항 몇 개를 바꾼다면 특검법을 요구하는 국민 요청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김건희 여사가 서울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20대 대선 사전투표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총선을 포함해 지난 2년의 국정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많은 문제의 원점은 윤 대통령으로 수렴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사자는 좀 억울하겠지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숙명 같은 것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용산 집무실에 올려놓은 팻말(The Buck Stops Here!)을 거론하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귀속된다"고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야권보다 보수 진영의 비판에 더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탄핵당한 보수 세력에 혜성처럼 합류해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용기 있게 태클을 걸고 극적으로 정권을 탈환했는데, 인제 와서 보수세력조차 냉담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2022년 대선 승리로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보수의 채권자'가 됐다면, 크게 지지 않아도 될 총선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이젠 '보수의 채무자'가 된 셈이다. 2022년 3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승리가 확인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어퍼컷 세리모니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과거는 과거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3년의 미래다. 아마추어 골퍼가 얼떨결에 버디를 잡은 직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오비를 냈다면, 이제 마지막 남은 홀에서 마음을 다잡아 파세이브라도 하면 성공적일 수 있다. 아직 시간도 기회도 있다.  마무리를 잘하려면 결국 인사를 잘해야 한다. 한덕수 총리가 사의를 밝혔고, 이관섭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도 대폭 교체될 전망이다. 국무위원 중에도 중폭 이상의 개각설이 나온다. 민감한 인사는 양날의 칼이다. 인사를 잘하면 민심을 크게 얻을 수 있고, 잘못하면 대량 실점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이는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 참패로 어수선한 국정 분위기를 바꿀 마지막 기회가 과감한 쇄신 인사 카드다.  검증을 제대로 못 했거나 오기로 밀어붙이는 인사는 정치적 재앙이나 다름없다.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박순애 교육부 장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등 대표적 인사 실패 사례를 되풀이하면 민심을 완전히 잃어 다음 대선까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혈연·학연·지연·근무연 등으로 잘 아는 주변 인물을 중용하는 인사는 단념하고, 누가 보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널리 찾아서 쓰는 것이 답이다. 현행 인사 검증 시스템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면 꼼꼼한 검증이 가능한 민정수석실을 부활하는 결단을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2022년 12월 1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마련된 국무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 총리는 총선 참패 직후 사의를 밝힌 상태다. [대통령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심기일전해 생각을 바꾸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운명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4.15 00:32

  • [강찬호의 시선] 총선 끝나도 이재명-조국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강찬호 논설위원 1972년 11월 미 대선은 공화당 재선 후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50개 주중 49개 주를 싹쓸이해 선거인단 537명 중 520명을 독식했다. 적수인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의 고향 사우스다코타까지 차지했다. 맥거번은 충격으로 영국 망명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궤멸했다.   반년 전 워싱턴포스트의 특종으로 불거진 ‘워터게이트’는 닉슨 태풍에 묻혀 뉴스 화면에서 사라졌다. 워터게이트가 뭔지조차 모르는 미국인이 50%를 넘었다. 의기양양해진 닉슨 행정부는 “국민이 닉슨의 무고함을 인정한 것”이라며 워싱턴포스트를 ‘매카시즘’이라 맹공했다.     ■  「 조국, 내년 2월 내 3심 선고 전망 이재명도 세 가지 재판 결과 주목 법원, 흔들림 없이 ‘법대로’해야 」    그럼에도 워터게이트에 대한 미 법원의 재판은 흔들림 없이 진행됐다. 닉슨 압승 두 달만인 1973년 1월 존 시리카 연방 판사는 한밤중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한 워터게이트 주범 5명에게 법정 최고형인 3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닉슨 행정부가 권력을 동원해 이들의 입을 막을 것을 꿰뚫어본 강수였다. 경악한 5명은 감형을 받기 위해 “‘윗선’이 도청기 설치를 지시해 침입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장될 뻔했던 워터게이트는 이 판결로 재부상했고,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은 1년 반 뒤 사임하고 만다. 시리카 판사는 ‘법정 최고형 존’이란 별명과 함께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대선에 압승한 대통령의 파워에 굴하지 않고 ‘법대로’만 직진한 판사 덕분에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된 워터게이트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 야권을 대표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총선 와중에 법원의 재판을 받아왔다. 한데 두 사람을 대하는 법원의 행태를 보면 상식 밖인 경우가 많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고 ‘개딸’의 기세가 등등하니 두 사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카 판사가 봤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우선 조국 대표는 지난 2월 8일 2심에서 뇌물수수·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는데도 구속되지 않았다. 1·2심 다 실형을 선고받고도 구속을 면하고, 당을 창당해 금배지까지 넘보는 건 일반인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2심 김우수 재판장은 “(조 대표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도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3심은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필요가 특별히 없다. 피고인이 불출석한 가운데 그가 낸 상고 이유서를 대법관들이 검토하고 판결을 내리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김 판사야말로 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눈은 대법원을 향하고 있다. 1·2심 다 유죄 판단에다 양형까지 같은 만큼 법률심인 3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하지만 예상 밖의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3심 확정까지는 길면 1년이 걸릴 전망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3심 처리에 평균 11.7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와 선거법 위반, 검사 사칭 위증 교사 혐의 등으로 세 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게도 법원은 ‘특별 대우’를 해 구설에 올랐다.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부터 논란이었다. 또 선거법 사건은 복잡한 내용도 아닌데도 재판이 16개월이나 늘어진 끝에 재판장이 사표를 내는 바람에 총선 전 1심 선고가 불발됐다. 수사기록이 간단해 8~9월께 1심 선고가 점쳐져 온 위증교사 재판도 지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한다.   법원은 이제라도 두 사람에 대해 오직 법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총선에서 이기건 지건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닉슨에 압승을 안겨준 미국인들은 “FBI(연방수사국)가 워터게이트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란 닉슨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를 법정에 제출하라는 시리카 판사의 결정을 닉슨이 거부하자 대선 1년도 안 돼 그의 탄핵에 찬성하며 등을 돌렸다. 내가 뽑은 사람이라도 법을 어기거나 법원을 능멸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미국 유권자나 한국 유권자나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 민주당은 워터게이트를 언급하기 좋아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참사’를 비판하며 “워터게이트 닉슨을 거울삼으라”고 한 성명(2022년 10월 2일)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보수 공화당 대통령이 진보 민주당 의회의 탄핵 압박에 굴복해 사임한 사건이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선거에서 압승한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은 ‘법대로’ 판사가 없었다면 워터게이트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임도 명심해야 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4.11 02:16

  • [김성탁의 시선] 선거날, 향후 2년 간 선거 없음이 걱정된다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2대 총선 본 투표 날이다. 선거운동 마지막까지 여야는 열심히 지지를 호소했다. 격전지가 상당히 많다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당 지도부나 지역구 후보들이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목이 터지라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진작 좀 저렇게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총선 사전투표율이 역대 총선 중 최고치를 보인 것은 뭔가를 위해 투표장으로 몰려갔다는 의미다. 그 속에 여당 심판 여론이 높을지, 야당 심판 여론이 클지는 까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2년 정도에 치러지는 총선인 만큼 집권 세력의 그동안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가 판단 기준의 앞줄에 있을 수밖에 없다.     ■  「 누가 이기든 국회가 현안 풀어야 의대정원 문제부터 특위 꾸리길 의원·단체장 매년 뽑으면 어떨까 」    정부·여당이 아주 잘했을 경우 임기 중반 선거에서 야당이 설 자리는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선 정책 결정이나 집행에 직접 관여할 수 없는 야당이 명함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현 정부의 성적표가 좋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총선 결과가 반드시 여론조사와 일치하라는 법도 없다. 단 한 표라도 많으면 이기는 대통령 선거와 달리 총선은 지역구 의석의 합과 비례대표 확보 수로 결정된다. 막판 지지층 결집 여부에 따라 한쪽으로 쏠릴 수도, 큰 격차가 안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범야권이 이기든,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기든 이번 선거가 끝나면 제발 정치권이 국민 생활과 직결된 현안을 해결했으면 좋겠다. 대표적인 게 의대 정원 증원을 포함한 의료 대란이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자 대형병원까지 진료에 차질이 생기면서 뇌 질환 등 중병이 있는 환자들이 검사나 수술이 줄줄이 연기돼 불안에 떨고 있다. 하지만 해결할 역량이 정부에는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을 결정한 이후 의료계의 현실을 알고 있을 법한 관련 부처 고위직들마저 원안 사수에 총대를 메느라 바빴다. 진료 현장을 떠난 의료인들의 처사는 부적절하지만, 의사가 부족하다면서 이미 자격을 가진 의사들의 업무 수행을 막아버리는 전공의 면허 정지 강행 카드를 꺼내 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통령의 담화 역시 증원 수를 줄이겠다는 것인지 강행하겠다는 것인지 헷갈렸고, 총리가 나서도 대화체 하나 만들지 못하는 지경이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의대들이 학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를 막기 위한 시한에 쫓겨 개강하자 “대학들이 수업을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실은 썰렁하고 의대생 단체는 “행정적 재개일 뿐”이라고 했다. 실제 현장에선 올해 입학한 예과 1학년생들이 교양과목마저 수강을 중단하고 있다. 현장을 알고도 ‘정상화’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 기만이고, 현장을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다.   결국 해법을 찾으려면 총선에서 어느 쪽이 다수당이 되든 국회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연금개혁도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려워 국회에 특위를 두는데, 언제까지 정부에만 맡겨놓을 건가. 선거 기간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 협상을 말했고, 이재명 대표도 국회 논의를 거론한 만큼 여야가 당사자인 전공의 등 의료계와 환자 단체, 정부 등을 모아 접점을 찾았으면 한다. 정원만 늘린다고 필수과 기피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견을 포함해 필수 의료 살리기 대책을 제대로 만드는 작업도 국회가 주도하는 게 빠른 길이다.   투표소 대파 반입 금지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심각한 물가와 코로나 이후 심해진 양극화 대책 등 민생 현안도 정부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경제부총리나 대통령실 경제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면 여당인 국민의힘이 야당과 함께 세제와 재정 운용,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 문제까지 머리를 맞대면 좋겠다.   이런 기대를 하면서도 우리 국회가 과연 여야 협력을 할 줄 아는 집단인지 회의를 떨칠 수 없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선거와 오늘 총선이 없었다면 각 정당이 국민 여론에 반응이나 했을까. 정부·여당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선거 공천을 하면서 여론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비명횡사’ 공천을 줄줄이 선보였으니 말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향후 2년 동안 큰 선거가 없다는 게 걱정된다. 자잘한 보궐선거가 있지만, 2026년 9월 지방선거까지 공백기다. 그때까지 또 민생 현안은 제쳐놓고 쌈박질만 계속할까 겁난다. 그러다 또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이 가까워지면 서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나설지 모르겠다. 해법 찾는 정치를 이번에도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절반씩 나눠 매년 선거로 뽑는 식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해야 계속 국민 눈치를 볼 것 아닌가.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024.04.10 00:33

  • [주정완의 시선] 공시가격 널뛰기에 빌라는 대혼란

    주정완 논설위원 정부가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뒤에서 울상 짓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빌라라고 하는 다세대 주택을 보유하고 전세 세입자를 들인 집주인들이다. 세금에서 아낀 돈은 수만원에 불과하지만 경우에 따라 수천만원을 토해 내야 할 수도 있어서다. 세입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전세 계약이 끝나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빌라 임대 시장과 주택 공시가격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모양이나 면적·구조 등이 천차만별이다. 부동산 업계 용어로는 개별성이 강하다고 표현한다. 빌라는 매매도 활발하지 않다. 그러니 적정한 실거래가를 따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값이 전셋값 아래로 내려간 ‘깡통전세’가 속출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  「 주택 재산세는 찔끔 내리겠지만 전세보증 축소에 집주인도 불만 서민 ‘주거 사다리’ 훼손 말아야 」    이럴 때 세입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했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런데 HUG는 지난해 5월 전세보증 가입 한도를 주택 공시가격의 126%로 낮췄다. 예컨대 공시가격 1억원인 빌라가 있다면 1억2600만원까지만 전세 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전에는 공시가격의 150%가 한도였다. 이런 기준 변경만으로도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한도가 대폭 줄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를 매길 때 기준이 된다. 따라서 공시가격을 내리면 세금도 내려간다. 빌라 집주인이라면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공시가격 인하로 전세보증 한도가 줄어든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연립주택·빌라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국 평균 18.63% 내렸다. 2022년(17.2% 인상)과 비교하면 극과 극이다.   국토부는 올해 공시가격을 전국 평균 1.52%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올해와 지난해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안심할 수 없다. 통상 전세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진다. 2022년 공시가격이 급등했을 때 이뤄진 전세 계약의 만기가 올해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빌라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보증 가입을 조건으로 세입자를 들이려면 2년 전보다 훨씬 싸게 내놔야 한다. 이런 집에선 기존 세입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현실에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 다음에 그 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게 잘 안 되면 집주인과 세입자가 모두 곤란해진다. 전세보증 한도 축소가 집주인과 세입자의 분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일차적인 잘못은 2022년과 그 이전에 공시가격을 과도하게 끌어올린 문재인 정부에 있다. 사실 정권 초기엔 그럴 생각까진 아니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의 책(『부동산과 정치』)에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근무했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보유세 강화에 신중했다. 최대한 덜 시끄럽게, 이른바 ‘로우키’로 공시가격의 점진적 인상을 통해 보유세를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점진적 인상’이었던 공시가격의 정책 목표는 어느 순간 ‘대폭 인상’으로 변했다. 국토부가 2020년 11월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주택의 유형이나 가격대와 관계없이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게 해주자는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수현 전 실장도 “사실상 전 국민의 부동산 세금을 올리겠다고 선포한 셈”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공시가격을 대폭 내린 윤석열 정부에게 무조건 좋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필요하지만, 너무 한꺼번에 되돌리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현재 빌라 시장에선 “사지도, 살지도, 짓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빌라는 매매도 잘 안 되고, 전세도 잘 안 나가고, 새로 짓지도 않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모든 국민이 아파트에 살 수 없다면 빌라는 꼭 필요한 주택 유형이다. 다세대 주택으로만 따져도 서울에 83만 가구, 전국에는 229만 가구가 있다. 법적으로 단독주택으로 분류하는 다가구 주택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특히 가진 돈이 적은 서민층이나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등에게 빌라는 그동안 ‘주거 사다리’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과거 전세 위주였던 빌라 임대 시장은 월세 위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1~2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신규 임대 거래에서 월세의 비중은 70%를 넘었다. 월세가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월세가 갑자기 늘면 집주인은 집주인 대로, 세입자는 세입자 대로 혼란을 겪게 된다. 서민 주거 사다리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걸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4.05 00:44

  • [안혜리의 시선]'정치재해' 보상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인 조국 대표(가운데)와 박은정 전 검사(왼쪽),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장(오른쪽). 정치보복을 앞세워 지지율을 얻고 있는데, 이들 모두 당선권이다. 연합뉴스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 열기가 고조되는 게 아니라 국민의 혈압만 치솟고 있다. 각 당은 요동치는 지지율 그래프를 보면서 차지할 의석수와 그로 인한 정치적 역학관계 계산에 여념이 없겠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제 아예 총선 결과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정확히는, 기대를 접었다.    여야 각 정당의 대진표를 보고 있자면 대략 난감이다. 투표하든 말든, 무슨 당을 선택하든 결국 사리사욕·권력욕에 눈 멀어 자기 당 보스의 아부꾼 노릇을 자청하며 충성 경쟁할 사람만 국회에 가득 채워질 게 뻔해서다. 한마디로 표 줄 곳이 없다. 민생에 눈 감은 사상 최악의 21대 국회를 견디고, 거대 양당의 수준 미달 공천 파동과 저질 막말 경쟁을 겨우 참아냈더니 저 앞에 놓인 게 역대급 퇴행적 국회라니. 게다가 이들이 막대한 국민 세금을 받아가며 반드시 저지르고야 말 온갖 분탕질을 생각하면 화가 나다 못해 총선 이후가 정말 두렵다.    ■  「 표 줄 곳 없는 역대 최악 22대 국회 조국·정치 검사의 보복정치 임박 '정치판 중처법' 도입하고픈 심정 」    안 그런가. 어느 당이 몇 석을 가져가는지와 무관하게 이미 안정적 당선권에 든 각 당 비례대표·지역구 후보의 면면만 봐도 22대 국회에서 펼쳐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국회에 입성한 정치 검사들의 보복 정치, 패싸움 정치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나라를 두 동강 낸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치 보복을 내걸고 창당한 조국혁신당은 현재 지지율(22%)대로라면 지역구 한석 없이 무려 12석을 확보한다. 비례대표 명단엔 2심 징역 2년을 받은 조 전 장관 본인(2번)은 물론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해임된 박은정 전 부장 검사(1번), 울산시장 선거 개입으로 1심에서 징역형 받은 검수완박 주역 황운하 의원(8번) 등이 포함돼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탄 국회 운영에 지칠 대로 지쳤는데 아예 복수심에 사로잡힌 범죄자들이 모인 이 기묘한 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어떤 난장을 벌일지 벌써 한숨만 나온다. 내놓겠다는 1호 법안이 '한동훈 특검법'이니 할 말 다했다. 여기에 현직 검사 신분으로 조국 북 콘서트에 등장해 윤석열 정부 비판을 쏟아냈던 이성윤 전주시을 후보 등 민주당의 친문 검사 출신 4인까지 가세하면 정말 목불인견이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법원 허락없이 본인 재판은 불출석한채 원창묵, 송기헌 후보와 함께 원주 중앙시장을 방문했다. 22대 국회는 21대보다 더한 방탄 국회가 될 전망이다. 뉴스1 지난 2019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를 다시 세우고, 내로남불을 일삼는 위선적 인물을 정치권에서 솎아내는 계기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민심의 심판과 사법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인물들이 기존의 몰상식에 더해 몰염치까지 장착하고 막강한 입법 권력을 쥐게 되다니 기가 막히다.    여기엔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책임이 적지 않다. 표 갈 곳 없다는 고민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콘크리트 보수층마저 선뜻 찍기를 저어할 만큼 오만한 국정 운영이 이어지는데 당은 대통령 눈치 보느라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공천이라도 잘했으면 어느 정도 만회했겠지만 이마저도 혁신과는 거리가 먼 구태 그 자체였다.    명분 없는 의원 꿔주기로 탄생시킨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부실 검증 논란에 한 차례 대대적 조정을 했는데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동교동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조카인 한지아 비대위원(11번), 그리고 조정 끝에 13번에서 당선권(16석) 밖(21번)으로 밀리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 법무비서관 강훈 변호사의 딸인 강세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을 공천해 불필요한 '(큰)아빠 찬스' 논란을 만들었다. 이러니 정치적 자신이라고는 후광밖에 보이지 않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인 곽상언 민주당 종로 후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그렇게 기회의 공정을 요구해왔는데 22대 국회는 여야가 합심해 세습 권력의 힘만 보여주게 될 판이다.    지역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힘은 당초 약속과 달리 현역 85%에 공천을 몰아줬다. 그 과정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마구잡이 돌려막기 공천을 했다. 이러니 '비명횡사'(친이재명 아니면 공천에서 살아남지 못함)로 벼락공천돼 본인 지역구 투표권조차 없는 한민수 민주당 강북을 후보의 흠을 부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의문이 든다. 민생 법안은 외면하고 맹목적 추종이거나 발목잡기만 일삼는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 무엇보다 국민은 왜 이걸 지켜보느라 스트레스받아야 하나. 이쯤 되면 웬만한 산업재해는 저리 가라 할만한 '정치재해'를 온 국민이 겪는 셈인데, 정치판 중대재해 처벌법이라도 만들어 수준 미달 정치인들이 국민 뒷목 잡게 할 때마다 당 대표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의 벌금을 물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선거 치를 돈으로 국민에게 정치재해 보험금이라도 주든가. 너무 답답하니 이런 헛된 망상까지 든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3.28 00:28

  • [장세정의 시선] 북한 도발보다 더 불안한 것은…

    장세정 논설위원 지난 22일은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이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도발, 같은 해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청년 군인 '55 용사'가 산화했다. 국민과 함께 영웅을 추모하고 안보의식을 북돋우며 국토 수호 결의를 다지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정부기념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올해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다면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군통수권자의 엄중한 경고를 북한은 흘려들을 공산이 커 보인다. 한·미 동맹과 유엔군사령부 회원국들이 참여해 4~14일 실시한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훈련 기간에 북한은 맞대응 훈련을 해왔다.    ■  「 대남 국지도발 우려 상존하는데 안보에 역행하는 언행 정상인가 '반 헌법 세력'은 투표로 여과를  」  김정은이 6일 군부대에서 소총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발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노동신문 뉴스1]  특히 지난 18일에는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장착할 수 있는 초대형 방사포(KN-25 단거리 탄도미사일)를 여섯 발 쏜 현장에서 김정은은 "파괴적인 공격 수단들이 상시 적의 수도와 군사력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완비된 태세"를 주문했다. 연초에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라고 선언하더니 대남 도발 협박과 무력 적화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막강한 군사력, 북한보다 60배나 강한 대한민국의 경제력 등을 고려하면 북한의 전면전 도발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북한의 과거 행태를 돌아보면 국지 도발 가능성은 상존해도, 봉건 세습 독재 정권의 종말을 재촉할 전면 남침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2013년 9월 당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소리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데 온갖 기이한 수사법을 동원한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협박보다 한국 사회를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다. 우리 내부 질서를 교란하고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행태들이다. 과거에는 극소수였지만, 지금은 사회 전반에 편향된 이념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이석기 의원은 이듬해 터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고, 2014년에는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심판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체됐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상위 순번에 ‘통진당 후신’이란 의혹을 받는 진보당 추천 후보가 3명이나 포함돼 찬반 논란이 뜨겁다. 2020년 5월 29일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국회에서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 등 제기된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 받았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공천으로 21대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의원이 지난 4년간 보여준 언행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인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1월엔 의원회관에서 친북 성향 인사들을 모아 놓고 남북 관계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북한이 전쟁으로라도 통일을 결심한 이상 우리도 그 방향에 맞춰야 한다"고 발언해 충격을 줬다. 지난 1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은 "전쟁 연습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군사적 충돌을 부를 수 있는 적대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방어 차원에서 진행한 한·미 연례 군사 훈련을 비난해온 북한의 대남 공격 메시지를 국회의원이 앵무새처럼 떠든다면 정상적 언행인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8일 황운하 의원의 입당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조 대표는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고, 황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 관련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은 상태에서 항소심이 진행중이다.[뉴스1]  2019년 9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한 조국 씨는 비례위성정당이 가능해진 선거법의 틈새를 활용해 정당을 만들고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사문서위조,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도 피해자인 것처럼 큰소리치고 있다. 출마는 자유라지만, 후안무치에 눈 감으면 우리 사회의 법과 도덕은 또 흔들린다.  2015년 8월 4일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매설한 목함 지뢰가 폭발해 하재헌·김정원 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청년 군인의 고통을 위로해줘야 할 정당은 '목발 경품'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봉주 전 의원에게 공천장을 줬다가 뒤늦게 취소했다. 운동권 세력이 북한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호국 정신을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짐작 가능한 장면이다. 정봉주 전 의원이 지난해 1월 31일 국회 행사장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2일 후보등록이 마감되면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됐다. 단순히 의원 300명을 새로 뽑는 이벤트로 끝내서는 안 된다. 유권자로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안에서 흔들고 헌법 가치를 망가뜨리는 세력은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무다. 마침 오는 26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태어난 날이다. 그가 이 땅에 전수하고 뿌리내린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3.25 00:47

  • [강찬호의 시선] 여당이 매달릴 건 민심뿐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요즘 수도권에서 유세하는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은 40대 유권자만 보면 철렁한다. “너희 안 찍는다”는 적의에 찬 표정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50대도 절반은 비슷하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20대 남성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날 선 표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4·10 총선이 4년 전 총선과 판박이가 될 공산이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석권하고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103석에 그쳐 사상 최악의 참패를 한 그때와 민심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게 국민의힘 후보들의 전언이다. 19일 자정께 지역구를 종일 돌고 귀가한 수도권 여당 현역 의원 후보에게 전화했다.     ■  「 수도권 분위기 싸늘, 여 후보 긴장 독선 이미지 대통령실도 리스크 “의정갈등 피로감…타협점 찾아야” 」    돌아다녀 보니 어떤가. “민심 이반이 정말 심해…. 이 기조로 가면 4년 전 총선처럼 민주당이 180석, 어쩌면 그 이상 먹을 수도 있다.”   민주당도 악재(이재명 사천 파동)가 있지 않나. “유권자들은 거기(민주당)보다 우리(여당)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보더라. 비명 탈당파들이 무소속 출마하면 민주당 표 갉아먹을 것 아니냐고? 많이 못 먹어. 유권자들, 그쪽에 관심 없더라.”   “야당보다 여당에 더 문제가 있다면 그 핵심이 뭐냐”고 캐물었다. “대통령실”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이다. “거리에서 만난 이들에게 피부로 느끼는 가장 심각한 게, 대통령 욕하는 거다. ‘반드시 심판하겠다’는데 섬뜩하더라. 황상무 막말도 문제지만, 이종섭 도피 논란이 크더라. 대사 부임을 도피성 출국으로 규정한 민주당 덫에 완벽히 걸려들었다. 채 상병의 순직을 안타까이 여기는 민심에 불을 붙인 측면도 있다. 조국 신당의 약진도 의외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데 악재임은 분명하다.”   여론조사에 정통한 여권 관계자도 “최근 여당 지지율이 올랐다가 떨어진 건 민주당 공천 파동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 걷히면서 정권심판론이 재부상한 때문이라 보면 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열흘 전 민주당을 10%포인트 넘게 따돌리며 피크에 올랐을 때조차 승리 가능한 지역구의 최대치는 135곳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구 의석 254석의 근 절반인 122석이 걸린 수도권 인구 구성이 여당에 워낙 불리하기 때문이다. 30·40세대가 많아졌는데 40대는 워낙 반(反)여당 성향이 강하다. 20·30대는 반여당 성향이 덜하지만, 40대처럼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데다 여성들은 세대 불문하고 야 당 지지층이 두배 많단다. 그나마 20·30대 남성들이 여야를 반반씩 지지하니까, 이준석 전 대표가 여성을 포기하고 이 세대 남성들에 접근하는 갈라치기 전법을 써서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당은 여성 표심에선 더 멀어졌고, 남성들도 채 상병 수사 외압 논란 등 지난 2년간 정부의 헛발질로 인해 정권에 등 돌린 이들이 늘면서 여당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5차례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이명박 대통령 집권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 빼곤 다 참패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럼 국민의힘에겐 패배밖에 남은 길이 없을까. “아니다”라고 이 전문가는 말했다. “야당도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등 중도층이 싫어하는 악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민심을 따르고, 누가 덜 더럽냐는 경쟁에서 민심을 붙잡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총선 패배 시 대통령 탄핵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의힘에게 이보다 더 절박한 충고는 없다.   대통령실이 황상무 수석 사퇴와 이종섭 대사 귀국을 결단한 20일 낮. 서울 강북권의 국민의힘 후보에게 “분위기 어떤가”하고 물어보았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어제까지 ‘황상무 사퇴 안 시키면 너희 다 죽어’라고 소리치던 분들 표정이 달라졌다. ‘그거라도 해 다행이다’며 손을 잡아주더라. 물가도 너무 올라 걱정했는데 정부가 나서니까 반전이 생기더라. 나흘 전쯤 민주당이 내 지역구 사무실 앞에 ‘사과 한 개 5000원!’이란 현수막을 붙였는데, 오늘 떼버리더라. 사괏값이 조금 떨어지니까 할 말이 없어진 거다.”   민심은 권력 하기에 달렸다. 무시하고 버티면 철퇴를 내리지만, 존중하고 껴안으면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 그 점에서 여당이 특히 명심할 것이 있다. 장기화한 의료대란으로 인한 국민 불안 해소다. 필자가 인터뷰한 여당 후보 4명은 입 모아 말했다.   “대통령이 의사 늘리는 데는 다들 찬성한다. 그런데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너무 오래 끈다는 피로감, 동네 의원도 못 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크다고 만나는 유권자마다 아우성이다. 이제는 타협해 정부도 의료계도 윈윈하는 결과를 내기 바란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3.21 00:28

  • [주정완의 시선] “국민연금 신·구 분리” KDI 처방 검토해볼 만

    주정완 논설위원 여기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식당에선 65세 이상 노인에게 밥을 나눠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젊을 때 적어도 10년간 밥값을 쌓아둔 사람만 밥 먹을 자격이 있다. 65세 이상이라고 다 같은 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젊을 때 낸 밥값에 따라 손님을 차별한다. 밥값을 많이 낸 사람은 푸짐하게, 적게 낸 사람은 조금만 밥을 떠준다.   그런데 이 식당은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다. 손님이 낸 밥값보다 비싼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밥을 많이 팔수록 이윤은커녕 손해를 본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잠재 부실이 엄청나다. 이런 식이면 언젠가 식당이 망할 수밖에 없다. 마을 젊은이들은 걱정이 앞선다. 밥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밥값으로 쌓아둔 돈만 날릴지 몰라서다.     ■  「 2055년 완전 고갈은 예고된 재앙 기존연금은 세금으로 지원하되 새 연금은 낸 만큼 받아가게끔 」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를 식당에 비유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당장은 멀쩡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현재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에 완전히 바닥난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다. 1990년생이 노령연금을 받을 65세가 되면 연금 기금이 한 푼도 남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나 국회나 정치적 부담이 큰 연금개혁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얼마 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두 가지 대안을 냈지만, 내용은 실망스럽다. 하나는 더 내고 더 받기, 다른 하나는 더 내고 그대로 받기다. 둘 다 연금 고갈의 시기를 잠시 늦추는 ‘땜질 처방’일 뿐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손님이 낸 밥값보다 비싼 음식을 제공한다는 문제의 핵심은 여전하다. 오히려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더욱 키우는 ‘독소 조항’까지 들어갔다.   대안은 없을까.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안에 눈길이 간다. 현재 단일 체계인 국민연금을 둘로 나누는 게 제안의 핵심이다. 식당으로 치면 기존 식당과 새 식당의 둘로 쪼개자는 얘기다. 기존 식당은 어쩔 수 없더라도 새 식당은 운영 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연금개혁 논의의 틀을 뛰어넘는 신선한 발상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기존 식당(기존 연금)에선 이미 손님에게 약속한 대로 밥을 준다. 이렇게 하면 막대한 적자를 피할 수 없다. 올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609조원이다. 시간을 끌수록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 돈은 전액 국가 재정으로 메운다. 약속을 지키면서도 식당이 망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뿐이다.   새 식당(새 연금)에선 손님이 밥값을 낸 만큼만 밥을 준다. 100만원을 낸 사람이라면 원금 100만원에 수익금을 더한 만큼만 돌려받는 식이다. 전문용어로 하면 기대 수익비가 1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신승룡 KDI 부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높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대 수익비 1도 그렇게 나쁜 숫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쉬운 길이 아니다.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우선 세대 간 불평등이다. 같은 밥값을 냈더라도 손님이 속한 세대에 따라 식당의 밥이 달라진다. 먼저 태어난 세대는 좋은 밥을 먹겠지만, 나중에 태어난 세대는 그렇지 않다. 출생연도가 늦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600조원 넘는 잠재 부실을 메우는 데 들어갈 돈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도 문제다. 최근 저성장 흐름을 고려하면 세금을 대폭 올리긴 어렵다. 대규모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결국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빚을 떠넘기는 셈이다.   세대 내 불평등도 고민해 봐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다. 밥값을 많이 낸 사람의 몫을 일부 덜어내 적게 낸 사람에게 나눠준다. 그런데 새 식당이 밥값만큼만 밥을 준다면 소득재분배가 어렵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사회보험인 국민연금과 민간 저축상품이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어쨌든 연금 재정의 안정은 KDI 제안의 최대 장점이다. 일정한 한계는 있지만 그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기존에 밥값을 낸 사람들은 약속받은 밥을 먹는다. 국가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를 줄 수 있다. 새로 밥값을 내는 사람들은 그 돈을 못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강구 KDI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의 동의를 받으려면 적어도 낸 만큼은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꼭 이대로 하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겉돌고 있는 연금개혁 논의에 전향적 발상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3.14 00:30

  • [안혜리의 시선]기어이 의사의 굴복을 원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의사를 향한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불법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의사들은 "국민 생명을 볼모로 잡는 건 정부"라며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의대 교수가 잇따라 사직 의사를 밝혔다. 경북의대 이식혈관외과 윤우성 교수와 충북의대 심장내과 배대환 교수다. 두 사람 모두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주요 명분으로 삼는 부족한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재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날은 윤 대통령이 경북대에서 열린 16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지역 기반 명문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좋은 의사를 길러내겠다, 대구를 비롯한 지방에서 그 혜택을 더 확실히 누리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당일이었다.    윤 교수는 "외과가, (신장이식 등 혈관질환을 다루는) 이식혈관외과가 필수과라면 그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걸 짊어진 전공의 뒤에 (교수가) 숨는 현실이 부끄럽다"며 사직했다. 배 교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  「 10년 뒤 의사 1만명 늘리겠다고 의사 8000명 면허 취소 옳은가 이미 접어든 필수의료 붕괴의 길 」  젊은 교수들의 사직 소식에 언론은 "수억 원 버는 배부르고 선민의식 가득한 엘리트 의사들의 밥그릇 투쟁에 교수까지 합류했다"는 식으로 비판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사직은 파국으로 치닫는 작금의 의·정 갈등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출발은 지역의료·필수의료 살리기와 고령화하는 의사집단에 새 피 수혈하기였다. 그런데 그 명분이 사라진 건 이미 오래고, 처벌 만능 검사 정부의 의사 군기 잡기로 변질해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만 의료현장을 떠나게 만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해 가장 먼저 현장을 떠난 건, 수억 원 버는 성형외과·피부과 개업의들이 아니다.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누려온 의대 교수도 아니다. 정부가 진작에 해결했어야 할 비정상적인 원가 이하 의료수가 구조 탓에 저임으로 중노동을 견뎌온 각 종합병원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필수의료 전공의들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팔아 계속 적자를 보는 어떤 회사가 비용을 줄여보겠다고 직원 40%를 저임의 수습사원으로 채워놓고는 연속 36시간 잠도 못 잘 만큼의 엄청난 노동강도를 강요해온 것과 같다. 이런 회사에 더는 미래가 없다고 전부 사표를 던졌더니, 사측이 이건 사표가 아닌 불법 파업이라며 사표는 수리할 수 없으니 무조건 근무하라고 윽박지르다 못해 여길 나가면 아무 데도 취직 못 하게 불이익 주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윤 교수가 "모든 걸 짊어진 전공의 뒤에 숨어 부끄럽다"고 한 이유다.    결코 비약이 아니다. 가령 의료진 12명이 투입돼 평균 14~15시간 하는 '고혈류 뇌혈관 우회수술'의 수가는 237만 5000원이다. 수가를 적용받지 않는 성형외과 코 수술보다 훨씬 싸다. 또 '뇌동맥류 결찰술' 수가는 250만원인데, 일본은 1140만원이다. 이렇게 낮은 수가 탓에 수술할수록 병원이 적자를 보는 구조라, 병원은 전문의를 적정 인원만큼 채용하는 대신 공백을 전공의들로 채워왔다.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실 모습. 전공의에 이어 전문의를 딴 전임의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전공의가 대체 불가하지만, 전국 모든 병원이 이런 상황이라 특히 필수의료 전공의는 더더욱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해 말 집계된 2024년도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필수의료 진료과목 지원율 감소 추세에 따라 올해도 소아청소년과 25.3%, 흉부외과 38.5%, 산부인과 67.4%, 응급의학과 79.6%에 불과했다. 환자를 제대로 보려면 꼭 필요한 적정 정원조차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부족한 수만큼 해당 필수의료로 진로를 택한 전공의들이 이미 오랫동안 눈 한번 못 붙이고 어쩔 땐 연속 36시간, 또 누구는 이틀에 한 번 당직을 서는 가혹한 업무환경을 견디며 지금까지 병원을 지켜왔다는 의미다. 이들은 의사면허는 땄으니 선배 수만 명이 그리했듯이 굳이 어려운 전문의를 따지 않고 지금 당장에라도 '진료과목 성형외과·피부과' 간판을 내걸고 얼마든지 쉬운 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 동안 병원을 지켜왔다. 그런데 돌아온 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방침 첫날부터 대통령·총리·검찰총장 등이 돌아가며 내뱉은 "협상 불가, 면허 취소, 처벌" 발언, 즉 범죄자 취급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아니라 예수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 아닐까.    혹자는 "이번에 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관철하면 총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며 응원한다. 총선 결과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2000명을 관철하든, 단 1명의 정원도 못 늘리든 이미 소아청소년과에서 목격했듯이 앞으로는 의대 정원과 무관하게 모든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의사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이미 고령인 현직 전문의들이 다 떠나면 우리 생명을 살릴 의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수준 높고 값싼 한국 필수의료의 붕괴, 우린 이미 그 길에 접어들었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3.07 00:28

  • 총선 과반의 변수...요동치는 수도권과 충청 [김성탁의 시선]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선거는 마치 염전과 같다.” 여야를 넘나들며 국내 정치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한 인사의 말이다. '하얀 금'으로 불리는 천일염을 얻으려면 바탕이 되는 갯벌과 햇볕, 바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닷물을 들이는 갯벌은 지지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이 갯벌에 해당한다. 정치 성향으로 따지면 보수, 진보 성향의 유권자로 분류가 가능하다.    22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정당별 지지율 추이를 보면 4년 전 총선처럼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는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여야 중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이 나올 것인지가 관심이다. 151석을 차지하면 국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원장을 확보하고, 각종 법안 처리에서 유리해진다. 여권은 국정 동력을 살리기 위해, 야권은 집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강변북로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우상조 기자  최근 개별 지역구에 대해까지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현시점에서 예상 의석의 향배를 가늠해보자. 확정된 지역구 254석 중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은 28석, 국민의힘의 기반인 영남은 65석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북 남원·임실·순창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하고 호남을 석권했었다. 이번 총선에선 전남 순천을에 이정현 전 의원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여부를 지켜봐야 하지만, 지난 총선과 비슷한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영남 지역구 65석 중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 3석, 경남 3석, 울산 1석을 얻었다. 여권 일각에선 영남 전체적으로 5석가량을 잃을 수 있다는 견해가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 흐름은 민주당에 불리하다. 경남 양산을에 대해 지난달 한국리서치·모노리서치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하거나 밀리는 것으로 나왔다. 민주당에 불리하지 않다고 평가 받는 여론조사꽃이 선거구 획정 전인 지난 1월 민주당 현역 의원 지역구인 부산 북·강서갑을 조사한 결과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크게 앞섰다. 국민의힘에선 5선 서병수 의원이 출마한다.    강원도의 경우 지난 총선에선 미래통합당과 무소속 등 국민의힘 계열이 5석을, 민주당이 3석을 확보했었다. 여론조사꽃의 지난달 말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 춘천·철원·화천·양구군갑 조사에서 총선 때 찍을 정당의 후보를 묻자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차이는 2.4%포인트였다. 민주당이 3석을 모두 얻었던 제주에서도 서귀포 지역구의 경우 여론조사꽃의 지난달 말 조사 결과 국민의힘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보다 16.6%포인트 높았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 때 얻었던 지방 지역구 의석에서 득점 요인이 약해지는 모습이다.   ■  「 여야 텃밭 영남 65석, 호남 28석 민주 이겼던 스윙보터 지역 흔들 견제냐 지원이냐 어떤 바람 불까 」   하지만 지역구 의석수에서 영남이 호남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민주당이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 텃밭에서 얻은 의석도 극소수여서 이 정도 변수로는 승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민주당의 지난 총선 대승은 수도권과 충청에서의 압승이 핵심 요인이었다. 이번 총선 역시 ‘스윙 보터’인 두 지역에서의 결과로 승부가 결정 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 121석 가운데 18석만을 내주고 모두 이겼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이후까지만 해도 수도권 판세는 야당으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지지율 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따돌렸다.    갯벌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려면 햇볕이 필수인데, 선거에서 햇볕은 당이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파열음이 두드러지면서 수도권과 충정 지역 조사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 지역구인데도 국민의힘 후보와 접전을 벌이는 경우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경기 수원은 여당의 험지로 불려왔는데,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달 하순 수원 갑·을·병·정·무 지역구 주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민주당 우세 2곳, 경합 2곳, 국민의힘 우세 1곳으로 집계됐다.    여론조사에서 발견되는 특이점 중 하나는 일부 지역구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오는데도 정당 지지율이나 후보 선호도에서는 국민의힘이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이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평가 기회가 되곤 했지만, 한동훈 비대위 체제 가동과 의대 증원 이슈 등이 등장하면서 희석되는 경향으로 볼 수 있다. 남은 기간 정부 견제론과 정부 지원론 중 어느 바람이 세게 불지, 여야가 새로운 이슈로 바람을 일으킬지 지켜볼 일이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024.03.06 00:26

  • 쿠바에 뒤통수 맞은 북한의 '두 국가 자충수' [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논설위원 한국과 쿠바의 수교 선언은 말 그대로 역사적이다. 한·중 수교보다 더 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당시 김일성이 받은 충격보다 이번에 한-쿠바의 전격 수교 소식을 접한 김정은의 충격이 더 클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수교 발표 이후 보름 이상이 지나도록 북한이 수교에 대해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상이 매우 큰 듯하다. 2018년 11월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난 김정은.[연합뉴스]  사실 한국과 쿠바의 교류 역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4월 한인 1033명이 구인 광고를 보고 인천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으로 갔다. 이들 중에 288명이 "설탕 산업이 호황이라 사탕수수 농장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921년 3월 증기선을 타고 쿠바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가격이 폭락하면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며 겨우 연명했다.      ■  「 경제난에도 북한 눈치 보던 쿠바 '두 국가' 선언 직후 한국 손 잡아 북한도 쿠바 용기·결단 배워야 」   한인들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역만리 타향에서 차츰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쿠바에 1000명가량 살고 있다. 임천택(1903~1985) 전 쿠바한인회장은 한인 근로자들의 박봉에서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번 수교 이전에도 한국과 쿠바 정부의 교류는 꽤 오래전에 있었다. 1898년 스페인 지배에서 독립한 쿠바가 1949년 7월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지만, 그동안 공식 수교는 없었다. 6·25전쟁 기간에는 쿠바가 27만 달러를 지원했고, 1957년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쿠바 대통령이 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1986년 4월 평양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최고 지도자와 김일성 북한 주석. [브라질 북한 선전매체 화면 캡쳐]  하지만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공산 혁명에 성공하면서 교류가 단절됐다. 특히 1960년 8월 쿠바가 북한과 수교하면서 쿠바는 중국·러시아에 이은 북한의 3대 해외 외교 전략 거점 역할을 해왔다. 북한은 '반미 사회주의'라는 공통점을 강조하면 미국에 맞서 싸운 '형제국' 쿠바에 10만정의 AK소총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이 총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지키겠다"고 외쳤으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의 격랑에 휩쓸렸다.  2005년 코트라 아바나무역관 개설을 계기로 한-쿠바 관계에 다시 물꼬가 트였다. 한국 제품들이 쿠바로 흘러 들어갔고, K-팝 등 한류가 열정적인 쿠바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2015년 7월 미국과 쿠바가 수교하고 2016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바나를 방문하면서 한국에도 수교 기회가 찾아왔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바나를 방문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 쿠바 땅을 밟았고, 2018년 5월에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방문하면서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트럼프 정부의 경제제재와 2021년 1월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관계가 급랭했다.  그래도 한-쿠바 수교의 최대 장애물은 미국보다 북한이었다.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자 놀란 북한은 고위급 인사를 쿠바에 대거 파견해서 한-쿠바 수교 견제에 나섰다. 특히 윤병세 장관의 방문 이후 북한의 권력 실세 최룡해가 2016년부터 3년간 네 차례나 쿠바를 방문했을 정도로 북한이 위기감을 드러냈다.     2018년 8월 김정은의 특사로 아바나를 방문한 최룡해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면담하는 모습.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줄곧 북한 눈치를 보던 쿠바 측이 지난달 7일 갑자기 "수교하자"며 한국 측에 연락했고, 불과 1주일 만에 유엔에서 대사급 국교 수립을 전격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수교 작업에 참여했던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쿠바의 태도 변화에 대해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에 따른 경제난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쿠바는 2021년 화폐 개혁에 실패하면서 물가 폭등으로 "먹고 살게 해달라"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쿠바로서는 북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해 수교 기회로 활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족과 통일을 부정한 김정은의 대남 전략 급변침이 자충수가 됐고, 쿠바가 한국과 손잡게 됐으니 뒤통수를 맞은 격이란 얘기다. 2016년 11월 28일 김정은이 주북한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모습. 김정은은 방명록에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이라 적었다. [연합뉴스]  당분간 북한은 한-쿠바 수교 쇼크의 돌파구 찾기에 골몰할 것이다. 갑자기 일본에 손을 내밀고, 코로나19 이후 독일·영국·스웨덴·스위스 외교관을 잇따라 초청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땜질 처방으로 북한 정권의 실패와 고립을 감추기 어렵다. 민생 경제를 우선하고 역사의 대세를 받아들인 쿠바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을 배워야 북한도 살 길이 보일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3.04 00:30

  • [세컷칼럼] ‘극강 멘털’ 이재명의 아킬레스건

      관련기사 [강찬호의 시선] ‘극강 멘털’ 이재명의 아킬레스건 글=강찬호 논설위원 그림=심혜주 인턴기자 

    2024.03.02 23:00

  • [강찬호의 시선] ‘극강 멘털’ 이재명의 아킬레스건

    강찬호 논설위원 “이재명, 눈 하나 깜짝 안 하대. ‘너는 떠들어. 난 내 길 간다’는 표정이더라. 그 사람 스타일은 듣기 싫은 소리 나오면 눈 감고 의자 깊숙이 파묻혀 있다 나가버리는 거다.”   27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홍영표 의원이 “당 대표가 남의 가죽만 벗기면서 손에 피칠갑을 하고 있다”며 이재명 대표를 맹공했다. 연단 앞에 앉아 있던 이 대표의 반응을 본 한 의원이 ‘극강 멘털’이라며 전해준 얘기다.     ■  「 ‘피칠갑’에 끄덕 않는 강심장이나 ‘임종성 쇼크’로 금배지 갈증 커져 ‘찐명’도 치며 폭주 불사하는 이유 」    1년반 전 당권을 쥔 이래 ‘시스템 공천’을 세심하게 준비해 온 이 대표이니, 이 정도 반발은 예상한 수준일 터라 표정에 변화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하의 이재명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게 있다. 지난 8일 선거법 위반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잃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의 거취다. 그는 26일 1억원 상당의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의원직 상실 18일 만에 투옥 위기에 몰린 거다. 의원직을 유지했다면 검찰이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체포동의안이 필요한 야당 의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 거다. 게다가 임 전 의원은 친명 그룹 ‘7인회’ 출신이다. 방탄용 금배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 대표는 절감했을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의 대북 송금 혐의 재판도 골칫거리다. 16개월째 1심이 진행 중인 이 재판은 이화영 측이 변호사 연속 사임과 증인·재판부 기피 신청 등 온갖 수를 동원해 고의로 지연시켜 왔다는 논란에 휘말려 있다. 그러나 재판을 15개월간 맡아 온 신진우 판사가 최근 인사에서 유임되며 27일 공판이 속개돼, 재판 속도가 빨라질 개연성이 커졌다. 쌍방울그룹에서 3억원대 뇌물·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등이 무거워 유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그럴 경우 불똥은 이 대표로 튈 공산이 크다. 부지사가 도지사 지시 없이 ‘대북 경협과 도지사 방북’ 같은 빅이슈를 내세워 거액을 수뢰하긴 어렵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뒷골이 당길 수밖에 없다. 4·10 총선에서 금배지를 다는 게 그에게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배지만으로는 불안하니, 대표직도 유지해 방탄조끼를 두 개 차야 안심 된다는 판단 아래 올여름 전당대회에서 재차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도 당 안팎에 무성하다.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낸 김광삼 변호사는 “이 대표는 시진핑·푸틴처럼 (대표) 영구 집권을 하려는 듯하다”고 했다.   재선과 당권 유지엔 ‘이재명 사당화’가 필수이니, 홍영표 의원 말마따나 비명의 가죽을 벗기는 ‘피칠갑’은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 눈에 띄는 건 같은 편에게도 피칠갑이 자행되고 있다는 거다. 그만큼 급하고, 여유가 없다는 방증이다. 이재명은 이해찬 전 대표가 ‘공천 배려’를 당부한 임종석 전 의원을 컷오프해버렸다. 이해찬은 이재명의 천군만마였다. 이재명이 문재인 정부 초기 친문들의 비토로 출당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서 감싸줬고, 대선후보와 당 대표로 선출되는 데도 큰 힘이 돼줬다. 이번 총선 공천도 4년 전 이해찬 대표 시절 공천 방식과 유사해 ‘투이(Two Lee=이재명·이해찬) 공천’이란 말이 돌 정도였다. 그런 이해찬이 힘줘 요구한 ‘임종석 배려’를 이재명은 가차 없이 내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친명 공천’ 야전사령관인 조정식 사무총장도 불출마를 요구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정식은 친명 이전에 이해찬계 핵심이다. 하지만 공천 파동으로 당 지지율이 급락하자 조정식도 ‘이재명의 속죄양’ 신세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해찬의 마음이 (이재명에게서) 완전히 떠났다”는 말이 당내에 도는 이유다.   ‘찐찐명’ 김병기 의원의 운명도 주목된다. 검증위원장에다 공천관리위원회 간사까지 맡아 친명 공천의 핵심 역할을 해왔지만, 불법 자금 수뢰 의혹에다 불투명한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개입 논란까지 불거졌다. 김 의원은 “사실무근”이라며 고소로 대응했지만, 낙천이 원인이 된 폭로일지언정 민주당 원외 인사 2명의  자필 진술서를 근거로 현역 의원(이수진)이 제기한 의혹은 검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업체 파동 역시 일파만파다. 당 선관위원장을 지낸 정필모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중앙일보 보도를 보고 물어본 끝에 누군가의 지시로 (업체가) 끼워넣어진 걸 알고 위원장을 사퇴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가 김병기 공천을 밀어붙일지, 아니면 컷오프해 희생양으로 삼을지 궁금하다. 확실한 것은 이 대표는 본인의 안위와 ‘이재명 사당’을 위해서라면 찐명·찐찐명도 얼마든지 칠 사람이란 관측이 힘을 얻는 정황이 연일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2.29 00:32

  • [주정완의 시선] ‘홍보의 신’이 말하는 성공 비결

    주정완 논설위원 유튜브 구독자 수는 62만 명을 넘었지만 관련 수익은 한 푼도 없다.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한 지 7년여 만에 6급으로 고속 승진했다. 공무원 연봉의 두 배를 조건으로 이직 제안을 받았지만 전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충북 충주시청에서 유튜브 채널 충TV를 운영하는 김선태 주무관의 사연이다.   현재 유튜브 세계에서 김 주무관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스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유튜브 채널 중에선 동북아시아 1위를 자처한다. 일본 1위는 오사카인데, 충주의 구독자 수가 오사카보다 많다고 한다. 어차피 중국은 강력한 규제로 유튜브를 못하게 막았으니 일본만 이기면 된다는 계산이다.     ■  「 초저예산 ‘B급 정서’ 공공 유튜브 창의적 발상과 즐거움으로 승부 지역 브랜딩 효과에 학계도 주목 」    더욱 놀라운 건 극강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다. 충TV의 운영 예산은 연간 61만원이다. 영상 편집을 위한 소프트웨어 사용료가 전부라고 한다. 다른 예산은 한 푼도 쓰지 않는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촬영·출연·편집까지 혼자 도맡아 하는 덕분이다.   사실 김 주무관이 마음만 먹으면 3억~4억원의 예산 확보는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충주시장이나 시의회가 예산 배정에 인색하게 굴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초저예산 B급 정서라는 채널의 콘셉트를 유지하는 데 예산 증액은 오히려 방해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국내 공공 유튜브 채널 운영에 충TV가 안겨준 충격은 작지 않다. 그전에도 수많은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공공기관이 유튜브에 도전장을 냈지만 대부분 실패를 면치 못했다. 이유는 뻔했다.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할 만한 영상을 올린 게 아니라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영상을 올렸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특유의 경직된 공급자 마인드가 발목을 잡았다.   충TV의 성공 비결은 철저히 소비자 마인드를 수용한 데 있다. 예컨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생활 속 거리두기를 홍보하던 영상이 있었다. 기존에 공공기관이 하던 방식대로 이래라저래라 하며 시청자를 가르치려고 들지 않았다. 대신 아프리카 가나의 장례식에서 관을 든 상여꾼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유쾌하게 패러디했다. 재미있는 정보 전달과 함께 입소문 마케팅을 노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분 15초짜리 이 영상은 960만 회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금도 꾸준히 조회 수가 올라가고 있다.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만이 충TV의 목표는 아니다. 김 주무관은 최근 발간한 책(『홍보의 신』)에서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내가 이 세계에서는 ‘셀럽’이 됐다. 무엇보다 본래 충주시 유튜브의 목표였던 충주시를 알리는 데도 큰 성과를 거뒀다”고 적었다. 인구 20만 명의 중소도시인 충주를 널리 알린 게 가장 중요한 성과라는 얘기다.   충주가 고향인 김 주무관에게 충주와 청주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속상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충TV를 즐겨본 시청자들은 이제 적어도 충주와 청주를 헷갈리진 않을 것이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한국지리 과목에선 충주를 묻는 문제가 나와 화제가 됐다. 일부 수험생은 충TV 덕분에 답을 맞혔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튜브를 활용한 충주의 브랜딩 효과는 학계에서도 관심을 갖는 사안이다. 이미 학술 논문도 여러 편이 나왔다. 신성일 경남대 겸임교수(미디어영상학과)와 이은순 동아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가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에 발표한 논문도 있다. 두 사람은 논문에서 “이용자들은 공급 주체인 김선태에게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충주시 유튜브 채널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오락성과 친밀성의 특성은 채널에 대한 만족도뿐만 아니라 충주시에 대한 지역 이미지와 방문 의도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밀감을 주는 출연자가 등장해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지역 이미지를 좋게 할 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한다는 얘기다.   모든 공공기관 유튜브가 충TV를 따라 할 수도 없고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꼭 배워가면 좋을 것이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 발상이다. 김 주무관은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도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 어떤 것보다도 유튜브는 즐거워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와 즐거움은 충TV 같은 1인 미디어가 시청자와 소통하는 데 핵심 요소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내용보다도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공무원 조직에선 더욱 그렇다. 충TV가 불러온 바람이 널리 퍼져 나가 공직 사회의 경직된 문화를 바꾸는 데 신선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2.23 00:26

  • [안혜리의 시선]'건국전쟁'의 박수엔 이유가 있다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14일 현재 관객 38만명을 넘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상영관마다 매진이 이어지고, 영화가 끝난 후 박수가 터져 나오는 이례적 현상까지 등장했다. 연합뉴스 남다른 집안 분위기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에서 자행돼온 전 국민적 이승만 폄훼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 지금도 집 이곳저곳의 책꽂이에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의 업적을 기술한 관련 서적 10여 권이 손때 묻은 채로 꽂혀 있다. 대한민국 번영을 이끈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1953)이나 독도를 우리 영토로 편입한 평화선(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선언·1952) 발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상공회의소 제주포럼 연설에서 언급한 농지개혁(1950) 등등…. 뛰어난 외교 역량을 토대로 시대를 앞서간 이런 공은 쏙 빼고 과오만 부각한 초·중·고 역사 교과서를 통해 이승만을 편향적으로 배운 다른 사람들보다 그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  「 다큐로 드물게 38만 흥행 가도 4·19 이면의 역설적 상황 다뤄 교과서가 안 다룬 평가에 울림 」  이승만을 재조명한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30만명(14일 현재 38만명)을 넘기며 흥행 가도를 달린다기에 보러 가면서도, 그래서 오히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저 숙제하는 심정으로 일단 영화 예매는 했지만 내심 '뭐 새로운 게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맨해튼 카퍼레이드 모습. 100만 인파가 몰렸다.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은 이 사진을 본 후 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어렵게 45초 분량의 동영상을 발굴해 70년만에 공개했다. [사진 기파랑] 무방비로 영화를 보다 도입부부터 울컥했다. 요즘 말로 '국뽕' 차오르는 영웅적 면모의 1954년 맨해튼 100만 인파 속 카퍼레이드 동영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반대로 그의 가장 치욕스런 과오인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촉발한 4·19 시위 직후 서울대병원 문병 장면에서였다. 주위 만류를 뿌리치고 다친 학생을 위로하러 달려간 그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키며 한없이 죄스럽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를 가까이에서 보필한 김정렬 전 국무총리의 회고록 『항공의 경종』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을 보고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며 "한 사람도 더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며 하야를 결심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증언이 나온다. 영화는 사진으로도 미처 다 담지 못한 그의 진심을 이렇게 수 초 동안 울먹이는 표정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국익이나 국민 의사에 반하는 잘못을 해도 진정한 사과는커녕 남 탓이나 남일 말하듯 하는 요즘 여야 정치인들의 유체이탈식 화법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생 그토록 이 땅에 뿌리내리려고 노력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민주주의에의 각성을 목격하고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게 비록 자신의 정치적 사망과 맞바꾼 것이라도 말이다. 실제로 그는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비난한 적이 한 번도 없다(『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오히려 하야 후 사저인 이화장에 머물 때 대만 장제스 총통의 위로편지에 '나는 위로받을 필요가 없다, 불의에 궐기한 백만 학도가 있으니 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답장까지 썼다. "이승만은 4·19를 유발한 부정적 존재인 동시에 4·19를 촉진한 긍정적 존재"라는 평가(박명림 등『이승만 대통령 재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4월 23일 4·19 시위로 다친 학생을 위문하러 서울대병원을 찾은 모습. 그는 시위대를 비난하기는커녕 부정을 보고 일어섰으니 "장하다"고 했다. [사진 기파랑] 결코 과장이 아니다. 줄곧 꿈꿔온 문명 부강한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힘쓰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그는 교육을 가장 중시했다. 왕을 몰아내려는 역모죄로 1899년 투옥된 후 1904년 29살 나이로 옥중 집필한『독립정신』서문에는 '무식하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스스로 각성하여 올바로 행하며, 아래로부터 변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며, 죽은 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또 원한다'고 썼다. 영화에도 그가 교육에 기울인 노력이 잘 나타나 있다. 건국 후 대통령 취임 이후뿐만이 아니라 일제 치하 1910~20년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하던 시절부터 8개 섬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학생을 모으고,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진 아이를 구해 공부시킨 감동적인 스토리가 나온다. 차별 없이 공부하라고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까지 지었다.  심지어 6·25 전쟁 중에도 학교 문을 닫는 대신 전시연합대학을 세우고, 전후 복구의 원동력이라며 대학생의 병역 유예 조치를 했다. 이런 정책 덕분에 광복 직후 70%가 넘었던 문맹률을 크게 낮췄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교육 기적을 이뤄냈다.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이 이후 박정희 시대 산업화는 물론 4·19라는 민주화의 토대를 이뤘다. 영화 말미에 "이승만이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기관차가 달렸다"는 내레이션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과연 소문대로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는데 한 자리도 비지 않은 영화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두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부끄러움 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2.15 00:32

  • [강찬호의 시선] 법정에 두 번이나 울린 문재인 전 사위 이름

    강찬호 논설위원 “타이이스타젯 직원 서모가 2019년 6월경 사장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이스타항공이 타이이스타젯에게서 지급받은 수수료를 반환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취지입니다.”   “같은 해 6월7일경 타이이스타젯 서모로부터 형식적 수수료 지급 계약 체결을 검토 중이란 이메일을 받은 것이 확인됩니다.”   지난달 24일 전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 (부장판사 노종찬) 법정.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 모(44)씨의 이름이 두 번이나 울려퍼졌다. 이스타항공의 자금을 빼돌려 태국에 저가 항공사인 타이이스타젯을 설립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안긴 혐의(배임)로 기소된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징역 2년이 선고된 자리였다.     ■  「 문 전 사위 특채의혹 수사 급물살 판사도 사위 이름 두 번 거론 눈길 문 전 대통령의 투명한 해명 필요 」    문 전 대통령 딸 다혜씨의 남편이던 서씨는 증권·게임 업계 출신으로 항공 업계 경력이 전무했다. 그런 사람이 2018년 돌연 가족과 태국으로 이주한 뒤 타이이스타젯 전무로 취업해 2년 가까이 일했다. 박석호 타이이스타젯 대표는 “이 전 의원 지시로 매달 월급 800만원과 렌트비 약 350만원씩을 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동안 서씨의 존재는 베일에 가려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곽상도 의원이 서씨 일가의 수상한 태국행을 폭로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이라며 입을 봉했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서씨는 ‘제임스’란 이름으로 전무이사급으로 근무했지만 항공에 대해 잘 몰랐고 영어도 서툴렀다는 증언(구마다 아키라 타이이스타젯 훈련국장)이 확보됐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 외엔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판결에서 서씨가 타이이스타젯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판사의 입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서씨는 이 전 의원이 배임죄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타이이스타젯으로부터 일단 지급 보증 수수료를 받았다가, 몰래 수수료를 돌려주기로 한 사실을 타이이스타젯에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타이이스타젯은 이스타항공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이상직의 극비 조직’이었는데, 서씨는 그 조직의 고위직으로 벼락 출세하고, 불법성 농후한 ‘수수료 쇼’ 연락책까지 맡은 것이다. 서씨가 무슨 배경으로 이 전 의원과 이렇게 깊숙한 연을 맺고 비밀스런 활동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검찰의 칼끝은 문 전 대통령을 향하고있다. 항공 문외한 서씨가 타이이스타젯 고위직에 채용된 대가로 이 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됐을 가능성을 수사 중인데, 임명에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이는 문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문재인 청와대가 이 전 의원의 중진공 이사장 임명에 부당 개입했는지를 저인망식으로 훑고 있다. 홍종학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조현옥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 등이 줄줄이 소환됐다. 서씨도 지난달 16일 자택 압수 수색을 당한 데 이어 29일 전주지검에 소환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서씨는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검찰은 설 이후 그를 재소환할 방침이다.   이 전 의원과 민주당 일각은 “총선을 앞둔 기획 수사이자 공소권 남용”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2021년 5월 고발된 이 사건은 검찰이 꾸준히 수사를 이어온 끝에 3년여 만에 윤곽이 드러났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수사 개시부터 문재인 정부 검찰이 했다. 필수 절차인 태국 당국의 자료 협조가 10개월 넘게 걸리며 수사 기간이 길어진 것뿐이다. 법원도 이런 이유로 공소권 남용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전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원은 이스타항공 돈 수백억원 횡령·배임과 채용 비리 등 혐의로 징역 9년 반(합계)을 선고받았다. 직원 600명을 해고하며 임금·퇴직금 500억원을 주지 않은 채 빼돌린 돈으로 호화 생활을 했다. 쫓겨난 직원들은 택배나 대리 기사직을 전전해야 했다. 특히 이 전 의원의 죄상을 폭로한 노조원들은 그의 유죄가 확정돼 회사를 떠난 지금도 복직하지 못한 채 고된 삶을 살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답할 차례다. 그는 2019년 곽상도 의원의 폭로로 논란이 불거진 이래 ‘이스타’의 ‘이’자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딸 다혜씨가 지난달 24일 “또다시 표적이 될 아버지”라는 글을 올렸을 뿐이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에 대해 거두절미하고 ‘또다시 표적이 된 영부인’이라고 한다면 펄쩍 뛸 사람들이 문 전 대통령 주변과 민주당 아니겠는가. 명품백 논란이 해명돼야 하는 것처럼, 문 전 대통령 사위 특혜 채용 의혹도 해명돼야 마땅하다. 더욱이 이 사건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노동자 수백명과 기업경제에 큰 해악을 끼친 대형 범죄와 연루돼 있지 않은가. 강찬호 논설위원

    2024.02.08 00:53

  • [주정완의 시선] 발상의 전환 시급한 노인 무임승차

    주정완 논설위원 40년 전에는 국민 100명 중 네 명이 무료 탑승권을 받았다. 이제는 국민 100명 중 20명으로 늘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는 의미에서 ‘지공거사’로 불리는 이들이다. 현재 서울·부산 등 주요 대도시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 탑승 혜택을 준다. 노인 복지란 한쪽만 보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지공거사의 숫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은 고령 인구 구성비(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가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  「 인구 구조 변화로 비용도 급증 “무제한 무임승차 폐지” 공약도 대안 찾는 토론 더 활성화돼야 」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누군가 공짜 혜택을 본다면 그 뒤에선 누군가 값을 치러야 한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둔다면 그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게 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비싼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혜택은 노인 세대가 누리겠지만 결국 현역에서 일하는 세대가 이 돈을 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는데도 애써 모른 척했다. ‘내 임기 중에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님투’(Not in My Term of Office) 의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을 중앙정부가 메워달라고 요구한 경우가 있긴 했다. 지자체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겠지만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느낌이 든다. 사실 국민 전체로 보면 비용 부담의 주체가 중앙정부냐, 지자체냐는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정작 시급한 일은 따로 있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불가피하게 축소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축소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다. 노인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최대한 이런 논의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다행히 정치권 전체가 이 문제를 외면한 건 아니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정강정책위원장 자격으로 발표한 정책 공약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다. 이 대표는 “표가 떨어지는 얘기라도 올바른 얘기를 하겠다. (노년층) 도시철도 무료 이용 폐지는 굉장히 논쟁적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찬반 여부를 떠나서 정치권이 뭐라도 정책 대안을 내놓은 건 일단 긍정적이다. 노인 무임승차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의 기초로 삼을 수 있어서다. 어려운 숙제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대표의 정책 공약을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의 무제한 노인 무임승차는 폐지한다. 대신 노인 1인당 연간 12만원의 선불 교통카드를 준다. 서울 지하철 요금(교통카드 기준 1400원)을 고려하면 월간 7회 정도 무료로 탈 수 있다. 선불카드의 잔액이 다 떨어지면 노인도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 이때는 청소년과 같은 40%의 할인을 적용한다.   여기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월간 7회 정도 무료 탑승으로도 정책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지, 선불카드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다만 “결혼 안 하고 애 안 키워봐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식의 공격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회적으로는 노인이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중교통으로 외출하고 외부 활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노인 건강 증진과 우울증 감소 ▶노인 운전 감소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 축소 ▶노인 경제활동 확대 등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노인 무임승차의 긍정적 효과다.   영국 런던의 방식도 대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평일 오전 9시 이전의 출근시간대는 유료, 그 외 시간대는 무료로 하는 식이다. 직장인이 몰리는 출근 시간대에 대중교통(지하철·버스)을 이용하려면 노인도 돈을 내라는 얘기다. 시간대별로 요금을 차별화하는 건 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 패턴이 달라지면서 출근 시간대 혼잡도는 낮아질 것이다. 혼잡 시간대가 아니면 무료 승객이 다소 늘어도 지하철 공사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퇴근 시간대에도 출근 시간대와 마찬가지로 노인 무임승차를 제한하는 식이다.   정치권에선 이런저런 혜택을 늘리자는 얘기는 많아도 어떤 식이든 혜택을 줄이자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노인 무임승차의 정책 대안을 찾는 토론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2.02 00:28

  • ‘약속 대련’이든 아니든 흥행 성공, 민주당은? [김성탁의 시선]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제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2시간 30분가량 만났다.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한 지 6일 만이었는데, 이 자리에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이 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고 알려졌던 터라 이날의 화기애애한 오찬 간담회 장면은 ‘당정 갈등’이 해소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을 낳았다.    여권의 당정 갈등은 총선을 앞두고 단연 이목을 끈 사건이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에게 ‘20년 측근’인 한 위원장이 일종의 반기를 들었다는데, 화제가 안 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한 위원장의 대응에 섭섭함을 표했다는 단독 보도가 나오고, 한 위원장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입장문을 내는 등 드라마틱한 서사까지 갖췄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찬회동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관섭 비서실장,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제공=대통령실]  일련의 전개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실시간으로 반응했던 ‘약속 대련’에서부터 ‘궁정 쿠데타’(신평 변호사)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마찰이 일종의 기획이었든 실제였든, 여권발 이슈가 흥행에 성공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 한동훈 '尹 아바타' 탈피 효과 명품백 의혹 극복 플랜 준비중 오히려 민주당이 숙제 떠안아 」   여권 사정을 잘 아는 인사에게 전말을 물었더니 전후 설명 대신 여권이 거둔 효과부터 거론했다. 한 위원장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윤석열 아바타’라는 시각이었는데, 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선 그 고리부터 끊는 게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갈등 양상으로 아바타 딱지를 떼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 인사는 "이 비서실장은 내공이 간단치 않다. 경거망동했을 리가 있느냐"라고 말해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에 모종의 공감대가 있었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한 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응이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것이었던 만큼 실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 위원장이 ‘국민의 눈높이’를 언급했고, 김경률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까지 꺼냈으니 용산에서 불쾌해했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변수 속에서도 명품백 수수 의혹을 그대로 두고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는 어렵다는 인식은 대통령실과 여당 핵심이 공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초 민주당이 띄운 김 여사 관련 논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출발이었다. 그런데 당정 갈등이 시선을 독차지하는 사이 명품백 사과 논란으로 치환된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이 조만간 관련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시점에 맞춰 여권 인사들은 ‘덫에 걸린 쪽에만 사과하라고 하느냐’며 일제히 여론전에 나섰다. 여권 일각에선 '기획 녹화'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제2부속실 설치 등 보완책과 함께 영부인 경호에 구멍이 뚫린 점을 고려해 경호 라인에 책임을 묻는 조치도 수습책의 하나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번 충돌을 ‘권력 2인자’의 차별화로 보며 일종의 레임덕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여권 인사는 “총선에서 져서 진짜 레임덕이 오는 게 더 심각하다는 점을 여권 수뇌부가 모를 리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건을 거치며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경제·한국갤럽의 25~26일 여론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앞서긴 하지만 한 달 전 조사에 비해 정부·여당 심판론이 5%포인트 낮아졌다.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뽑겠다는 비율은 6%포인트 올랐다. 특히 스윙 보터 지역인 대전·세종·충청에서 국민의힘 후보 선호도가 12%포인트 증가했다.    당정 갈등 이슈는 오히려 민주당에 숙제를 던진 모양새다. 이전과 달리 여당이 용산을 제대로 견제한다는 이미지를 확보할 경우 선거에서 야당을 뽑아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GTX 노선을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 수단도 동원 중이다. GTX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시절 시작된 것을 보면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는데도 이미 평택·김포 등이 들썩이고 있다.     민주당 출신 인사가 나서 “지역구 의석이 호남 28석, 영남 65석인 데다 강원·충청 등에서 민주당이 밀린다. 이대로면 총선에서 민주당이 질 가능성이 크다”(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는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여권 내홍을 평가하느라 바쁘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여권의 실책만 기대하고 유권자에게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한다면 경고가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024.01.31 00:16

  • [안혜리의 시선]친윤, 개딸 행태를 답습해서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로써 두 사람의 갈등은 표면상 봉합됐다. 연합뉴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충돌은 한 위원장의 90도 폴더 인사로 일단 '봉합'됐다. 아무 죄 없이 영조의 노여움 앞에서 석고대죄할 수밖에 없었던 사도세자처럼 한 위원장은 살을 에는 한파에 패딩도 입지 않고 우산 없이 눈을 맞으며 1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충남 사천시장을 찾은 윤 대통령을 맞았다. 만남 뒤 취재진에게는 "대통령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에 변함이 전혀 없다"며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한 위원장이 한껏 굽히고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윤 대통령 체면은 살려주면서 다가오는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소모적인 내분 확산을 막았기에, 여권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  「 윤-한 갈등 촉발한 김건희 명품백 대통령 무리수에 친윤은 궤변 상식 외면하면 민심 멀어진다 」    두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다만 국민 눈높이로 보자면 안도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순히 누군가의 사과나 누군가의 사퇴와 같은 특정 사안에 대한 '봉합'이냐 '해결'이냐의 차원을 넘어 윤석열 정부의 근본적 한계를 만천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계란 바로 김건희 여사다. 그동안 적잖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추측만 했다면, 이번 대통령실의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소동을 계기로 다들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20년을 동고동락한 최측근에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선 모진 탄압까지 함께 맞서 싸운 동지적 관계조차 한순간에 위험에 빠뜨릴 만큼 김 여사는 이 정권의 불가침 성역 같은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은 물론 비대위원장 취임 후에도 줄곧 김 여사를 두둔하는듯한 모습이었다. 대통령과의 수직관계를 벗어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수준의 변화를 기대하는 적잖은 국민은 그래서 오히려 실망했다. 김 여사와 관련해 당내 인사로선 처음으로 김경율 비대위원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인 지난 18일과 19일 한 위원장이 한 발언도 국민 눈높이에선 과하기는커녕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대통령더러 야당의 김건희 특검법을 받으라거나 김 여사더러 명품백 수수와 관련해 당장 사과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라거나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이를 문제 삼아 다른 꼬투리를 대서 취임 28일밖에 안 된 집권당 대표를 '또' 갈아치우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이 문제를 제기한 비대위원 사퇴를 양측 화해의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누가 봐도 명분이 없을뿐더러 비상식적이다.  김경율 비대위원(가운데)이 지난 22일 국민의힘 비대위에 참석했다. 김 위원은 앞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당내 인사로는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뉴스1 그런데 이른바 친윤이라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이들은 이번 갈등을 촉발한 김 여사의 명품백 논란과 관련해 "피해자에게 사과하라는 격"이라며 김 여사 엄호에 나섰다. 윤심의 핵심이라는 이철규 의원은 "국민이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우려한다"는 식으로 국민을 가르치려드는 태도까지 보였다. 이 의원을 비롯해 장예찬 전 최고위원, 이용 의원 등 윤 대통령 부부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딱 하나다. 전후 맥락 다 잘라내고 몰카 함정이었으니 그저 김 여사는 무고한 피해자라는 거다.    대통령 부인이 특정 세력의 저열한 몰카 공작에 속았다는 걸 누가 모르나. 그걸 몰라서 민심이 요동치는 게 아니다. 민심이 김 여사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건 애초에 대통령 부인 자리에 걸맞은 공적 마인드 하나 없이 그런 인사와 거리낌 없이 만남을 이어가고, 아무리 사석이라지만 국정에 개입하는듯한 부적절한 언행을 쏟아내고, 결정적으로 값비싼 여러 선물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하다 하다 이젠 공작을 진행한 친북 목사한테 받은 300만 원짜리 디오르 백을 김 여사가 돌려주면 국고 횡령이라는 궤변까지 이철규 의원 입에서 나왔다. 김 여사는 이 선물을 사적으로 받은 게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와 규정에 따라 받아 처리했다는 주장을 하려고 이런 무리수까지 두는 모양인데, 기가 막히다. 법상으로는 대통령이나 공직자가 직무수행과 관련해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는 선물인 경우 즉각 신고하고 선물을 인도하도록 돼 있는데 디오르 백이나 샤넬 화장품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호위무사들의 일련의 발언은 조국 사태 때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 작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측의 증거 인멸 시도를 "증거 보존"이라는 궤변으로 옹호하던 걸 떠올리게 한다. 또 적잖은 친윤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맹비난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대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하나 지키겠다고 당내의 합리적인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개딸' 행태와 정확히 겹쳐 보인다. 개딸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출발한 비대위에 개딸의 그림자라니. 이래저래 국민의 근심만 깊어진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1.25 00:26

  • 김정은 민족·통일 부정에 주사파 '멘붕 침묵'[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논설위원 남북관계가 험악해질 때마다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 등 엽기적 언사로 협박했고,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무력 도발해 한반도 평화를 위협했다. 그런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말 연초 '폭탄 발언'은 과거와는 차원이 전혀 달라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 열병식에서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무릎을 꿇은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11)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고착됐다"고 단언했다.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우리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화해·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기존 북한 헌법에 있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하고, 향후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명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민족경제협력국·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 기구를 없앴다.   ■  「 김일성·김정일 유훈에도 어긋나 조총련 문의에 통전부 회신 없어 김씨 정권의 기만성 널리 알려야 」   북한의 이런 조치들은 1972년 7·4 남북공동 선언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3대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대북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평화·통일·화해 원칙을 전면 부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북한에 봉건적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한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부터)[중앙포토]  '민족과 통일 부정' 발언을 접한 북한 주민들과 친북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울 것이다. 김일성 주석 이래 지속돼온 북한 정권의 선전·선동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급변침'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본 조총련 사정에 밝은 고위 대북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의 지침에 따라 통일 운동을 해온 조총련 측이 당황한 나머지 '이제 통일을 안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다급히 통일전선부에 문의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종북 주사파들이 침묵하는 것은 더더욱 놀랍고 의아하다. 그동안 진정으로 통일을 외쳐왔다면 김정은 정권의 반통일 노선 천명에 대해 비난하는 대규모 규탄 집회라도 열어야 할 텐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남 전략 돌변으로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고 '멘붕'에 빠진 것일까.  서울대 법대 재적생 시절이던 1986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지금은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김영환(61)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종북 주사파들이) 지금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1991년 5월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직접 만났던 '주사파 대부'였다. 2018년 9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 합의문 서명식을 지켜보고 있다. '평화 타령'이 끝나자 북한은 '전쟁 불사'를 떠들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6·25전쟁을 일으켰으나 적화 통일에 실패한 김일성이 살아 있다면 손자의 민족과 통일 부정 발언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일성은 아마 엄청 분노했을 거다. 김정일은 조금 다를 것이다. 김정일은 북한 주도의 통일이 과대망상이라 여겼지만, 6·25 참전 노(老)간부들이 살아 있을 때라 김정은처럼 공개적으로 통일을 부정하는 입장을 밝히지는 못했다."  -김정은은 왜 이 시점에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을까.  "북한은 1980년대 이전까지는 공세적 차원에서 통일을 주장했지만, 그 이후에는 남한을 반통일세력으로 몰아가는 방어적 차원에서 통일을 이용했다. 지금은 남한을 반통일 세력이라고 비난해도 북한 주민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남파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리던 평양방송이 중단된 때문인지 종북 주사파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여전히 나름 생존력이 있는 이석기(전 통진당 국회의원)의 경기동부연합 계열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도 궁금하다. 아마도 북한을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 괴상한 논리를 만들어 이번 난관을 적당히 돌파하려 할 것이다. 북한의 통일 선전·선동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감성적 종북 세력은 앞으로 구심력을 잃고 떨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월 4일 당시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찬성 258표, 기권 11표, 반대14표, 무효 6표로 통과되자 이 의원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내란선동 등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2015년 유죄 판결(징역 9년, 자격정지 7년)로 복역해오던 그는 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24일 문재인 정부의 가속방 조치로 풀려났다. 이후 공개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중앙포토]  새해 들어 남북 관계가 패러다임 전환이라 할 정도로 아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의 도발 기류는 심상치 않다. 국방부와 합참은 물론이고 국정원과 통일부는 이럴 때일수록 북한의 숨은 의도와 내부 동향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역사 발전 흐름에 역행하는 봉건 세습 독재 정권의 시대착오적 거짓 선전·선동과 반민족·반통일 행태의 본질을 북한 주민과 국내외에 널리 알려야 한다. 북한의 돌변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1.22 00:21

  • [강찬호의 시선] ‘망천’소리 들어 마땅한 민주당 공천 난맥상

    강찬호 논설위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요즘 ‘개딸’(강성 이재명 지지층)들 문자 폭탄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16일 아침 방송 인터뷰에서 “같이 자냐” 등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의 현실을 정면 비판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심각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방치하는 양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면 즉각 조치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상민·조응천·김종민·이원욱 등 쓴소리를 내온 의원들의 탈당으로 ‘친명 천지’가 된 민주당에서 거의 유일하게 터져 나온 ‘다른 목소리’였다.     ■  「 비위 의혹 친명 검증위 통과 논란 쓴소리 박용진은 개딸 공세에 곤욕 이대로면 ‘야당 심판론’ 터질 수도 」    이게 먹혔는지 현 부원장은 그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날까지 “피해자와 합의 중”이라면서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피해자 이름을 적은 합의문 초안 공개로 2차 가해 논란까지 불거지며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박 의원이 “한동훈이었다면”이라며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직격하자 뜻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당이 현 부위원장 감찰을 개시한 게 지난주 초인데 엿새가 지나도록 결론이 안 나오는 거다. 복잡한 사안이 아닌데도 긁어 부스럼 만든 것 아니냐. (친명 좌장) 정성호 의원도 컷오프 대상이라 했지 않나. 그래서 한마디 했는데 결과가 있었다. 당에 상식이 살아있다고 본다.”   박 의원 얘기다. 맞다. 그런데 왜 현역 의원이 목소리를 낸 뒤에야 상식이 실현되는지 의문이다. 그제 활동을 끝낸 민주당 선출직공직자 검증위원회의 검증 결과도 상식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뇌물 혐의로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 울산시장 선거개입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황운하 의원, ‘미투’ 파문이 불거졌던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등이 죄다 적격 판정을 받았다.   검증위는 시장 재직 시절 기혼녀와의 불륜 의혹이 논란이 돼온  곽상욱 전 오산시장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리지 않고 공천관리위원회로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청와대를 포함해 청와대에 장기 재직한 전직 간부 A씨는 “배우자 B씨와 곽 전 시장의 불륜으로 가정이 파탄 났다”는 탄원서와 B씨의 부정행위를 인정한 법원 판결문을 이 대표에게 보냈다고 한다. 곽 전 시장은 2019년 국민의힘이 B씨의 진술을 확보하자 보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수원지법은 “(진술) 녹음 파일엔 수년간 곽 시장과 여성 간 있던 일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돼있다. 현직 시장의 불륜 의혹은 공적 관심 사안”이라며 기각했다. 이에 대해 곽 전 시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불륜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불륜은 없었다”는 요지로 B씨가 당에 보낸 탄원서도 공개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논란에 판단을 유보하고 공관위에 공을 넘긴 검증위의 행태부터 검증 대상감이다. 곽 전 시장은 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경기도 시장 군수협의회 회장을 맡아 도정을 뒷받침하는 등 친명계로 분류된다. “친명이라 검증위가 눈치 본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 외에도 공천 잡음이 난 인사들은 상당수가 친명계다. 검증위는 뇌물 혐의로 유죄 판결받은 뒤 사면 복권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부적격으로 판정했는데, 그의 지역구(동작갑) 현역은 검증위원장인 친명 김병기 의원이다. 역시 동작갑 출마를 준비해온 이창우 전 동작구청장도 검증위의 부적격 판정을 당했다. 김 부총장의 유력 경쟁자 2명이 연달아 부적격 판정을 당했으니 ‘선수가 선수를 쳐낸 것’ ‘셀프 단수 공천’이란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런 조치들에 대해 “당헌·당규에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명하지만, 유권자가 납득할 수 있겠나. 선출직 공직자는 남다른 도덕성이 요구된다. 뇌물·성비위는 혐의·의혹만으로도 자격에 흠결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유무죄를 따질 여지가 있다지만 상식적 잣대로 문제가 있다면 조치하는 게 공당의 도리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을 맡았던 안규백 의원은 불륜 논란이 불거진 친문 후보가 찾아와 읍소했지만 “사실 여부 이전에 논란만으로도 일벌백계 감”이라며 컷오프했다. 이런 결기가 기본 아닌가.   여당이 아무리 인기가 없더라도 ‘망천’이란 소리까지 듣는 ‘친명 공천’ 잡음을 민주당이 잠재우지 못하면 여당 아닌 ‘야당 심판론’이 얼마든지 대두할 수 있다. 이제 민주당의 공천을 매듭지을 역할은 공천관리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런데 공관위 부위원장부터 친명 핵심 조정식 사무총장이니 걱정이 앞선다. “계파 배려 없다”는 임혁백 공관위원장의 다짐이 실현되려면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공관위의 결정 과정을 감시해야 할 듯하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1.18 00:26

  • [주정완의 시선] 어설픈 탁상행정이 부른 교통대란

    주정완 논설위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퇴근길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지난 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오세훈TV’에 올린 2분 40초짜리 영상에서다. 이날 저녁 서울 명동 입구 광역버스 정류장을 찾은 오 시장은 우산도 없이 눈을 맞아가며 사과 영상을 찍었다. 그는 “평소에 10분이면 (버스가) 빠지던 게 1시간씩 걸리고, 5분 기다렸다 (버스를) 타시던 분들이 30분씩 기다리는 일이 생겼다”며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장을 무시한 서울시의 탁상행정이 부른 퇴근길 교통대란이었다. 원래 명동 버스 정류장은 퇴근 시간마다 근처 직장인이 한꺼번에 몰리기로 유명한 곳이다. 경기도 신도시 등에 살면서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 도심권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이 이용하는 정류장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혼잡한 이곳에 서울시가 버스 번호별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하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  「 ‘생활인구’ 무시한 서울시 결정에 퇴근길 시민들 극심한 불편 호소 행정 편의주의 발상부터 버려야 」    그 전에는 버스가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승객을 태우고 바로 떠났기 때문에 교통 체증이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표지판 설치 이후 수많은 버스가 정류장 앞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 ‘열차 현상’이 발생했다. 서울시가 안전을 명목으로 설치한 버스 표지판이 퇴근길 직장인에겐 극심한 불편으로 돌아왔다. 오 시장은 “좀 더 신중하게 일을 해야 했다”며 “추운 겨울에 새로운 시도를 해 많은 분께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불편을 드렸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죄송하다”는 말로만 그쳐선 안 된다. 오 시장을 포함한 서울시 교통정책 담당자들은 이번 일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일단 서울시는 이달 말까지 표지판 운영을 멈추고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어떤 보완책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행정 편의주의가 아닌 시민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이번 일에선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관료주의적 일방통행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 대다수가 못살던 시절에는 엘리트 공무원의 일방주의식 행정이나 정책 결정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었다. 과거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에는 관 주도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일정 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확실히 달라졌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어서는 시대가 열렸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의 의견을 열심히 듣고 행정과 정책에 반영하는 건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 서울시는 뒤늦게 시민의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이 터지고 난 다음이 아니라 그 전에 시민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간혹 공식 발표 전에 정책 결정이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게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예외가 있긴 하다. 예컨대 부동산 개발사업처럼 시장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이번처럼 버스 정류장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일까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문제는 ‘생활인구’에 대한 배려다. 경기도나 인천에 집을 두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서울시민은 아니다. 서울시장이나 구청장에 대한 투표권도 없다. 어쩌면 서울시가 교통대란을 초래할 정도로 안이하게 대처했던 데는 이런 인식이 바탕에 깔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을 서울시가 무시해도 된다는 건 전혀 아니다.   법률(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선 이런 사람을 생활인구라고 규정한다. 특정 지역의 주민등록 인구를 넘어서는 폭넓은 개념이다. 월 1회 이상 업무·통학·통근 등으로 해당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인구와 외국인을 포함한다. 특히 서울에 직장을 둔 사람들은 다양한 생산과 소비 활동을 통해 서울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도 서울시의 행정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서울시는 인구 감소 지역에 속하는 건 아니지만 정책적으로 생활인구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이미 6년 전부터 KT와 함께 생활인구 통계를 조사·분석하고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지난 6일 기준 생활인구는 1071만 명에 이른다. 서울시에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이 서울시 생활인구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오세훈 시장은 신년사에서 “사람과 자본·일자리가 몰리고 풍부한 상상력과 활력이 넘치는 매력 도시”를 시정 목표로 제시했다. 다 좋은 말이다. 이렇게 서울이란 도시의 매력을 높이려면 생활인구에 대한 배려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에 머물러 사는 사람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을 찾는 사람도 함께 행복한 도시가 진정한 의미에서 매력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1.12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