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11년 만에 이적성 벗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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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62)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11년 만에 사실상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김수민 2차장검사는 28일 "최근 공안자문위원회의를 열어 시민단체와 대학교수 등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결과 무혐의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송광수 검찰총장 퇴임(4월 2일) 이전에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백산맥 사건은 1994년 4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모씨와 '구국민족연맹' 등 8개 단체가 조씨와 출판사 대표를 보안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책의 일부 내용이 이승만 정권을 친미 괴뢰정부로 묘사하고 빨치산의 활동을 미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어 이적성이 있다"는 것이 고발 취지였다.

당시 사건은 경찰의 1차 수사를 거쳐 같은 해 9월 검찰에 송치됐다. 조씨에게 적용된 보안법 조항은 한나라당조차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제7조 '찬양.고무죄'다. 조씨가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책을 냈어야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검찰은 태백산맥이 전 10권짜리로 분량이 방대한 데다 65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자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담당 검사가 10여 차례나 바뀌는 진통을 겪었다.

태백산맥은 경찰대학에서 '권장도서'로 선정했을 정도로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민중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수작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 소설은 99년 중앙일보의 '20세기 명저 2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씨는 "지난 24일 검찰로부터 몇 가지 기사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보내 줬다"며 "보안법이 없어지면 자동으로 사라질 사건이지만 검찰이 스스로 마무리짓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대하소설 '아리랑' '한강'의 작가이기도 한 그는 "(태백산맥의) 이적성 시비는 분단상황에서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며 "3인칭 기법으로 분단과 좌우 이념 대립의 현실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2002년 대선 직전에 불거졌던 국가정보원 도청 의혹과 관련한 6건의 고소.고발사건도 무혐의 등 불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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