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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까지 변변한 기부 못해 … ” 1000만원 내논 농부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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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병종씨(오른쪽)가 정구복 영동군수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영동군]

평생 흙에 묻혀 농사를 짓고 살던 노부부가 “고학생을 위해 써달라”며 1000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선뜻 장학금으로 내놨다. 충북 영동군은 영동읍 설계리 서병종(81)·안옥임(71)씨 부부가 향토 인재를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펴는 (재)영동군민장학회에 1000만원을 전달했다고 24일 밝혔다. 영동의 시골마을에서 2500여㎡의 포도와 잡곡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서씨 부부에게는 한 해 생활비와 맞먹는 큰돈이다. 서씨의 아내와 자식들도 의미 있는 일이라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서씨는 장학금을 부부의 이름으로 기탁했다.

 서병종씨는 “팔순을 넘겼지만 사회와 이웃을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어 여윳돈을 긁어모아 장학금을 낸 것”이라며 “살면서 사회에서 받은 게 많은데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읜 서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한 뒤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화전을 일구고 남의 땅을 빌려 담배 농사를 지으면서 악착같이 자립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들녘을 지키며 일해 슬하의 2남2녀를 키웠다. 하지만 늘 마음 한편에서는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러던 차에 영동군에서 장학회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상의해 장학금을 전달하기로 결심했다.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에는 10년 넘게 마을의 이장을 맡아보며 주민 화합에도 기여했다. 서씨는 조상 대대로 이 지역에서 전해지던 ‘설계리농요’(충북도무형문화재 제6호)를 복원해 기능보유자가 됐다. 최근에는 농요의 맥을 잇기 위해 설계리농요보존회를 결성해 조상의 혼이 담긴 소리를 잇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영동군민장학회 이사장인 정구복 영동군수는 “정성껏 모아온 큰돈을 선뜻 장학회에 기부해 준 것에 감사한다”며 “노부부의 뜻이 민들레 씨앗처럼 널리 퍼져 인재 육성에 큰 몫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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