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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아직 배가 고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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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황금 10년’과 ‘잃어버린 10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집권 10년을 두고 중국에서 나오는 엇갈린 평가다. 후진타오가 8000만을 헤아리는 중국 공산당의 1인자 자리인 총서기에 오른 건 2002년 11월 8일 개막된 중국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를 통해서였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그는 10년 만에, 그것도 같은 날짜인 다음 달 8일 열리는 제18기 당 대회를 끝으로 퇴진한다. 후진타오 10년의 정치적 유산은 무언가.

 중국 관방 매체는 지난 6월 초부터 일찌감치 바람잡기에 들어갔다. 인민일보(人民日報)는 ‘황금 10년’ ‘숱한 난제를 이겨내고 영화를 일군 10년’ 등으로 후진타오 10년을 찬양했다.

 7월엔 후안강(胡鞍鋼) 칭화(淸華)대 국정연구센터 주임이 ‘눈부신 10년’으로 묘사했고, 이달 들어 인민일보는 ‘성공의 길, 광명의 길, 희망의 길’ 등의 수식어를 이용해 후진타오 10년을 칭송하고 있다.

 이들 중국판 용비어천가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선율은 후진타오가 중국의 ‘무한 발전’을 위한 물질적 토대를 탄탄하게 쌓아 놓았다는 것이다. 사실 후진타오의 성적표는 같은 기간 세계 어느 국가의 리더와 견주어도 낫지 않을까 싶다.

 2002년 1000달러 수준이었던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5000달러를 넘어섰고, 중국의 경제총량은 같은 기간 세계 6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세계경제의 구세주 역할도 톡톡히 하며 주가를 올렸다.

 중국의 파워를 제대로 보여준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다. 중국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서가 아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 베이징을 찾은 70여 정상이 후진타오 알현(?)을 위해 무려 30분이나 줄을 서 기다려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런 후진타오 10년에 대해 중국 내 일각에선 ‘정체된 10년’ ‘아무것도 하지 않은 10년’ 등과 같은 쓴소리가 나온다. 베이징대학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첸리췬(錢立群)은 “현재 중국은 위기의 꼭짓점에 와 있다”고 말한다.

 후진타오가 거둔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도 인색한 평가가 따른다. 주리자(竹立家) 중국 국가행정학원 교수는 “앞선 세대의 덕을 본 것”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전임자가 심은 나무 그늘 아래서 바람을 쐰 격(前人栽樹 後人乘凉)’이란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젠가. 중국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학습시보(學習時報)의 부편집 덩위원(鄧聿文)은 후진타오 10년의 문제점을 차세대 리더인 시진핑(習近平)이 맞닥뜨릴 10대 난제라는 이름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소비주도형 경제구조가 아쉽다. 두 번째, 중산층 양성이 절실하다. 세 번째, 농민의 거주이전 자유를 제한하는 호구(戶口)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네 번째, 한 자녀 정책과 고령화 등 인구문제가 심각하다.

 다섯 번째, 교육과 과학연구의 질이 낮다. 여섯 번째, 환경오염이 큰 문제다. 일곱 번째, 에너지 공급체계가 불안하다. 여덟 번째, 사회도덕이 붕괴됐다. 아홉 번째, 외교 시야가 좁다. 열 번째, 정치개혁과 민주화가 지지부진하다.

 요약하면 후진타오 10년간 중국 사회는 모순이 심화됐고, 경제는 독점이 판을 쳤으며, 개혁은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 리더인 후진타오가 용기가 없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해 중국의 발전이 멈춰서 버렸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후진타오에게서 리더의 개성을 엿보긴 어렵다. 그의 연설은 언제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말수도 적어 외국 지도자들과도 깊게 사귀지 못했다. 지난여름의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후진타오는 당내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수세적이고 우울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는 후진타오 10년의 성취는 대단한 것이다. 후진타오가 집권한 21세기 첫 10년이 중국의 10년이라는 데 누가 이견을 달 수 있을까. 덩위원에 따르면 1840년 아편전쟁에서의 패배 이래 중국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민족독립, 둘째는 국가강성, 셋째는 현대화다. 민족독립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설로 달성됐고, 국가강성은 후진타오 집권 기간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체로 발돋움하며 어느 정도는 이뤄졌다. 이제 남은 건 현대화다.

 현대화는 시진핑이 맞닥뜨린 10대 난제를 풀어야 얻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후진타오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건 바로 발전에 대한 갈구가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 배가 고픈 것이다.

 후진타오는 전형적인 기술 관료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건국,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장쩌민(江澤民)의 성장 일변도에 이어 그는 성장의 그늘을 살피는 조화사회 건설에 무게를 뒀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맞는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중국에 ‘강산은 시대마다 인물을 낳는다(江山代有人才出)’는 말이 있다. 이젠 시진핑이 무대에 오를 차례다. 그가 부를 곡목은 후진타오가 이루지 못한 ‘중국의 현대화’다.

 한데 우리 무대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는 자신들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알고나 있을까. 엇비슷한 경제민주화 공약과 과거 문제 공방에 갇혀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