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관이 강도 도우면 시민은 누가 지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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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현직 경찰관이 강도 범행 모의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진 경찰이 강력범죄자의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것은 단속 과정에서 뒷돈을 받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경찰 조직의 기강이 과연 어디까지 무너져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제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강도 예비 등 혐의로 류모 경사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류 경사가 지난 4월 김모씨로부터 “대기업 회장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겠다”는 계획을 듣고 범행에 필요한 대포폰(차명 휴대전화)과 대포차량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류 경사는 김씨에게 수배 여부 등 개인정보를 알려준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관이 어떻게 범행 계획을 듣고도 용의자를 체포하기는커녕 범행에 가담할 수 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김씨는 류 경사에게 범행에 사용할 총기까지 거리낌 없이 요구했다고 한다. 자칫하면 유혈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임에도 류 경사는 김씨 계획을 제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수억원을 빚진 경찰관’ 개인의 탈선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올 들어 경찰 조직을 뒤흔든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유흥업소 업주와의 유착 비리가 터져나온 데 이어 지난 4월 수원 여성 납치 살해 때는 사건 축소 등 부실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결국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취임한 김기용 청장은 내부의 부패·비리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다짐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류 경사 사건이 외부 기관인 검찰의 수사로 드러남에 따라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경찰이 강도를 돕는다면 시민의 안전은 누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김 청장은 침묵만 지켜선 안 될 것이다. 비상한 각오로 일선 경찰의 범죄자 유착 가능성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해야 한다.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고 있는 수많은 경찰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썩은 사과’는 확실하게 골라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