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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으로 세상읽기] 병원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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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오랫동안 손저림증을 호소하셨다. 내가 어머니를 '착취'한 그 세월 동안 그녀는 병원 차트에도 다 못쓸 만큼 많은 병을 얻었는데도 이쑤시개 뭉치에 찔린 듯 죄의식만 느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숟가락도 못 드는 어머니를 보곤 그 길로 병원을 예약했던 터였다.

진료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바람이 찼다. 보라색 코트로 중무장을 한 어머니의 몸이 스모선수처럼 부풀어올랐다. 나는 택시를 타자고 했다.

어머니는 아프니까 택시를 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하철을 타자고 우기셨다. 나는 검은 공단 모자를 철책처럼 파마 머리에 두른 채 "아들한테 병든 몸을 맡기면서 택시까지 타는 건 너무 호사스러워서 못하겠어"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다.

지하철은 더웠다. 습식 사우나가 따로 없었다. 볼링공처럼 빽빽한 사람들 속에서 어머니는 손잡이를 잡지 못해 비틀거렸다. 어머니에겐 지하철보다 마을 버스가 더 익숙하긴 했다.

그러자 요즘 지하철 노약자석엔 젊은 사람들이 잘 앉지 않는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차량 뒷머리로 어머니를 이끌었지만, 사람들은 만만하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과연 노약자석은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어머니를 그 자리에 앉게 하자, 그녀의 큰 엉덩이가 두 사람 사이에 옹색하게 끼였다. 안 그래도 겹겹이 입은 코트 때문에 양감이 도드라지는 어머니의 둥근 몸피가 마음에 밟혔다.

어머니의 머리 위에 '노약자석'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노약자나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세요' 라는 글자도 고명처럼 얹혀 있었다. 급한 김에 어머니를 노약자석에 앉게 하긴 했지만 복잡한 감정이 매캐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그녀를 엄마라고 명명한다고 해도 그리고 어머니가 설마 꼬부랑할머니는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노인일 수 있다는 것, 지금도 팔씨름을 하면 내가 못 당하는 어머니라고 해도 지하철 손잡이조차 타이밍에 맞춰 잡지 못하는, 찬바람 속을 급히 걸으면 심장이 터질 듯 아픈 약자인 것이다(물론 어머니가 임산부야 아니지만, 그 배를 복대처럼 두른 살집은 임산부의 부푼 배와 별로 다를 것도 없어보였다).

어머니는 졸고 계셨다. 여전히 엉덩이를 의자에 살짝 걸친 채였다. 나는 새해가 되어 나이와 지병을 하나씩 보탠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저런 자세로 몇분도 안돼 잠이 올까, 혀가 저절로 차졌다. 그러나 그 모습은 삶의 유한함을 너무 잘 이해하면서도 어머니의 유한함만은 납득할 수 없는 내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충걸.'GQ코리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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