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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男, 요즘 술값 아껴 여기에 투자…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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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그래픽=김영희]

회사원 노명철(34)씨는 지난 10일 퇴근 후 한 백화점 남성 전용관에서 평소 눈여겨보던 가을 재킷을 샀다. 노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백화점을 찾는다. 의류뿐 아니라 안경에도 신경을 쓴다. 안경은 4~5개를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사 놓고 옷에 따라 바꿔 착용한다. 화장품은 비비크림과 에센스·마스크팩까지 5~6개 종류를 사 놓고 쓴다. 노씨는 “버는 돈의 30% 정도는 패션에 투자한다”며 “요즘 30대 직장인들 중엔 술값을 아껴 겉모양에 신경 쓰는 나 같은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잠원동 리버사이드호텔의 남성 전용 스파인 ‘더 메디 스파’. 3900㎡(약 1180평) 규모인 이곳에서 60여 명이 마사지를 받거나 휴식하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박민구(43·서울 세곡동)씨는 “남자들만 이용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마사지 가격이 10만원 선인 이곳을 찾는 손님은 하루 평균 400여 명. 주말이면 500여 명까지 늘어 예약 없이는 마사지를 받기 힘들 정도다.

 바야흐로 ‘남성 소비 시대’다. 자신을 위해 패션이나 미용 같은 데 돈을 쓰는 남성이 늘고 있는 것. 백화점들은 남성만을 위한 아이템을 한데 모아 놓은 남성 전용관을 크게 늘리고 있다.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올해 안에 1조원대 돌파가 유력하다. 옷과 구두에 머물던 패션아이템도 액세서리와 시계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백화점 남성 전용관은 남성 소비를 크게 늘리는 도화선이 됐다. 남성 전용관들이 앞장서 ‘스펙테이터’나 ‘티바이 알렉산더 왕’처럼 덜 알려진 해외 브랜드와 새로운 스타일을 들여오면서 남성들로 하여금 패션에 눈을 뜨도록 만든 것. 신세계백화점은 2009년 충무로 본점에 남성 전용 액세서리 편집매장을 처음 만들었고, 지난해 10월에는 남성 옷과 패션·잡화를 대규모로 모아 놓은 남성 전용관을 강남점에 설치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1~9월 백화점 전체 매출이 지난해보다 7.2% 늘어난 데 그친 반면 남성 전문관 매출은 같은 기간 지난해보다 13.5% 증가했다. 롯데백화점도 지난달 소공동 본점에 남성 전문관을 기존보다 330㎡(약 100평) 늘려 4910㎡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로 열었다. ‘버버리맨즈’와 ‘엠포리오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의 남성 단독매장이 새로 생겼다.

 남성이 패션에 지갑을 열고 백화점들이 남성 전용관을 만드는 것은 일본에서 5~6년 전 일어났던 일이다. 일본에서는 2003년 도쿄(東京)의 이세탄백화점에 남성 전용관이 처음 생겼다. 국내에서 신세계가 남성 액세서리 편집매장을 만들기 6년 전이다. 2003년 일본은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8년 한국과 비슷하다. 2003년 일본은 2만7697 달러, 2008년 한국은 2만7707 달러다. 소비가치로 따진 1인당 GDP가 비슷해지자 두 나라에서 꼭 같이 ‘남성 소비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내에서 남성들이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는 극한경쟁 속에 외모가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상황 또한 한몫했다. LG패션 김상균 상무는 “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비즈니스 캐주얼을 순차적으로 도입하면서 패션에 신경 쓰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가 확연히 갈리게 된 것이 남자들이 패션에 돈을 쓰기 시작하는 데 큰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경기침체에도 남성 패션시장에는 신규 브랜드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제일모직은 지난달 캐주얼 ‘갤럭시 GX1983’을 출시했다. LG패션도 비슷한 시기에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 ‘일 꼬르소 데 마에스트로’를 새로 내놨다. 1년여 동안 신규 브랜드 출시가 없던 LG패션이 남성 캐주얼을 신무기로 택한 것이다.

 옷과 구두뿐 아니라 화장품·액세서리·안경·만년필·시계에까지 돈을 쓰는 남자들이 늘면서 관련 업계도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남성 소비시장은 경기침체에서 예외로 여겨지고 있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의 롤렉스시계 매장에서 남성 시계를 구매하려면 일부 모델은 1년 반을 기다려야 한다. 현대백화점은 올 들어 9월까지 남성 잡화 매출이 30% 늘었다. 240년 된 이탈리아 가죽제품 브랜드 피나이더는 올해 매출이 지난해의 배가량 증가했다. 피나이더코리아 정우송 대표는 “이탈리아 본사에서도 한국시장의 급성장세에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남성 화장품 시장의 경우 한국 P&G 남성 화장품 판매량이 전 세계 1위일 정도다. 지난해 말 출시한 SK-Ⅱ 남성 페이셜트리트먼트 에센스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여 출시 4일 만에 초기 물량이 모두 매진됐다. 동방신기를 모델로 앞세운 미샤는 올해 남성 기초화장품 매출이 지난해보다 약 21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올해 5월 남성 전용 향수와 스킨케어 제품을 모아 놓은 ‘코스메틱 바’가 좋은 반응을 얻자 무역센터점을 내년 5월 개편할 때 남성 화장품 전문숍을 66㎡(약 20평)로 늘려 만들기로 했다.

 명품업계도 한국 남성 공략에 나섰다. 루이뷔통은 최근 현대백화점 본점 1층에 남성 전용 매장 ‘맨즈 유니버스’를 열었다. ‘바셰론 콘스탄틴’ ‘오데마피게’ ‘블랑팡’ ‘브레게’ ‘파텍 필립’ 등 소위 명품 시계 5대 브랜드는 최근 몇 년 새 모두 한국에 매장을 냈다.

 호텔 피부관리숍과 스파도 남성 전용룸이나 남성 전용관을 늘리고 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의 피부관리 전문숍 ‘인스파’는 전체 고객 중 남성 비중이 50%를 넘었다.

최지영·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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