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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요리책' 낸 불영사 주지 "먹는 것도 수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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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북 울진의 비구니 사찰 불영사가 13일 사찰음식축제를 연다. 주지 일운 스님은 “불영사 공양은 제철 음식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해 몸은 물론 마음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스님들의 먹거리,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 전문식당이 늘어나고 책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왕이면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 식단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웰빙에 대한 갈망이다.

 출세간의 입장에서는 세간의 그런 노력이 안쓰러울지 모르겠다. 산중에서는 수십, 수백 년 전부터 여일(如一)하게 하늘과 땅이 낳고 물·바람이 먹여 기른 천연재료로 소박한 식단을 꾸며 왔을 뿐이다.

 경북 울진의 산세 험한 골짜기에 자리잡은 비구니 사찰 불영사(佛影寺). 이 절의 주지 일운(一耘·60) 스님이 차려 내는 공양은 사찰음식 가운데서도 독특하기로 이름 높다. 그 흔한 공양주 보살(절에서 밥하는 여신도) 하나 없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다 보니 저절로 생긴 솜씨라고 했다. 양념이 화려하지 않고 맛이 담백하다는 것이다.

 스님이 최근 사찰음식 요리책을 냈다. 김치를 소재로 한 84가지 요리를 소개한 『김치나무에 핀 행복』(담앤북스)이다. 이를 구실 삼아 지난 2일 스님을 찾아 나섰다. 어느 코스를 잡더라도 너덧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길이었다. 사찰음식뿐 아니라 수행과 포교에서도 명성이 자자해 ‘차세대 비구니 지도자’로까지 거론되는 스님의 살림살이가 궁금했다.

 오후 늦게 일주문에 들어서자 스님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서울서 내려오느라 고생했다”며 공양간으로 먼저 안내했다. 향에 관한 한 전국 최고라는 울진 송이버섯, 각종 산나물을 조리한 공양이 나왔다. 소문대로였다. 자극적이지 않아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연신 음식을 챙겨주는 스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저녁을 마친 후 스님의 거처인 응향각(凝香閣·향기를 바라보는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맑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법담(法談)을 나눴다.

 “여기는 바람이나 구름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에요. 사람도, 가겠다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른 사람 막지 않죠. 한데 우리만 잘 먹고 수행하며 잘 살면 안되잖아요. 음식은 사람의 세포 하나하나를 만들 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사찰의 좋은 음식을 좀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생각에 따라 스님은 2009년 사찰음식 축제를 시작했다. 하루 날을 잡아 관심 있는 일반 대중에게 온갖 사찰음식을 제공하는 행사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 일부 돌려보냈는데도 지난해 3000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13일에 열린다.

 스님은 “밥 먹을 때만이라도 지금 눈 앞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목이 터져라 얘기하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들은 불안과 긴장에 빠져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거다. 특히 음식 맛에 취해 먹다 보면 과식하게 되고, 여기에 스트레스가 겹쳐 병에 걸린다.

 때문에 스님에게 공양은 단순히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꼭꼭 씹어먹다 보면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되는 수행의 방편이다. “좋은 음식을 먹어 내가 건강하면 내 가족, 내 주변, 나아가 사회가 행복해진다”고 했다.

 스님의 이야기는 다음날 아침 공양 후에도 이어졌다. 화제는 수행 이력, 비구니 스님의 종단 정치 참여 문제, 출가 사연으로까지 이어졌다.

 스님은 시종 거침이 없었다. “10대 후반 마음을 낸지 3일 만에 출가한 이래 단 1분 1초도 수행자의 길에 대한 좌절하거나 회의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수행자도 사람인데 고기·여자·노름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화가 난다”며 “수행자는 수행자일 뿐 사람이나 인간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만큼 엄격하게 계율을 지켜야 한다는 거다.

 스님은 1991년 불영사 주지를 맡았다. 검찰 등 지역 실력자들을 ‘감화’시켜 주민들의 민원을 무릅쓰고 사찰 인근 불영사 계곡의 야영장을 철거했다. 수 십 개의 전각을 거느린 지금의 규모로 사찰을 키우는 과정에서 한 교회 장로의 마음을 움직여 후원을 받은 일은 지금도 전설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지난해에는 캄보디아와 북한 어린이를 돕는 염불만일수행결사회를 조직했다. 1만일이니 얼추 30년 가까이 걸리는 대불사(大佛事)다. 한 달에 1만원씩 후원금을 내는 회원이 벌써 1000명 가량 된다고 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수행자가 따로 없었다.

◆불영사=신라의 고승 의상(義湘·625∼702) 대사가 651년에 세운 비구니 사찰. 동해안 최대의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꼽힌다. 1991년 일운 스님이 주지를 맡으면서 퇴락해 있던 절을 현재의 규모로 키웠다. 전각이 20채가 넘고, 78년 문을 연 천축선원은 안거 때마다 50∼60명이 참선 정진에 참여한다. 부처를 닮은 천축산의 한 바위가 절 한가운데 연못에 비친다고 해서 불영사(佛影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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