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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성격과 역할은] 정치학회 '헌정 재디자인'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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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한국정치학회 춘계 학술회의가 사흘 일정으로 19일 광주 전남대 용봉문화관 등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는 5·18 25주년 기념학술대회를 겸했다. 정치학자와 국회의원들이 개헌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광주=양광삼 기자

한국정치학회(회장 양병기)가 19일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21세기 민주주의와 한국정치'를 주제로 춘계 학술회의를 열었다. 사흘간 진행되는 이 회의의 '헌정제도의 재디자인' 섹션에선 개헌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개헌 토론회는 중앙일보가 후원했으며 GS칼텍스가 협찬했다. 토론회에선 '대통령이 미국처럼 정파적이 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쟁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실정치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학계의 개헌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통령에게 특정 정파(政派)적 속성을 허용해야 하느냐 여부가 이번 학회의 중점적인 화두로 등장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발생했던 지난해 대통령 탄핵 파동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에 대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정당의 공천으로 당선됐는데 대통령에 한해 당선된 뒤 정파성을 띠면 안 된다는 해석은 곤란하지 않으냐는 문제제기가 나온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은 국가통합의 상징인 국가원수와 정파적 특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행정수반으로서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며 "이제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두 가지 역할의 상호 충돌 가능성에 주목하고, 역할 분리가 가져다줄 수 있는 장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의 중립적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크다"고 했다. 미국 대통령은 선거유세 때 자기 정당 소속 후보의 지원유세를 하거나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할 수 있는 데 반해 한국은 대통령의 그러한 행위가 오히려 탄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대통령의 무(無)정파성이 정치적 책임성을 모면하는 방어막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며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면 미국처럼 '일정한 제도적 견제'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선출과정에서 국민적 대표성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과반수 득표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결선투표제' 방식의 선거제도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강대 이규영 교수도 "대통령제하에서의 대통령은 정당정치와 정쟁에 휘말려 조정적 기능을 상실할 경우 국민의 신망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해법으로 "대통령은 국가의 중립적 기구로, 정쟁을 중재하는 역할을 통해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며 '독일식 의원내각제'를 제안했다. 대통령은 국민화합과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지위를 가지며, 총리가 실질적인 국정운영의 중심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통령제가 통일 이후 예상될 수 있는 남한에 의한 권력독점 현상과 북한의 소외감 해소에 가장 적합한 정부형태라고 단언하기 어렵다"며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독일은 평화적 통일에 성공했지만, 대통령제였던 예멘은 평화적 통일에 실패하고, 동족 간 내전으로 발전한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신대 조정관 교수는 대통령을 차지한 정파와 국회 다수파가 일치하지 않는 '분점 정부(여소야대)'의 출현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대통령과 의회 간 충돌을 줄이기 위해 임명과정 이외에는 국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국무총리 제도를 폐지하는 등 순수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했다.

김정욱 기자 <jwkim@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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