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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연구소’ 원인은 연구과제중심운영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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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출연연구소의 비정규직화, 부실화의 가장 큰 원인은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Project Based System)’라는 게 출연연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PBS는 출연연의 연구비 지원에 경쟁 개념을 도입해 연구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로 1996년 도입된 시스템이다. 정부로부터 인건비와 연구비를 할당받았던 게 96년 이전까지였다면, 이듬해부터는 연구과제 아이디어를 내서 채택되면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과거와 달리 PBS로 따낸 연구비로 인건비까지 상당 부분 충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책임자가 과제를 따내지 못하면 팀원의 월급을 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대학교수의 경우 월급은 대학에서 받고, 연구과제를 따내면 그 돈으로 학생 인건비와 연구비를 쓰면 된다. 출연연은 연구책임자는 물론 정식 연구원의 월급까지 PBS로 해결해야 하는 구조다. 한때 PBS로 편성된 예산 비중이 70%에 달했으나 최근 들어 50% 수준까지 내려왔지만 연구현장에서의 부담은 여전하다.

 여기에 정부가 출연연 정규직 인력 정원을 사실상 묶어 놓고 있어, 비정규직 연구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정규직 인력은 제한돼 있는데, 연구 프로젝트 수주 경쟁을 유발하는 PBS가 도입되다 보니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뽑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정정훈 회장은 “우리나라는 경쟁 국가와 비교해 정규직 연구원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프랑스는 6500만 명의 인구 중 연구인력이 7만 명, 독일은 8100만 명 중 8만 명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5000만 명 중 2만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제도기획과 관계자는 “정부가 매년 출연연과 협의를 통해 수요를 판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규직 수요를 늘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R&D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공무원의 전문성도 문제다. 이공계를 전공하지 않은 공무원이 길어야 1~2년이면 자리를 옮기니 전문성이 쌓일 수 없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노환진 교수는 “우리가 출연연 문제를 자주 다루면서도 정책적 진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변화를 주도하는 공무원의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 기자,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미주 중앙일보=정구현(LA)· 강이종행(뉴욕)·유승림(워싱턴) 기자, 김보경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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