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길라잡이] '쿨쿨 할아버지 잠 깬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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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저학년을 위한 동화집이라든지 그에 걸맞은 공상동화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유치원도 모자라 각종 과외학원을 다니며 한글을 떼는 등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데에서 비롯한 현상이다. 요즘의 공상동화는 과거의 공상동화와는 내용과 질을 달리한다.

과거의 공상동화가 대부분 옛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삶의 지혜나 교훈을 재미있게 전하려는 우화나 의인(擬人) 동화의 성격이었다면 요즘의 공상동화는 실생활 속에서 싹터 나왔지만 말 그대로 풍부한 공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넓은 의미의 판타지 성격이다.

그런데 이게 반드시 아이들 삶의 환경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사정은 정반대다.

글은 좀 나중에 배우면 어떠랴. 자연에서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이 방구석에서 교실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려 살아야 하는 형편이니 자연히 문학이라도 그들의 억눌린 심정을 대변해주는 자유분방한 공상의 세계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선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누구보다 일찍 그들의 현실로 바짝 다가선 동화작가로 나는 채인선과 위기철을 꼽고 싶다.

우리 아동문학은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비로소, 아니 슬프게도 현대의 동화를 완성했다.

위기철은 동화의 문법을 아는 작가다. 이는 어린이의 심리 특성을 잘 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그 딱딱하다는 '철학의 논리' 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써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대열에 들어섰을까 보냐.

『신발 속에 사는 악어』에서 보듯이 그에겐 동시집도 흥겹고 맛깔스러운 이야기 세계다. 그는 첫 동화집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에서부터 어설픈 소설 흉내에 머무른 우리 창작동화의 일부 고질병에서 말끔히 벗어났는데, 『쿨쿨 할아버지 잠 깬 날』(신혜원 그림, 사계절, 1998) 에 이르러서는 더한층 농익은 이야기꾼의 솜씨를 보여준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 이야기의 길이가 문제라면, 짧은 에피소드를 병렬식으로 나열.반복함으로써 짜임과 서술의 묘미를 살려낸다. 우리 옛이야기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이 책의 1부는 주인공 꽃담이를 둘러싼 생활상의 숨구멍이 마련한 공상 이야기들이고, 2부는 작가가 전하고픈 녹색 평화의 메시지를 분방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공상 이야기들이다.

참, 저학년 동화일수록 삽화의 비중이 더욱 커지는데, 어린이 마음을 꼭 닮은 신혜원의 발랄한 그림이 이 책에서 빛나는 조연의 몫을 다 해주었다.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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