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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교회가 99%의 저항에 부닥칠 수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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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가 교회 세습을 금지하는 교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국내 개신교 교단 차원의 첫 시도다. 개정안 마련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현감리교회 조경열 목사는 ?교회 갱신의 첫 디딤돌, 교회가 새롭게 변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아현감리교회 역대 담임목사들이다. 최정동 기자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교)가 최근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개신교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자식 간의 교회 세습을 방지하는 교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달 25일로 예정된 교단 내 의사결정 기구인 입법의회에서 확정되면 당장 11월부터 시행된다.감리교는 그동안 유독 세습 논란에 자주 휘말렸다. 2000년 광림교회, 2006년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금란교회가 잇따라 교회를 세습해 사회적 파장이 컸다. 3대째 교회를 세습한 인천의 숭의교회 등 다른 어느 교단보다 세습 문화가 팽배한 교단이라는 지목을 받아왔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세습 금지 법안은 일단 첫 단추를 꿴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교단 집행부의 이런 노력을 바라보는 ‘제도권 밖’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중소 교회의 경우 세습보다 ‘매매’가 문제고, 그나마 교회 세습도 요즘은 직접 세습보다 중간에 ‘들러리 목사’를 몇 차례 청빙(請聘·담임목사로 초청)한 후 최종적으로 자식에게 돌아가는 간접 세습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감리교는 현재 소속 교회가 6500개, 신도 수는 165만 명쯤 된다. 서울 아현감리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조경열(59) 목사를 만났다. 이번 개정안을 마련한 장정(章程) 개정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이다. 세습 금지 법안을 마련하는 데 위원회 내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생이 많으셨겠다. 이번 세습 금지 법안에 대해 자평한다면.
“이런 일이 이슈화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실추됐던 교회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무엇보다 선언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 스스로 갱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입법의회 통과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도 있다.
“통과될 걸로 본다. 입법의회 회원은 500명 정도다.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고, 교회의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분들이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금권선거를 막는 선거법 개정이 이번 입법의회에서 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감리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니까 감리교회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 공감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법 통과가 어렵다고 전망하는 사람들은 입법의회 회원들이 보수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득권층이어서 세습 금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감리교는 최근 4년 동안 선거를 둘러싼 시비로 감독회장(교단의 행정 수반)이 공석이었다. 그런 진통 때문에 오히려 이런 법안이 가능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득권층이라는 부정적인 표현보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교회를 어떻게 만들어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쉽진 않겠지만 교회 갱신의 첫 디딤돌을 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새롭게 변화하는 출발점이 교회 대물림 목회 방지 법안이다.”

-법이 통과되면 실제로 세습이 사라지게 되나.
“그렇다. 바뀔 걸로 본다.”

-제 3자를 거친 간접 세습이나 교회 매매가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실적으로 그게(간접 세습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법안은 선언적인 의미가 중요하다. 이게 교회 문화가 돼야 하고, 이런 일에 교회가 공감대를 갖는 게 중요하다 . 교회 대물림이 하나의 문화처럼 되다 보니 이번 법안은 정반대로 가는 거지만 언젠가는 법안을 다시 고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교회 매매의 경우 작은 교회와 큰 교회의 요청이 맞아떨어져 오해를 사는 수도 있다. 가령 작은 교회를 개척한 목사가 은퇴할 때 교회 입장에서는 노후를 잘 돌봐드리고 싶은데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마침 청빙돼 오는 후임 목사가 대형 교회의 부목사인 경우 은퇴 목사를 금전적으로 도와주는 거다. 대형 교회 입장에서는 부목사를 독립시켜 새 교회를 개척하도록 도와주려면 어차피 자금이 들어가는데, 요즘 교회가 많다 보니 새 교회 개척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새 교회 개척자금으로 은퇴 목사를 도와주는 거다. 이건 교회를 사고파는 것과는 다르다.”

-교회의 세습 현상은 왜 생기는 건가.
“사회가 경제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교회가 영적인 차원의 목적을 이루려 하기보다 물량화되고 있다. 물량적으로 신앙의 가치가 평가되고, 성장이 곧 목회의 성공으로 이해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 이기주의가 생기고, 교회 세습이라는 사유화로 치닫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힘들게 일군 교회를 피붙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 싫다는 거 아닌가.
“개인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라는 신학적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은퇴 이후에도 개인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려는 욕망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하는 거다. 또 다른 원인으로 교회 안 리더십 그룹의 역할을 꼽을 수 있다. 일종의 블록(block)화된 집단이다. 이들은 새로운 목회자가 와 리더십 그룹이 깨지는 상황을 우려해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물림은 목사 개인의 생각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리더십 그룹이 동의를 해줘서 가능한 거다. 대물림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하나님이 교회를 이끌어가신다는 사실에 대한 영적 고백 없이 교회의 모든 물량과 자리가 그대로 대물림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이 있기 때문에 이런 대물림 금지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리더십 그룹이란.
“장로님들 그룹이다.”

-굵직한 세습이 하필 감리교회에 많았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시끄러웠지만 개체 교회에서 원해 된 일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감리교의 좋은 교회들이 대물림 시비에 휘말리면서 한국 교회 전체 내에서 지도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충분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끊어져 상당히 아쉽다.”

-성경에서 교회 세습은 어떻게 보나.
“전통적으로 제사장 집안이 따로 있어 자리를 물려받는다. 성경적으로 세습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교회가 성장해 골목에서 거리로 나오고, 거리마다 우뚝 선 교회들이 늘어나면서 마치 교회가 사회적 책임은 다하지 않고 부만 쌓는다는 오해를 받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처럼 교회가 99%의 저항에 부닥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세습 금지 법안으로 교회가 완전히 갱신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공교회성을 회복해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느냐, 이게 중요한 과제다. 또 목사들 각자가 영적으로 변화해 스스로 자제하고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

-그런 영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신학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 목사들 사이의 정신개혁 운동도 필요하다고 본다. 시대가 달라졌다. 교회 성장에 매몰된 목회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목회, 자기를 드러내는 기도보다는 침묵하고 자기 성찰을 많이 하는 기도가 교회 문화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조경열 목사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감리교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감리교신학대를 거쳐 미국 ‘Claremont School ofTheology’를 졸업했다. 강화초대교회, 부천제일교회, 미국 애리조나제일교회 등을 거쳐 현재 아현감리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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