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 셰익스피어·호킹 ‘빅뱅’ 이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런던 패럴림픽이 30일(한국시간) 개막식을 시작으로 12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주경기장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성화가 점화되자 스타디움 지붕에서 불꽃이 내려오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한국 선수단이 개막식에서 입장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스티븐 호킹 박사가 개막식을 지켜보는 장면(위에서부터). [런던 AP·신화통신=연합뉴스]

셰익스피어가 스티븐 호킹을 만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이 30일(한국시간)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하나가 돼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 냈다. 영국은 지난달 28일 올림픽 개막식에서 비틀스와 해리포터로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는 다채로운 문화 콘텐트를 한 편의 영화처럼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번엔 문화라는 ‘틀’에 과학이라는 새로운 ‘내용’을 녹여 냈다.

 전 세계 장애인 스포츠의 축제인 런던 패럴림픽은 30일 ‘역동하는 혼(Spirit in Motion)’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개막식을 하고 힘차게 출발했다. 이날 행사의 뼈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였다. 영국의 대표적 영화배우 이언 매켈런(73)이 ‘템페스트’의 주연 프로스페로를 맡아 여주인공인 미란다를 2012 런던 패럴림픽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셰익스피어나 매켈런이 아니었다. 오프닝 무대에 홀연히 등장한 진짜 주연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70)이었다. 호킹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이어 공중에 떠 있던 천체 구조물이 경기장 한가운데 설치된 거대한 우산 구조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빅뱅’이 일어났다. 빅뱅은 우주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호킹의 주요 이론이다. 빅뱅이 일어난 뒤 미란다가 휠체어를 탄 채 거대한 우산 밖으로 나오자 호킹은 “호기심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400년의 시차를 넘어 과학과 문화가 이어지는 상징적 순간이었다.

 선수단 입장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개막 선언 후 이어진 무대에서도 과학과 문화의 ‘하이브리드(이종 교배)’는 계속됐다. 호기심이 충만한 미란다는 책, 뉴턴의 사과, 태양열 등 인류의 발전을 앞당긴 상징물을 연달아 만났다. 특히 뉴턴의 사과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미란다와 함께 모든 관중이 손에 든 사과를 한입씩 베어먹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중력 법칙’에 경의를 표했다.

 극단 예술감독 출신으로 패럴림픽 개막식을 연출한 브래들리 헤밍스와 제니 실리 두 남녀 감독은 장애와 시간의 벽을 넘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전 세계에 선사했다.

 3시간 넘게 이어진 과학과 문화의 향연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장애인들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날 전면에 나선 호킹은 루게릭병(근위축증)을 이겨낸 장애인들의 ‘아이콘’이었다. 또 다른 주인공 미란다 역을 맡은 니콜라 윌딘(행위예술가) 역시 휠체어를 타고 입장해 장애인의 사회 진출 한계를 상징하는 ‘유리 천장’을 목발로 깨뜨리며 자활 의지를 알렸다. 개막식의 대미는 ‘나는 나 자신이다(I am what I am)’라는 의미심장한 노래가 장식했다.

 한편 한국 선수단은 이날 휠체어 육상에 출전하는 김규대(28)를 기수로 123번째로 입장했다. 한국은 13개 종목에 149명(선수 88명·임원 61명)을 파견해 금메달 11개·종합 13위 달성을 노리고 있다.

런던=정종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