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이 책을] '마당을 나온 암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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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의 조화 문제는 그림책뿐만 아니라 동화책에서도 중요합니다. 얼마 전 글은 등장 인물의 내면을 밀도 있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림이 너무 가벼워 산만해지는 바람에 차라리 그림 없이 읽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있어요.

『어린이와 그림책』(샘터) 에 보면 라초프가 그린 『장갑』은 옛 이야기의 전형적인 작품이라 그림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인데도, 그가 어찌나 이 이야기를 잘 해석해냈는지 이야기와 그림에 위화감이 없고 융합이 잘 이뤄져 일체화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라초프의 그림 없이 『장갑』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아니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글, 김환영 그림, 사계절) 이 꼭 그래요. 이 책은 이미 글만 가지고도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그림은 삽화란 동화책 속에 '끼워져 있는' 그림이라는 고정관념을 당당하게 바꿔놓았고, 이제는 그림을 빼고 이 책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은 섬뜩할만치 치밀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림이 이런 이야기의 흐름을 전혀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끼워진 그림' 이 아니라 스스로 힘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 글의 리얼리티를 더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마당을 나온 암탉' 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글에서 설정된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개성 있는 캐릭터로 그려내, 조연들 연기가 돋보이는 덕분에 주연이 더 빛나고 작품도 사는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낱 닭 주제에 무슨… ' 하는 것이 아니라 암탉 '잎싹' 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토해내는 것이죠.

사계절에서 독후감상문대회를 열었을 때 1천9백여편의 응모작 중에 『마당을 나온 암탉』원고가 1천4백편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독자들의 관심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데, 원고를 보낸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참으로 다양한 고백을 하고 있었어요.

그 가운데 이 책을 읽고, '나이 예순에도 가슴이 뛴다는 게 믿기지 않아 양손으로 가슴을 가만히 눌러 보기도 했다' 는 한 할머니는 암탉을 통해 지나온 삶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었죠.

이때 응모된 원고들을 읽으면서 좋은 어린이 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허은순 애기똥풀의 집(http://pbooks.zzagn.net)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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