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곡도 거뜬 … 전주 공무원계의 나훈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음악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지요. 물 없는 오아시스처럼 메마르고 삭막하지 않을까요.”

 이한진(59·사진)전주시 완산구청 행정지원과장은 “노래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청춘의 샘물”이라고 말했다. 올해 공직생활 38년째인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공무원 가수’다. 22세때 진안군청에 첫발을 디딘이래 전주시립도서관장, 전주 덕진구청 세무과장 등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행사때마다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딱딱하고 엄숙한 공무원들의 모임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살려 내는데 특급 솜씨를 발휘한다. 머리속에 늘 100~200곡의 노래가 장전돼 있어 뽕짝이나 발라드·고고·디스코 등 어떤 장르의 곡도 막힘없이 소화해 낸다. “목소리만 들으면 가수 조영남인줄 알겠다” “나훈아보다 더 감칠맛나게 노래한다”는 칭찬이 쏟아진다. 사회를 맡으면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분위기 메이커 노릇도 한다. 재치가 넘치는 위트와 유머, 성대묘사를 구사하며 1분 1초도 쉴 틈을 주지않고 사람들을 웃겨 “진짜 공무원 맞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실제 정식 음반을 내고 한국연예협회의 가수분과에 등록된 회원이기도 하다. 1998년 ‘월드컵 전주’라는 테이프·CD를 만들어 보급했다. 직접 작사·작곡까지 한 노래는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맛과 멋을 홍보하면서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이보다 1년전에는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고향의 포근한 향수를 담은‘전주의 모정’이라는 음반도 냈다.

 직장생활 틈틈히 합창단 활동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전주시내 고교생으로 구성된 청소년합창단을 조직해 92년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교회에 중창단을 조직하는가 하면, 전주남성합창단의 단장으로 국내외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어릴때부터 늘 음악을 곁에 두고 생활했어요. 고교시절엔 레코드취입 직전까지 갔다가 돈이 없어 포기했었죠. 하지만 음악과 함께 하는 인생은 행복해요. 노래하다 보면 나 자신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즐겁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10여 년전 목에 성대결절이 생긴 뒤로는 마이크보다는 악기를 많이 잡는다. 2000년부터 익힌 아코디언을 가지고 동호인들과 함께 각 동네 공원을 찾아가 여름밤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웃음치료사,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갖추고 있다. 이같은 끼는 아들에게 대물림 되었다. MBN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 공화국’에 출연하는 개그맨 이명백(31)씨가 둘째 아들이다. ‘세프를 꿈꾸며’코너에서 대통령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씨는 “내년에 정년퇴임하게 되면 노래·악기를 통한 음악봉사활동으로 더 활기차고 멋진 제2의 인생을 펼쳐 나갈 계획”이라며 활짝 웃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