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빡하면 황천길…백두산 천지 오르다 '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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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한국과 중국 등의 관광객들이 정상 부근 주차장에 내려 걸어가고 있다. 하루 평균 2만5000명이 천지를 둘러본다. [창바이산=최형규 총국장]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사진을 잠깐 보시지요. 나무 한 그루 없는 산등성이를 힘겹게 오르는 이 많은 사람들. 도대체 저 너머에 뭐가 있길래 애써 가는 걸까요. 다녀 오신 분들은 알겠네요. 이곳은 한(韓)민족의 성산 백두산(白頭山)이고 저 너머엔 천지(天池)가 있습니다. 한데 중국에서 올랐으니 사진 속 모습은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식 표기) 정상입니다. 지난주 출장 길에 운 좋게 천지를 봤습니다. 사진 속 중국인·한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말입니다. 검푸른 천지는 ‘성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천지까지 가는 길은 세 가지 공포와 싸워야 합니다. 자동차 사고와 인파, 그리고 소음입니다. 그것도 290위안(약 5만1466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말입니다. 창바이산 입구에 도착하면 두 장의 표를 삽니다. 하나는 입장권(125위안)이고 다른 하나는 버스 승차권(85위안) 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끝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몸을 부대껴야 합니다. 대부분 중국 단체 관광객입니다. 소음의 고통도 견뎌야 합니다. 잣나무와 소나무, 이름 모를 수목 사이로 버스가 30여 분 달리면 산 중턱에 도착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정상까지 가는 10인승 승합차 승차권(80위안)을 또 사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또 공포입니다. 정상까지 구절양장(九折羊腸), 10.2㎞의 시멘트 포장 2차로 도로인데 그 폭이 넓어야 6m 남짓입니다. 운전사는 ‘질주 본능’을 발휘합니다. 곡선이든 직선이든 가속기에서 발을 떼는 법이 없습니다. 코너를 돌 땐 찍 소리와 함께 타이어 타는 냄새도 납니다. 20분 만에 정상 도착입니다. 더 무서운 건 도로 중간 곳곳에 솟은 차선을 대신하는 철근입니다. 타이어가 철근을 스치기라도 하면 천길 낭떠러지입니다. 무려 140대의 벤츠 승합차가 매일 이렇게 질주합니다. 하산할 땐 더 빨라 15분 만에 주파합니다. 차라리 ‘인명재천(人命在天)’ 하며 눈 감는 게 상책입니다.

 이날 천지에 오른 사람만 2만5000여 명. 입장 수입은 12억8000만원. 한 달이면 대략 384억원입니다. 만약 북한이 백두산을 한국에 완전히 개방한다면 어떨까요. 적게 잡아도 하루 5000명은 가지 않을까요. 성산(聖山)에 오르면서 겪는 공포도 줄일 수 있을 거고요. 중국 입장료 기준으로 하면 하루 2억5000만원, 연 수백억원 수입도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관광객들이 먹고 자는 데 쓰는 비용에 비하면 입장료는 ‘새 발의 피’겠지요. 마침 장성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 창바이산 부근 지린(吉林)성에서 산업시찰과 투자유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백두산 하나만 개방해도 연 900억원 투자유치 효과가 있는데…. 맹자가 말했다지요. ‘사근구원(舍近求遠)의 우(愚)’를 범하지 말라고요. 멀리서 구하지 말고 가까이서 북한 경제개발의 묘수를 찾는 지혜가 아쉽습니다.

<백두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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