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노총, ‘막말·종북 골든벨’ 반성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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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주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서 주최한 공식 행사가 막말과 종북성(從北性) 발언으로 얼룩졌다. 이 행사의 사회자는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후보를 ‘공천헌금 받아 처먹은 년’으로 지칭하고 한·미 연례훈련을 두고는 “미국놈들의 전쟁연습”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노동운동을 대표한다는 민주노총이 얼마나 대한민국의 정체성, 그리고 이 사회의 합리적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지 보여 준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11일 ‘8·15 노동자 통일골든벨’ 행사를 연 곳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이었다. 그 자리에서 출제됐다는 문항들을 보면 행사 장소가 서울인지, 평양인지 모를 지경이다. 전교조 소속인 사회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당시 나이, 대한민국 국민의 원수 이명박과 공천헌금 받아 처먹은 년의 나이를 모두 더하면 몇 살이냐”는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상 ‘국가의 원수(元首)’인 대통령을 ‘국민의 원수(怨讐)’라고 비틀어 표현하고 박 후보를 ‘년’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이다. 헌법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직을 비하하는 것은 헌법과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또 박 후보뿐 아니라 그 어떤 여성도 욕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이종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의 ‘그년’ 발언 파문에서 이미 확인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넘어 그 근저에 깔린 기본 인식에 있다. 출제된 문항 중에는 “미군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러 온 날짜는 언제냐” “2008년부터 미국놈들이 해 온 전쟁연습이 무엇이냐” 등의 질문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점령’ ‘전쟁연습’은 북한의 역사관과 노선에 터잡은 언사들이다. 통일골든벨에 나온 문항 중 상당수는 민주노총이 지난 5월 펴낸 『노동자, 통일을 부탁해』라는 책에서 출제된 것이다. 민주노총 내에서 ‘통일교과서’로도 불리는 이 책은 이적성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아울러 민주노총이 지난 10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2012 교육지 17호-문제로 푸는 자주통일정세’라는 제목의 글에도 북측 주장에 경도된 시각이 반영돼 있다.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명분으로 사회와 호흡해야 한다. 그들만의 왜곡된 상식으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와 공감을 끌어낸다는 말인가. 행사에서 욕설을 뱉는 것이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민주노총은 어제 “돌발적으로 발생한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며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이념적 색깔공세” “종북몰이”라고 일축했다. 이런 자세는 진심으로 사과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시대착오적 사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일부 정파의 포로가 돼 버린 건 아닌지 철저하게 반성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 통합진보당의 옛 당권파가 걷고 있는 고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평화시장 여공들을 위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쳤던 전태일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