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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아버지와 차별화 … 베트남식 개방으로 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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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대외팀장,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왼쪽부터)이 25일 본사 회의실에서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오른쪽)의 사회로 이영호 총참모장 숙청, 퍼스트레이디 공개 등에서 나타난 북한의 변화와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북한 김정은 체제가 출범 7개월을 넘겼다. 경제개혁 준비 등 새 리더십을 선보일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부인 이설주를 동반하는 파격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5일엔 군부 최고 실세인 이영호 총참모장을 전격 숙청하기도 했다.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의 사회로 25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을 통해 김정은 체제를 진단했다.

▶사회= 북한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경제 변화상을 진단해 달라.

▶백승주=이영호 총참모장 해임 사태는 김정은이 권력을 비교적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김정은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감동정치도 펼친다. 평양 양말공장에 가서는 모양새 예쁜 걸 생산하라고 주문했다. 무엇보다 지난 4월 첫 연설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20분간 주민들에게 직접 선보인 게 주목된다. 아버지를 승계했지만 그 스타일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인을 데리고 나오는 전례 없는 행동도 하고, 할아버지 김일성의 리더십을 믹스한 변화도 나타나는 것이다.

▶정영태=김정일 시대에 군부를 지나치게 활용하고 의존한 측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유니폼을 입은 정치군인들이 노동당 정치국에도 상당수 들어와 있다. 김정일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대한 2010년 9월 3차 노동당 대표자회 때 여동생 김경희 당비서와 최용해(현 총정치국장)를 비롯해 4명에게 대장 칭호를 줬다. 모두 노동당에 기반을 둔 인물들이다. 군부를 통제하면서 김정은 후계구축을 이끌어 달라는 게 김정일의 메시지였다.

▶조봉현=김정일 때는 7대 3 정도로 노동당·내각에 비해 군부에 힘이 있었다. 이영호 숙청은 군부의 힘을 빼 북한 정치를 정상화하려는 김정은의 실험이라고 봐야 한다.

 ▶사회=북한에서 군부의 돌출행동이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백승주=급변사태로 진행되려면 숙청된 이영호와 군부 장령들이 조직적으로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장악하려 해야 한다. 이영호가 갖고 있던 권력자산이나 군부의 경험으로 볼 때 노동당의 결정에 집단적으로 저항해 정치적 내부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론 섭섭한 마음은 있겠지만 그것이 정치변동으로 가기는 어렵다.

 ▶정영태=쿠데타 가능성은 있다. 당장은 어려워도 군부 내에서 최용해를 위시한 정치군관 라인과 야전군부 사이의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당장 군부가 어떤 일을 도모하기 어렵겠지만 김정일 시대에 비해선 쿠데타가 가능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큰 흐름으로 볼 때 김정은 체제가 개혁·개방이나 정책 변화 쪽으로 이미 접어든 분위기다.  

▶정영태=김정은이 모든 힘을 구사하는 상황까지 아직은 오지 않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책이나 노선을 실제로 꾸미는 다른 세력이 있다. 김경희가 모든 중요한 결정의 핵심에 있지 않은가. 김일성 때 조직비서인 김정일이 ‘당 중앙’으로 불리며 유일독재체제를 만들었던 것처럼 김정은 시대에는 김경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봉현=김정은은 당 계획재정부장 곽범기와 경제부총리 노두철로부터 경제수업을 받았다고 하더라. 김정은도 4월 김일성 출생 100주 행사 치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만신창이 경제가 보였을 것이다. 결국 인민들의 기대를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 것 같다.

 ▶사회=김정은이 경제 과외수업을 받았다고 하는데, 과거 성적표를 보면 안정감 있는 경제지도자로 보기 어렵다.

 ▶조봉현=주민들은 김정은을 화폐개혁의 주동자로 보고 있다. 또 1990년대 말 200만~300만 명이 아사하는 ‘고난의 행군’ 때 뭘 하고 있었나(당시 김정은은 해외유학) 하는 반감도 있다. 소극적 개혁 실험이 순조로우면 수년 후 적극적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본다. 다만 핵심 간부부터 보신주의가 만연한 게 문제다.

 ▶백승주=보신주의란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지난 7개월간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대남 도발 위협 등은 보신주의에서 나올 수 없다. 김정은 시대엔 보신주의를 넘어선 출세주의, 즉 새 절대권력자의 신임을 얻기 위한 생존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결과가 이영호 숙청 사태다.

 ▶사회=북한이 처한 여건이나 능력 등으로 볼 때 어떤 식의 개혁·개방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조봉현=중국식보다는 싱가포르식 경제개혁과 개방이 가능할 것이다. 정치는 중앙집권이고, 지식기반 산업과 관광·물류·금융이 강점인 게 싱가포르의 특징이다. 지난해 북한이 금융 노하우를 배우려고 싱가포르의 경제관료를 초청해 평양에서 학습모임을 열었다. 엘리트 북한 관리들이 모인 자리에 최태복 당비서가 예고 없이 나타나 “우린 싱가포르 모델을 배우고 있고, 보완해 나갈 것”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중국 모델은 거대한 개혁·개방을 짧은 시간에 해야 하는 데다 부패문제 등이 있어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정영태=싱가포르식은 자본주의 모델인데, 너무 빨리 가는 부담이 따를 것이다. 오히려 베트남식 모델이 북한으로서는 매력적일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경직된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외자유치와 개방을 한 ‘도이모이’(쇄신을 뜻하는 베트남어로 86년 제기된 베트남 공산당의 개혁정책)를 볼 때 베트남 모델을 택할 것으로 점치고 싶다.

 ▶백승주=북한이 개혁·개방 할 것이란 관측은 80년대부터 나왔다. 그런데 지금 왜 관심을 끄는가. 지도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방안이 새로운 게 아니라 새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할까, 유럽에서의 유학 경험이 작용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다. 덩샤오핑의 프랑스 유학 경험이 중국 경제개혁의 밑거름이라고 하지만, 유학 다녀와 나쁜 짓을 한 지도자도 적지 않다.

 ▶사회=북한의 변화에 일단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전략적으로도 그렇게 보는 게 맞다. 북한의 변화를 실제 체감할 시기는 언제로 전망되는가.

 ▶백승주=변화는 불가피하고,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환경도 조성돼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급속한 의식 변화가 눈에 띈다. 2만5000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와 있고, 돈과 정보가 재북가족에게로 간다. 국제사회도 대북압박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한국의 차기 정부가 대북접근 전략을 짜면 된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임박해 있다.

 ▶정영태=이영호 전격 숙청 사태로 볼 때 권력 내부의 의견충돌이 꽤 있었다고 판단된다. 갈등 속에서 순항은 어렵다. 향후 2~3년 내에 괄목상대할 북한의 변화는 어렵다고 본다. 대내외 환경을 쉽게 풀 방법이 없다. 주민들의 욕구에 부응해 경제 상황 일부를 호전시키는 부분적 노력은 가능할 것이다.

 ▶조봉현=우리 시각으로 북한을 보면 절대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작은 별것 아니지만 5년 정도 지나면 확실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출범할 우리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정은 체제가 선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주민과 경제를 중시하는 선민·선경으로 갈 수 있게 유도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웠으면 한다.

참석자 =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대외팀장
사 회=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
정리=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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