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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같고 입냄새나" 의사남편 독설, 결국…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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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 중 외모가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요. 중앙선데이에서 22일자로 보도했습니다.
결혼정보회사 소개를 통해 재혼한 부부가 ‘몸매’ 때문에 트러블이 생겨 끝내 법정으로 갔습니다. 아내의 몸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남편 때문에 둘 사이가 벌어졌다는데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각색했습니다.

아내(46)의 이야기
‘아침엔 샐러드와 저지방 우유 한 잔, 점심엔 닭가슴살과 토마토, 저녁엔 현미밥’ 아, 정말 이렇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게 지긋지긋하다. 이젠 현미밥과 닭고기 냄새만 맡아도 신물이 올라온다. 다이어트 한 달째지만 체중은 바라던 만큼 줄어들지 않는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내가 TV에 나오는 날씬한 여자 연예인들처럼 될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훌라후프를 돌리다가 화가 치밀어 보던 TV를 꺼버렸다.

남편은 서울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소위 ‘잘나가는’ 의사다.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1500만원쯤 된다. 2006년께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그를 처음 소개 받았다. 내 나이 마흔이 갓 되었을 때였다. ‘돌싱(돌아온 싱글)’이었던 나는 같은 처지의 그와 잘 통했다. 만나고 얼마 안 돼 친지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결혼식도 올렸다. 내가 지방대 교수를 하고 있어 우린 주말부부로 지냈다. 주로 수업을 마친 내가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와 서울 집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곤 했다.

결혼해 처음엔 월급을 합쳐 한 사람이 관리해볼까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수입을 각자 관리하고 생활비를 주겠다고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매달 생활비로 250만원을 받기로 했다. 나도 교수를 하면서 한 달에 500만원은 벌고 있으니 나쁘진 않을 듯했다. 처음엔 ‘경제 주도권’을 놓고 기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내가 수입을 관리하게 되리라 생각한 것도 있었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얼마 후였다. 문제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터졌다. 여느 때처럼 둘이 주말을 같이 보내고 있을 때였다. 일요일 오전이었나. TV를 보던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누워있지만 말고, 주말이니까 운동이라도 좀 하라”는 것이었다. 잔소리는 그 뒤로도 이어졌다. 남편은 내가 “뚱뚱하다”며 면박의 수위를 높여갔다. 심지어 “코끼리 몸매다. 뚱뚱해서 성욕도 안 생긴다.” “스모 선수 같다”는 말도 했다. 머리가 멍했다. 키 163㎝에 다소 통통한 체격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코끼리’ 같다고 여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나이 근처의 아줌마들처럼 나잇살이 적당히 붙어있을 뿐인데. 자존심이 상했다. 지방에 내려가 며칠을 굶어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다이어트는 쉽게 되지 않았다. 남편이 몸매를 들먹이며 스트레스를 주면 줄수록 살은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먹고 싶은 것만 늘어나 폭식을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입에서 냄새가 난다”며 잠자리에서 나를 밀어내기도 했다. 참을 수가 없어 병원에도 가봤지만 특별히 ‘입냄새’가 날 만한 질환은 없으니 ‘걱정 말라’는 소리가 돌아왔다. 남편이 몸매를 타박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놓는 생활비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살을 빼지 않는다. 내 말을 듣지 않는데 어떻게 살림을 맡기느냐”며 생활비를 50만원으로 줄여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 역시 내 직장이 있는 터라 참기로 했다.

남편이 ‘이혼’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였다. 처음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아이에 대한 양육비 문제로 소송을 벌이던 중이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그런 것이려니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편이 끈질기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주말에 격한 말다툼을 벌였다. 지방에 내려가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문자까지 보냈지만 남편은 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론 서울에 올라오지 말라’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버렸다. 지난달엔 서울 집에 있던 내 옷과 책가지를 보내왔다. 참을 만큼 참았다. 남편과의 결혼생활 6년. 내가 들은 건 “다이어트 하라”는 잔소리와 모욕감밖에 없다.

남편(51)의 이야기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아내는 당당했다. 그 사람도 나도 전문직을 갖고 있어 수입도 안정적이었다. 서로 결혼생활의 실패에 대한 아픔을 공유할 수 있어 말이 쉽게 통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돼 재혼을 결심할 정도였다. 재혼을 하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차를 사주기도 했다. 명색이 교수인 데다 주말부부를 하느라 서울과 지방을 오가야 하니 힘들겠단 생각에 고가의 중형차를 선물했다. 하지만 주말마다 서울 집에 오는 아내는 누워있기 일쑤였다. 건강관리도 좀 하고, 학생들 앞에 서는 교수인데 몸매관리라도 하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처음엔 가볍게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아내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은 담배까지 피워댔고 일요일엔 늦게까지 잠을 자다 외식만 하고 지방으로 다시 내려갔다. 소파에 너부러져 있는 아내의 모습이 하도 한심해 “코끼리 몸매 같다”고 했는데 아내는 펄쩍 뛰었다. 처음엔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다시 게으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천적으로 느리고, 정리정돈이나 청결함과는 거리가 먼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내가 실망스러웠다.

집안일에도 게으르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는 유일한 조언도 듣지 않는 아내가 답답했다. 아내는 그러면서도 늘 생활비를 입에 올렸다. 살림도 제대로 안 하면서 생활비를 달라고 하는 아내가 못미더웠다. 때론 밉기도 했다. 생활비를 줄이자 아내는 식탁에 물건을 내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끔찍했다. 아내에겐 나는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같은 것인가.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아내와 살기보단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가정법원은 이 부부에게 ‘이혼’을 판결했다. 둘 다 전문직을 갖고 있고 재력이 있지만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각각 수입을 관리하고, 자녀가 없는 ‘약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다 한 차례의 말다툼으로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부부가 이혼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모욕을 줬다”는 점을 첫째 사유로 봤다. 법원은 “애정과 신뢰를 쉽사리 저버리고 비교적 사소한 문제를 들어 이혼을 요구함으로써 별거의 원인을 제공해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또 ‘코끼리 몸매’라는 발언 등으로 아내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 점에 대해서도 1000만원의 위자료를 주라고 판결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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