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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꼬마주택 많이 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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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11일 서울 광진구 군자동 주택가.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기존 주택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들 주택은 대개 5층 이하로 원룸형의 5~15가구가 주로 들어선다. 인근 지역도 마찬가지. 아파트 등 규모가 큰 주택 공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사 현장은 거의 다 원룸형의 소규모 주택이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오렌지공인 고숙자 사장은 “업체가 땅을 매입해 사업을 하기도 하지만 단독주택 소유자들이 살던 집을 허물고 다가구 등을 짓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들 중에는 임대 수익을 기대하고 퇴직금 등으로 집을 짓는 은퇴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

 한두 명이 살기 적합한 초소형 ‘꼬마주택’이 주택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중대형 집값 침체 속에 1~2인 가구 증가 바람을 타고 높은 인기를 끌며 건설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큰 집에 밀려 홀대를 받다 최근 3~4년 새 주택시장의 대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초소형 주택의 갑작스러운 증가에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들어 5월 말까지 전국에서 건설 인허가가 난 전용면적 40㎡ 이하의 초소형 주택은 4만2383가구. 집값 상승기였던 2007년 같은 기간(4115가구)의 10배가 넘는다. 주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져 2007년 전체의 4.1%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22.6%나 됐다. 특히 서울·수도권에서 증가 속도가 빠르다. 올해 1~5월 서울의 초소형 주택 인허가 물량은 2007년(973가구)의 15배 정도인 1만4278가구다. 이는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인허가 물량(2만9439가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새로 짓는 주택 두 채 중 한 채가 초소형인 셈이다.

 여기다 관련 법에는 업무시설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주거시설인 오피스텔을 합치면 초소형 주택은 훨씬 더 많다. 지난해 전국에서 건축허가가 난 오피스텔은 6만1000여 실로 초소형 주택 건설 인허가 물량(12만3000여 가구)의 절반에 가깝다. 요즘 지어지는 오피스텔은 대부분 소형이다.

 초소형 주택의 주가가 높아진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주택시장과 인구구조, 정부의 규제 완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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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집값 상승세가 꺾이자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초소형이 부동산투자 효자상품으로 떠올랐다. 과거 상당한 시세차익을 안겨주며 주택시장의 주류를 호령하던 중대형은 집값 약세를 보이자 주택시장의 주무대에서 밀려났다. 대신 규모가 작아 투자비용 부담이 적으면서 짭짤한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초소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유형으로 보면 아파트가 지고 다가구·다세대주택·도시형생활주택 등과 주거형 오피스텔이 떠오른 것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초소형에 날개를 달아줬다. 통계청에 따르면 초소형 주택 주요 수요층인 1~2인 가구가 2001~2010년 동안 전국적으로 38.2%인 200여만 가구가 늘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170만 가구(20.3%) 증가하며 전체 가구수의 절반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건축 규제 완화도 한몫했다. 정부는 1~2인 가구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2009년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의 건축기준을 대폭 낮췄다. 지난해 전국의 건설 인허가 가구수 중 초소형이 12만3000여 가구인데 도시형생활주택이 8만3859가구다. 한미글로벌 개발사업본부 정양곤 전무는 “임대투자자들이 몰리며 도시형생활주택이 높은 경쟁률 속에 분양되자 주택업체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초소형 주택은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이어온 전·월세난을 진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공사기간이 짧아 공급 효과가 빨리 나타났다. 올 들어 5월까지 서울에 새로 지어진 주택이 2만9841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1067가구)보다 41.7% 많다. 초소형이 확 늘면서 전체 준공 물량이 급증했다. 올 들어 준공된 주택 10가구 중 4가구가 초소형 주택이다. 서울 자양동 건국부동산 강이슬 실장은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다세대주택 등이 빠르게 늘면서 아파트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전·월세 수요를 빨아들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단기간의 초소형 주택 급증은 공급 과잉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정 지역에 몰리는 경우가 많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선 도시형생활주택만 85개 단지 1700여 가구가 들어선다. 대부분 초소형인 기존 다가구주택 1만2000여 가구의 14%에 해당한다. 일부 지역에선 초소형 주택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서울 화양동 세종대공인 황금임 실장은 “이 일대에 세입자를 찾는 빈 원룸이 100개가량이나 된다”며 “지난해 말만 해도 1000만~3000만원이던 보증금이 지금은 500만~2000만원으로 내렸다”고 전했다.

 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2000년대 중반 집값 상승을 주도한 중대형이 넘쳐나면서 지금 미분양 몸살을 앓는 것처럼 초소형 주택도 중대형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구잡이개발 걱정도 나온다. 초소형 주택은 주로 단독주택 지역에 많이 지어진다. 가구수가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주차난이 심해지는 등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것이다. 중랑구 묵동 황규호(30)씨는 “새로 들어선 다가구주택 등의 차량이 인근 골목의 주차공간을 차지하는 바람에 퇴근해서 주차하려면 30분 넘게 헤매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7월부터 도시형생활주택의 주차장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가구수 급증에 따른 기반시설 과부하는 피하기 어렵다. 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머지않아 3~4인 가구용 주택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초소형 주택 ‘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연구위원은 “자치단체는 무분별한 초소형 주택 사업을 제한해야 하고 업체들도 다양한 크기의 주택 공급에 신경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장원·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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