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협정 서명 무기 연기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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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9일 오후로 예정돼 있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서명이 무기 연기됐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국회가 7월 2일 개원함에 따라 국회와 협의한 후 서명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오후 3시50분, 예정된 서명식(4시)을 10분 앞두고서다.

 당초 이날 오전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일본에선 각의 통과 뒤 신각수 주일 한국대사와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무상이 서명식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내 여론이 나빠지고 여야가 한목소리로 반대하자 막판에 물러선 것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오후 2시쯤 청와대와 협의하고 연기를 결정했다. 직후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하고 “오늘 중으로 사인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유감”이라고 말했다.

 근본 원인은 우리 정부의 추진 방식에 있었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여론을 너무 의식해 쉬쉬하며 진행하다 보니 ‘뭔가 하지 말아야 할 협정을 몰래 체결하려 한다’는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특히 국무회의(26일)에 비공개로 상정해 의결하고, 서명 직전 ‘깜짝쇼’로 발표하려던 계획에 대한 반발이 크다.

 일본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인 상태였다. 대선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을 정부가 설득할 수도 없었다. “여야 정책위의장을 만나 양해를 구했다”던 정부 당국자들은 하루 만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찬성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동맹의 기본은 군사협력이고, 군사동맹의 근간은 정보협력”이라고 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협정 체결을 추진했던 것은 무리수였다”고 말했다.

 여야는 협정 체결에 반대한다는 공통된 입장을 김성환 장관에게 전달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김 장관과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졸속·밀실협정 체결이란 국민적 비판이 있는 만큼 7월 2일 국회 개원 이후 반드시 보고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요청했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도 “일본 자위대에 고급 군사정보를 제공하는 협정을 아무도 모르게, 국회에 한 번도 보고 없이 체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개원 뒤 이 문제를 철저히 따져 반드시 무효화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회에 설명은 하되, 이번 협정이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개원 이후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본격 논의될 전망인데, 여야 간 정치쟁점이 될 공산이 크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내용이 국익에 부합한 것이고 6월 말까지 체결하기로 상대국과 협의했으며, 상대국과 관련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 공개하지 않는 것이 외교적 관례인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김 총리는 “이번 협정은 비밀협정이 아니므로 숨겨서도 안 되고, 숨겨질 수도 없는 사안”이라며 “앞으로 책임 있는 자세로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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