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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인민군 총공격 제보자, 62년 만에 누명 벗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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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한 인민군의 총공격 계획을 국군에 제보했지만 아군과 교전했다는 누명을 쓰고 징역을 살았던 재미동포가 62년 만에 법원의 재심을 받게 됐다. 누명을 벗을 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이원범)는 1950년 9월 인민군 신분으로 국군과 교전한 혐의(국방경비법 위반)로 기소돼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재미동포 홍윤희(82·사진)씨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전쟁 당시 기록 중에서 홍씨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50년 6월 20세 청년이던 홍씨는 국군 보병학교 입교를 기다리던 중 낙오된 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인민의용군에 입대했다. ‘인민군 9월 총공격 지시’라는 정보를 접한 홍씨는 같은 해 9월 1일 국군에 귀순해 유엔군사령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홍씨의 제보로 유엔군은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다. 홍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국군 신분을 회복했다. 그러나 열흘 뒤인 11일 홍씨는 갑자기 육군 헌병대에 체포됐고 고문 끝에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수감 이후 두 차례 감형돼 55년에 출소한 홍씨는 7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홍씨는 89년 일본인 학자 고지마 노보루의 『조선전쟁』에서 “인민군 소좌 김성준이 투항해 인민군 총공격을 제보했다”는 구절을 발견했다. 이후 인민군의 9월 총공격을 제보한 사람과 관련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자신이 9월 총공격 계획을 제보했고, 미군이 이를 중요 정보로 다뤘다는 내용의 메모를 발견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미 국립문서보관소를 통해 입수한 기록 가운데 하나였다. 54년 3월 ‘홍의 정보(The Hong’s Information)’라는 제목의 문건엔 “간부후보생인 홍윤희씨가 인민의용군에서 탈출해 50년 9월 1일 새벽 아군에 귀순, 인민군이 열흘 안에 부산 점령을 목표로 총공격을 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홍씨는 이 메모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이 받아들여졌다. 홍씨는 “늦었지만 62년 만에 누명을 벗고 진실을 밝힐 기회를 얻게 돼 고맙다”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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