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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추말리기' 여자 3대의 소박한 삶 표현

중앙일보

입력

'고추말리기' 의 장희선(30) 감독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들추어내는 용기를 보여줬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정이 없어" 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할머니와 "미친년아, 시집 안가고 혼자 늙어 죽을래? 살이나 빼" 라고 사정없이 닦달하는 어머니를 영화의 실제 주인공으로 세워놓고는 "이 모든 것이 내 가족의 이야기" 라고 털어놓는다.

"밖으로 나다니는 어머니가 싫은 할머니,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를 수발하는 일에 질렸다는 어머니, 그리고 뚱뚱한 몸 때문에 고민이 많은 저. 이 세 여자가 아옹다옹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여성의 삶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

아버지로부터 결혼 비용으로 받은 8백만원으로 제작한 이 영화는 16㎜ 단편으로, 1999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은 후 베를린 영화제.부산영화제 등에 연이어 초청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를 개봉관에 건 인츠닷컴이 이 작품을 인큐베이팅 무비(배급 지원작) 로 선정, 10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일반 관객에게 선보인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메이킹' 필름(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 의 세 가지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고추말리기라는 아주 일상적인 소재처럼 여자 3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는 작품이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여성이란 주제에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어요. 분석하기보다 일상 속에서 묻어나오는 일들을 보여줌으로 더 큰 느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

자신의 할머니(최천수) 와 어머니(설정면) 를 배우로 등장시킨 것은 물론이고 스토리까지 실제 일어난 일을 담았다는 얘기를 듣고 '노출증 환자' 가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았다는 장감독은 "어느 집에나 이 정도 문제 없을까요" 라며 오히려 여유를 부린다.

장감독의 역할만 뮤지컬 배우인 박준면씨가 맡았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영화의 백미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연기 아닌 연기. 다큐멘터리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대사가 있는 장면에서도 웬만한 프로 못지 않은 연기력을 보인다.

"지난번 습작으로 만든 영화에 할머니와 어머니를 출연시켰는데 연기가 되더군요. 그 때 확신을 했어요. 아, 주연으로 삼아도 무방하겠다고요. "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하고 홍상수 감독의 연출부 등을 거친 장감독은 만들 때는 용감하게 만들었는데 막상 개봉을 한다니 "창피해 죽을 지경" 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장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에 대한 얘기보다 자기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

상영시간 54분인 이 영화는 입장료도 좀 특이하게 받는다. 1인당 4천원이며 어머니와 함께 오면 어머니는 무료, 여자 3대가 함께 오면 모두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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