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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한 음반업계 마이다스 손

중앙일보

입력

처음에는 미친 놈 소리를 들었습니다. 10대 위주의 음반시장에서 옛날 인기가요 음반을 낸다고 음원(音源)사는 데만 1백억원을 썼으니 모두 곧 망할 거라고 수군거렸죠.” 예당엔터테인먼트(02-547~8071)의 변대윤(43) 사장은 2년 전, 30년대부터 최신 히트곡까지 2천여 곡을 1백 장의 CD에 담은 플래티넘 시리즈를 기획할 때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하지만 이 플래티넘 시리즈는 2년 만에 총 6백만 장이 팔려 음반시장 불황에도 빅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변사장이 다른 제작사들과 달리 30대를 겨냥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변사장은 70년대 음악다방 DJ에서 출발, 예당을 연매출이 1백억원이 넘는 제작사로 키운 인물이다.

변사장이 음반기획과 프로듀서 사업에 눈을 뜬 것은 음악다방 DJ를 하며 팝음악과 외국가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부터다.

이때 매니지먼트 회사에 대한 얘기가 나와 자연스럽게 음반 및 매니지먼트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만 해도 대중가수들은 쇼단이나 가수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프로듀서는 아예 없었던 시절. 그래서 외국처럼 음반기획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DJ생활로 한 푼 두 푼 모은 1천만원을 갖고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었다. 변사장은 음반제작자 및 프로듀서가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열정 하나로 음반을 제작했다.

이 앨범으로 발굴된 가수가 ‘가을사랑’으로 인기를 누렸던 신계행씨와 박강성씨였다. 앨범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변사장은 ‘인생은 미완성’의 가수 이진관씨를 발굴, 또 한 번 히트를 쳤다. 음반을 만들어 음악다방을 통한 선전은 자신있었는데 방송 홍보에서는 높은 벽을 실감, 이번에는 매니지먼트사업에 뛰어 들었다.

서세원·이홍렬·김형곤 등 지금은 개그계 중진으로 성장한 인기 개그맨들의 매니지먼트를 했다. 당시 매니저라고 해야 고작 밤무대 스케줄을 잡아주는 정도였는데 변사장은 매니저를 하면서 방송쪽으로 방향을 돌린 국내 최초의 매니저였다. 개그맨들의 매니지먼트를 하다 변사장은 다시 본업인 음반쪽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그의 손을 거쳐 발굴된 인물이 ‘남남’으로 유명한 최성수씨와 조덕배씨 그리고 지금은 변사장의 부인인 양수경씨 등이다. 이런 탄탄대로는 85년부터 91년까지 이어졌다. 내놓은 음반마다 대박이 터졌다. 변사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10% 성공하기 어렵다는 음반시장에서 90%를 성공해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시기”라고 말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변사장은 91년도에 임파선암 말기를 판정받게 된다. 그는 이왕 죽을 바에 새로운 방법으로 암에 도전하자는 결심을 하고 이후 2년간 야채만 먹는 생채식과 종교적 신앙으로 병마와 싸웠다.

“그 동안 회사를 운영했지만 주식회사라는 말도 몰랐습니다. 개인회사이다 보니 내가 죽으면 그 회사는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다시 살아난다면 오랫동안 살아남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투병 중에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갖고 있던 돈과 판권도 모두 회사에 주고 변사장은 계속 투병생활을 했다.

하지만 회사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하루에 막아야 하는 어음만 1억원이 넘었던 시절도 있었다. 후선에서 기업을 경영하던 그는 95년에 다시 경영 전면에 뛰어든다. 병도 완쾌돼 변사장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특유의 감각으로 가수들을 발굴했다.

듀스·녹색지대·조PD·이정현 등 인기가수들을 대거 발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IMF 한파를 맞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1백1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 1월에는 코스닥에 등록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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