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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푼 안들이고 BMW 모는 병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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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강원도 원주에 있는 A병원 송모 원장은 지난해 1월부터 BMW 자동차를 몰았다. 시가 5000만원이 넘는 수입차였지만 그는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이 병원에 약을 납품하는 B제약사 전모 대표가 회사 명의로 리스(장기 임대)해 송 원장에게 제공한 차였다. 한 달 100여만원이 넘는 리스 비용과 수리비는 B제약사의 자회사인 도매상 임모 대표가 부담했다. 리스 기간이 끝나면 차량 명의를 송 원장 이름으로 이전해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송 원장이 B제약사의 약을 환자들에게 처방해주는 대가로 주는 리베이트였다. 이런 방식으로 1년여 동안 주고받은 리베이트는 3300만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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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는 8일 검찰·경찰·공정거래위가 참여한 합동 수사반의 의약품 리베이트 조사 결과와 제재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의사 2919명, 약사 2340명, 제약사·도매상·의료기기 업체 54곳이 리베이트 혐의로 수사반에 적발됐다. 2010년 11월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약사도 처벌하는 쌍벌제가 도입됐고, 리베이트가 드러난 약은 정부가 약값을 20% 깎는 등 리베이트 대책이 시행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불법 리베이트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경기경찰청은 “차병원그룹 고위 간부 A씨가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에쿠스 차량을 제공받는 등 리베이트 혐의가 있어 2010년부터 3년치 회계 장부를 압수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합동 수사반은 기존 리베이트 수법과는 다른 방식도 적발했다. 시장조사비나 광고비로 위장해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이다. C제약사는 의사 858명에게 2쪽짜리 간단한 설문조사를 의뢰하고 대가로 1건당 5만원씩 총 13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해 불구속 기소됐다. 일부 제약사는 광고대행사를 통해 병원에 광고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약품 처방액에 따라 결정된 리베이트를 광고비 명목으로 제공했다.

현행 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한 신종 수법도 확인됐다. 제약사 등이 마케팅업체·광고대행사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약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현행 법에는 리베이트 제공 금지 대상이 ▶의약품 제조·수입 업체 ▶도매상 ▶의료기기 판매·임대 업체로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제약사와 계약을 맺은 제3자가 리베이트를 대행하면 처벌 대상이 아니다.

 복지부는 리베이트 수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복지부 정경실 의약품정책과장은 “의약품 유통에 관련된 사람은 누구든지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 없도록 올해 안에 관련 법령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또 의사나 약사가 받은 리베이트 금액이 크고 적발된 횟수가 많을수록 더 강한 처분을 받도록 가중 처분 기준도 만들 방침이다. ▶적발된 의약품은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서 제외해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리베이트 수수 제약사와 의사·약사는 정부의 각종 연구개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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