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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라가 잘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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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매튜 디킨
한국 HSBC 은행장

“한국의 어떤 점을 제일 좋아하느냐.”

 한국 사람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당신은 한국의 어떤 점이 제일 좋으냐”고 반문하곤 한다. 몇몇은 음식이나 골프라고 대답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대답을 잘하지 못한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치안’이다. 영국을 포함해 필자가 거주했던 많은 나라 중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6살 된 아들이 친구 집에서 놀다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고 늦게 귀가한다거나, 차나 집의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해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근무하는 은행에서도 범죄는 비즈니스 운영의 위험 요소가 아니다.

 한국의 경찰은 대부분 총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시민도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미의 몇몇 국가를 여행할 때, 경찰 옆을 지나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길을 건넜던 적이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필자나 외국인 친구의 경우 일상생활이나 여행 중 안전에 위협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외국인이라서 관심을 받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호감의 표현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치안과 경제 상황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치안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의미 있는 투자가 있을 수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경제적 빈곤을 초래하게 된다. 소말리아·북수단·남수단의 경우가 그렇다.

 반대 논리도 성립한다. 치안이 확립된 국가에서도 경기가 나빠지면 범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범죄와 경제의 관련성에 대해 범죄학자와 사회학자·경찰 간의 오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경기 침체가 더 높은 범죄율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데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게 되면서 일부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실업 상태가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범죄의 유혹에 더 오랫동안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치안을 확립하고 부정부패와 뇌물을 근절시킨 국가가 경제성장을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 매우 안전한 국가이자, 튼튼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는 싱가포르가 좋은 예다. 한 국가가 치안을 확보하면 그 국가에 대한 투자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치안은 견조한 경제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요인이다. 한국은 치안만큼은 확실히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는 오명을 가진 남미는 높은 범죄율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불충분한 경제적인 기회가 더 많은 범죄를 야기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한다. 미주개발은행은 남미의 범죄율이 세계 평균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남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5%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미가 위험한 국가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은 아니지만(필자는 여러분께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남미 여행을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대부분의 대도시처럼 주의해야 한다. 만약 남미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면 안전사고나 절도와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남미에 간다고 하면, 한국인 친구는 CNN에서 본 뉴스를 떠올리며 남미는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해 준다. 멕시코에 도착해 친구들에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그들 또한 CNN에서 본 뉴스를 생각하며 북한의 위협 때문에 한국이 위험하다고 한다.

 2주일 전, 지갑을 잃어버려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로 지갑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아내는 경찰관이 길에서 지갑을 주워 집으로 가져왔다고 했다. 전 세계 국가 중 길거리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더군다나 지갑에는 25만원의 현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근에 경찰을 둘러싼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필자는 한국의 경찰이 매우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 제복을 잘 갖춰 입고, 꼭 필요한 곳에 있으며, 전문성을 갖추고, 정중하며 그리고 필자의 경험으로 판단할 때 정직하다. 이는 필자가 경험한 한국 사회와도 일맥상통한다.

 오래전에는 경찰이 벌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이런 관행을 뿌리뽑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적 같은 경제 성장과 함께 이런 관행도 없어졌다. 한국인은 스스로의 ‘정직함’을 매우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한국의 부모가 자녀에게 ‘정직함’을 잘 가르쳐 온 것이다.

매튜 디킨 한국 HSBC 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