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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기술에 예술·문화 더하니 젊은이들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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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올해 네 번째 테크플러스 포럼을 개최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김용근 원장은 ‘테크놀로지는 아트다’는 모토 아래 기술과 감성의 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미국 듀크대의 석좌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는 아메리칸사이언티스트 2010년 가을호에 ‘서울에서의 혁신이 무르익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 아메리칸사이언티스트는 1913년부터 발행되는 격월간 과학기술 잡지로 과학 및 공학 에세이, 도서 리뷰 등을 게재한다. 페트로스키 교수는 2009년 테크플러스 포럼에 기조연사로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고화질 영상과 실제 탭댄스 공연이 어우러진 개막 행사에서부터 기술과 문화의 융합을 추구하는 이 행사의 독특한 성격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테크플러스 포럼은 ‘세상을 바꾸는 생각들(Ideas Changing the World)’을 슬로건으로 기술(Technology)·경제(Economy)·문화(Culture)·인간(Human)의 융합을 추구하는 지식나눔 축제다.

올해 네 번째 테크플러스 포럼을 개최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김용근(56) 원장은 “딱딱한 기술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더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것이 젊은 층의 호응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행사는 11월 7일부터 이틀간 서울 잠실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다.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지난해 행사에는 이틀간 7400여 명이 참여하며 성황을 이뤘다. 김 원장은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불러달라는 해외 강연자도 늘어나 처음 시작할 때보다 준비 과정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테크플러스 포럼은 ‘한국형 TED’로 불린다. 차이는 뭔가.

 “강연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20분이고, 기술과 감성이 융합된 새로운 지식을 전달한다는 점은 같다. 솔직히 테크플러스 포럼이 TED 강연을 많이 벤치마크했다. 하지만 TED는 강연뿐 아니라 지식인들의 사교모임 성격도 강하다. 그래서 6000달러의 비싼 참가비에도 많은 사람이 몰린다. 테크플러스 포럼은 참여자들의 교류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교육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포럼을 들은 김윤주(한동대 2학년)씨는 “과학이 미술과, 음악과 이렇게 융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과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다”며 “문과와 이과의 연계전공을 찾아보는 중”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이달 25일 서울 대학로에 기술인문융합창작소를 연다. 엔지니어들이 자신이 맡은 분야의 공학 기술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문지식과 다른 분야의 기술을 접해 창조적 혁신기술을 개발하도록 돕는 ‘한국형 MIT 미디어랩’인 셈이다. 일부러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에 만들었다. 경영자·연구원·대학생들이 모여 국내외의 융합 사례를 연구하고 자유롭게 지식을 공유하다 보면 앞으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소리·냄새·촉각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하이테크에 접목하는 ‘오감연구소’도 만들 예정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방법이 있나.

 “다음 달 24일 부산에서 ‘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에 꼽힌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 등이 참가하는 부산테크플러스를 연다. 활기찬 분위기에 감명받아 ‘꼭 다시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강연자들과 그동안 축적된 고급 강의 동영상을 활용하면 대전·광주 등 전국에서 테크플러스 행사를 열 수 있다. JTBC와 협력해 알짜 강의를 방송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강연 준비는 어떻게 하나.

 “장관이나 유명 교수도 넓은 무대에 세우면 처음에는 여섯 발자국도 못 움직이더라. 제스처도 작고 영상·음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가만히 서서 마이크에 대고 얘기하는 기존 방식대로 하면 망한다. 강연자마다 전담 코치를 붙여 한 달 동안 준비한다. 소통과 재미, 그리고 상상력을 강조한다. 강연료로 100만원밖에 안 주는데 ‘한번 대한민국의 명품 강연으로 남겨보자’는 의욕이 대단하다. 지난해에 첫 강연을 들은 한 지인은 ‘내가 아니라 아들이 봐야겠다’고 하더라. 처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왔던 공대생들이 ‘볼 만하다’고 트위터를 날려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순천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김 원장은 1980년 행시 23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과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을 거쳐 2009년부터 산업기술진흥원장을 맡고 있다.

 -공직 출신인데 테크플러스 포럼을 시작한 계기는.

 “85년부터 산업기술 정책을 담당하면서 기술에 인문학을 더해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반도체·LCD 기술을 극한으로 발전시켜도 가격경쟁은 늘 치열하다. 거기에 애플처럼 디자인과 스토리를 입히면 부르는 게 값이다. 진흥원에 와서 이런 얘기를 꺼내니 다들 반색을 했다. 엔지니어들도 디자이너들과 힘을 합쳐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는 얘기다. 앞으로 1인당 국민소득(GDP) 4만 달러 시대를 열려면 20대, 30대 젊은 층에게 테크플러스 포럼 같은 마당을 자꾸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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