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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미술계에도 음악·연극계에도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설적 인물 밥 포시(Bob Fossi)
도 그 중 하나다. 한국 근대화단 최대의 스타였던 화가 이인성이나 동양화가로 시작해 문자추상이라는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고암 이응노도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11월 넷째주, 이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공연이 한꺼번에 열리고 있다. 왜 그들이 천재라고 일컬어지는지 직접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

▶ All That Jazz

1972년 한 해에 토니상·아카데미상·에미상을 휩쓰는 대기록을 세운 브로드웨이의 전설, 밥 포시(Bob Fosse·1927~87)
의 춤과 노래가 소개된다.

이 작품은 밥 포시가 발표한 뮤지컬과 영화 등에 나오는 노래와 춤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동시에 그의 일대기를 재구성해 보여준다.

밥 포시는 구부정한 등, 비뚤어진 골반, 벗겨진 머리 등 무용수가 되기에는 무리인 신체조건을 가졌다. 그럼에도 오히려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살린 독특한 춤을 만들어 뮤지컬·영화·방송 등 다양한 장르에서 35년동안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브로드웨이에서는 그가 만든 뮤지컬 '시카고' '피핀' 등이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그의 작품을 집대성한 뮤지컬 '포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올 댓 재즈'는 포시 역할로 보이는 한 늙은 댄서와 딸 사이의 갈등과 화해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노래와 춤이다.

영화 '올 댓 재즈'에 나오는 '우리와 함께 떠나요(Take off with us)
'는 지나치게 관능적이라 퇴폐적이기까지 하다. '부자의 프루그(Rich Man' s Frug, 프루그는 춤의 한 종류)
는 부르주아의 거만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이 외에도 '스위트 채러티(Sweet Chatiry)
' 등 열 다섯 곡의 레퍼토리를 통해 코믹하면서도 감성 넘치는 포시의 음악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와 함께 떠나요' 중에 삽입된 전라신 때문에 '연소자 관람불가' 작품이다.

전 KBS 예술단 감독 한익평을 비롯, 설도윤·이상호 등 여덟명에 달하는 안무가들이 공동안무를 맡았고 윤복희·주원성·양소민 등이 출연한다.

♣ 11월22일(수)
~12월6일(수)
평일 8시, 토·일 오후 3시·7시 /
LG아트센터 / R4만·S3만5천·A2만5천·B2만 / 문의 02-501-7888

▶나비의 꿈 - 나는 꿈에 장주가 되었다

연극원 원장 김광림 작, 비디오아트 백남준, 음악감독 황병기, 기술감독 김민기, 작편곡 어어부 프로젝트, 출연 이혜영·신구 등.

내용은 장자의 '나비의 꿈(호접지몽)
' 이야기. "나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나는 나, 나비는 나비인데,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인가."

스태프와 출연진, 내용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경기고교 출신 연극인들의 모임 '화동연우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올리는 '나비의 꿈 - 나는 꿈에 장주가 되었다'. 장자의 삶과 그의 사상을 '풍류극'이라는 새로운 틀에 담고 있다.

1968년 뉴욕 공연과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위성쇼에서 공동작업을 한 적이 있는 백남준과 황병기가 다시 만났다. 비디오 아트와 가야금 선율을 조화시켜서 장자의 깊은 생각을 시각-청각 이미지로 풀어낸다. 여기에 전체적인 화면과 무대의 기술감독은 극단 학전 대표 김민기의 몫으로 주어졌다. 모두 경기고 동문들.

극은 춘추전국시대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자유를 꿈꾸며 속박과 굴레를 벗어나고자 했던 장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의 얘기를 통해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모색해본다.

공연계 예술계의 쟁쟁한 중견들의 대규모 출연도 주목받는 부분. 주인공 장주(장자의 이름)
역의 신구, 절세 미인 '꿈'역의 이혜영을 비롯, 임진택·최용민·이근희·유태웅등 50여명이 출연한다.

♣ 11월21일(화)
~11월25일(토)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7시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 V7만·R5만·S4만·A4만·B2만 / 문의 02-515-6221

▶42년만에 다시 보는 이응노 도불전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객처럼 살며 작품활동을 하다가 현지에서 숨진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 동양화로 시작한 그의 작품은 문자추상이라는 독특한 경지로 이어졌지만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출국, 돌아오지 못하고 파리에서 눈을 감은 비운의 화가. 그의 예술세계를 추모하는 이응노 추모전이 열린다.

부인 박인경씨가 3년여에 걸쳐 건립한 고암추모공간, '고암미술관'의 개관기념전시다. 지난 58년 프랑스 출국 직전에 열었던 기념전에 전시된 작품 61점을 1·2부로 나눠 번갈아 선보인다.

반추상작품 '해저', 자유분방한 붓놀림으로 화면 전체를 채운 '생맥' 등 당시 화단에 놀라운 파격을 가져온 작품들을 모두 다시 볼 수 있다. 놀랍게도 42년 전의 작품이 손상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에 대해 부인 박인경 씨는 "고암은 '군인에게 총이 있어야 하듯 화가는 작품이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파리에서 작품세계가 바뀌어도 이전 작품들을 애지중지 여겨 하나도 처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동양화가. 전통산수에 매달려있는 국내 동양화단에서 탈출하기 위해 파리행을 택한 최초의 동양화가. 서예의 조형요소를 현대화한 문자추상을 개척한 화가. 그의 작품을 42년만에 만날 수 있다.

♣ 12월29일까지 / 고암 미술관 / 문의 02-3217-5672

▶근대화단의 귀재 이인성-작고 50주기 회고전'

한국 근대화단의 잊혀진 천재 이인성. 탁월한 감각, 자신감있는 화풍, 타고난 기량 등으로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우다가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천재화가 이인성을 회고하는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72년 서울화랑 전시 이후 28년만에 열리는 이인성 회고전은 현존하는 유작과 유품, 자료를 한데 모은 사후 최대 규모의 전시다. 수채화·유화 80여점과 드로잉·삽화·수묵화 15점 등 모두 95점이 선보인다.

대표작 '경주의 산곡에서', '가을 어느 날', '복숭아', '해당화' 등을 보면 그가 왜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우는지를 한번에 알 수 있다. 전시작품 중 수채화 '아네모네', '복숭아 나무', '미인춘몽' 등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동양화에도 일가견이 있던 이인성의 수묵화와 사군자도 만날 수 있으며 직접 찍은 사진들, 신문기사 스크랩, 관전수상 기념엽서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도 많다. 물론 손때묻은 파레트와 나이프 등 화구와 유품도 관객을 기다린다.

이인성은 조선미전에서 6회 연속 특선을 받은 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 작가다. 37년에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최연소 초대작가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당시 이인성은 '조선최고의 화가', '화단의 귀재'로 명명됐다. 이번 전시는 흩어져있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잊혀진 천재화가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하고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확고히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 2001년 1월25일까지 / 호암갤러리 / 문의 02-771-2381

Joins 지영은 기자 <young0622@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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