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벗기기 기술에 감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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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NYU와 함께 미국의 3대 영화학교로 꼽히는 남가주대(USC) 의 영화비평학과 대학원에는 현재 모두 8명의 한국유학생들이 석.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전체학생의 10%, 외국유학생의 50%가 넘는 수치다.

학과장인 데이비드 제임스 교수는 한국인들이 "영화에 열광적인 사람들" 이라는 말로 한국유학생의 급증을 설명했다.

한국영화에 특히 관심이 많은 제임스 교수는 내년 2월 학과주최로 '한국영화와 근대화' 심포지엄을 기획,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아름다운 시절' '박하사탕' 등 13편을 상영하고 학문적인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UCLA에서도 지난해 한국영화제를 개최했고, 사상 처음으로 '거짓말' (8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2월 22일) '춘향뎐' (내년 1월 15일) 이 미국 극장개봉을 앞두고 있는 등 어느 때보다도 한국영화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영향력있는 문화잡지인 'LA위클리' 에 실린 부산영화제 기사는 한국영화의 잠재력이 최근 상업성에 밀려 퇴색하고 있다고 지적해 뜨끔하게 만든다.

이 기사는 "2~3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한국영화가 홍콩, 중국 5세대 영화에 이어 '새로운 거물' 로 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같은 장래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퇴폐성으로 변했을까" 라고 물은 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와 유사한 '블록버스터 콤플렉스' 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은 '공동경비구역 JSA' 가 온통 영화제의 화제였고, 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영화들도 대부분 벗기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지난해의 '거짓말' 에 이어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 부문은 가슴노출과 출렁이는 엉덩이의 뒤범벅이었다. 나는 감독들이 성기나 음모 한자락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스크린을 알몸으로 채우는 교묘한 방법들을 찾아낸 데 대해 감탄했다. '미인' 은 아시아의 가장 섹시한 몸을 5분마다 벗기는 단조로운 영화였다" 고 지적한 존 파워스 기자는 '춘향뎐' 과 '오! 수정' 만이 싸구려로 빠지지 않으면서 에로틱한 주제를 다루었다고 평가했다.

재능있는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은 이러한 싸구려 에로티시즘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돋보이지만 "진리는 상대적" 이라는 '라쇼몽' 적인 주제에 끌려 새로움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세계영화사 책들을 보면 일본.중국.홍콩.대만영화는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영화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는 실정이다.

유수대학의 영화학과에 한국유학생은 많지만 연구.소개할 한국영화가 부족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고전영화의 복원도 시급하고, 예술성있는 영화제작을 위한 투자도 절실하다. 우리 영화에 쏠린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그냥 흘려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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