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풋볼] 한국계 토니 화이트Jr, UCLA 철벽수비

중앙일보

입력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스산히 내리는 UCLA 브루인스의 연습장인 스폴딩 필드.

100여명의 브루인스 풋볼 선수들은 가랑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UCLA 명장 밥 톨레도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연습에 한창이다.

본부 사령탑에선 필드에 설치된 카메라로 각 선수들의 모습을 일일이 촬영하며 선수들의 공격 위치, 방어 형태 그리고 태클을 점검하는 모습이 마치 실전을 방불케 했다.
철통 수비를 자랑하는 브루인스 방어진의 팀장은 바로 한국계 혼혈 토니 화이트 주니어(21·4학년).

주한미국으로 근무했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유재윤(43·뉴욕거주)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이트는 6피트1인치, 245파운드의 탄탄한 체격의 탑플레이어로 현재 아웃라인배커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 79년 플로리다 키웨스트에서 출생한 화이트는 타고난 순발력과 체력으로 중학교에서 처음 풋볼에 입문. 이후 텍사스 엘 파소 버쥐 고등학교로 진학, 풋볼 코치 빌 버크헤드의 눈에 띄면서 본격적인 풋볼 훈련을 받았다.

이당시 그는 공격과 수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플레이어로 우뚝섰다.
특히 고3때는 162번의 공격기회에서 22차례 터치다운 등 총1,024야드를 전진, 텍사스주에서 러싱 5위에 올랐다.

또 64개의 단독 태클을 포함해 118개의 태클을 성공시켰으며 2개의 인터셉트와 5개의 펌블을 유도하는등 그의 철벽 수비는 텍사스에서 단연 1위.

그의 운동 신경은 탁월했다. 농구와 투포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고2때는 평균 득점 14.3·리바운드 7.1으로 텍사스주대표로 발탁됐고, 그의 투포환 실력은 텍사스 랭킹 2위였다.

그러나 가정생활은 그의 화려한 플레이와는 달리 순탄치 못했다.
한참 예민한 나이인 13세부터 그는 혼자사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 군인인 아버지가 걸프전 참전을 위해 텍사스에서 훈련받던중 만난 새 여자를 집으로 들여오면서 사춘기를 겪었다.

화이트는 충격을 받았고 친구집을 전전하면서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그를 바로 세웠다.

당시 뉴욕에서 야채도매상을 운영하던 유씨는 화이트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면서 잦은 전화 등으로 변치않는 애정어린 관심으로 그의 정신적 지주가 됐던 것.

힘들며 이곳서 같이 살자는 유씨의 말에 그는 ‘어머니가 계시는 뉴욕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팀전략에 자질을 빚고 그간 쌓은 공든탑도 한꺼번에 무너질 것’ 같아 텍사스에 그냥 남기로 결심했다.

“어머니께 약속했죠... 반드시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 할 것이라고...”

화이트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여기선 포기할 수 없다. 힘을 내자(Hit the rock)’를 외치며 용기를 잃지 않았고 결국 UCLA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

UCLA 입학후 그의 기량은 일취월장했다.
지난해의 경우 워싱턴 대학과의 경기중 무릎 부상으로 고전했으나 일주일 후 열린 USC와의 최대 라이벌전에서 7개의 결정적인 태클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총 53개의 태클로 팀랭킹 4위에 올라섰고 애리조나, 프레즈노 스테이트, 오리건 스테이트를 차례로 침몰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2학년때인 99년 1월, 처음으로 로즈보울에도 출전해 위스컨신을 맞아 8개의 결정적인 태클을 잡아냈으나 아깝게 팀패배로 빛이 바래기도 했다.

올 여름 캠프에서는 NO.1 방어진으로 뽑힌 그는 현재 선수들이 체력을 연마하는 웨이트 트레이닝 룸 리더도 맡고 있다.
톨레도 감독은 “화이트는 브루인스의 가장 확실한 방어벽이다”며 “뛰어난 리드십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고 그를 평가했다.

화이트의 장래 계획은 구체적이고 확실했다. 화이트는“졸업 후 프로풋볼리그(NFL)에 도전하고 싶다. 그러나 여의치 않을 땐 전공(역사학)을 살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동시에 고등학교 풋볼 코치로 경력을 쌓은 다음 모교 풋볼 코치에 도전하겠다”고 야무지게 대답했다.

자신을 미국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화이트는 연습 후 출출한 속을 라면과 김치찌개로 즐긴다고 한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느냐의 질문에 “알아 듣지만 말은 서투르다”며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이빨 닦어”는 정확하게 발음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