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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영어에 목 맨 이 땅의 젊음들 … 호주 농장서 인질 되어도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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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3월입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헤집고 푸릇푸릇 새싹이 돋을 겁니다. 생명과 부활의 시기입니다. 굳이 인생에 비유하면 청춘쯤에 해당할까요. ‘88만원 세대’의 힘겨움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단한 현실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겠죠.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3월의 주제는 ‘열려라, 청춘의 문’입니다. 젊음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한국 소설을 골랐습니다. 우리의 오늘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의 토익만점 수기
심재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98쪽, 1만 2000원

이게 다 토익 때문이다. 취업과 직결된 이 영어 시험 때문에 한 해 4만 명의 젊은이들이 배낭만 들쳐 메고 호주로 떠난다. 호주는 조기 영어교육을 못 받은 돈 없는 20대들에게 기회의 땅이다. 일하면서 어학 연수를 할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 발급이 쉽고, 일자리가 많다.

 다른 영어권 국가보다 물가가 싼 것도 이점이다. 기자도 그런 연유로 2006년에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호주에 간다고 영어 박사가 되진 않는다. 복병이 있다. 어느 도시에 가건 한국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재천(35)의 첫 장편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읽다가 요즘 말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대박!” 토익 990점 만점에 590점을 받고 호주로 떠난 주인공은 그야말로 영어 몰입 교육이 가능한 최상의 환경을 찾는다. 한국인이 없는 농장에 살고 있고, 농장 주인은 언제든 회화 상대가 돼주는 친절한 네이티브 스피커다.

 게다가 이게 웬걸, 옆집에는 토익 리스닝을 녹음하는 성우가 살고 있다. 그 집 지하에 쌓여있는 기출문제는 덤이다. 그러니 주인이 불법으로 마리화나를 키우든, 경찰 단속에 대비해 인질이 되어줘야 하든 어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 농장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게다. 재수가 없어서 경찰이 쏜 총에 한 쪽 눈을 잃더라도 어쨌든 토익 시험을 봐야 취업을 할 수 있다.

 토익 때문에 골머리를 썩지 않았던 세대들은 주인공의 행동이 무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20대에게 토익과 취업에 대한 부담감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주인공 그만큼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이 소설이 코믹한 부조리극이라면, 20대를 겪고 있는 청춘들에겐 나의 이야기이자 위로의 메시지다. “영어에 목맨 이 이해 불가한 세상에서 당신만 외롭고 힘든 것은 아니다”라고.

 저자는 2002년 호주 연수를 다녀온 것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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