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술 한잔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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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 “오늘 술 한잔 하자”고 하면 두 잔, 석 잔은 아니고 정말 딱 한 잔만 마시자는 것일까. 이때의 ‘한잔’은 ‘간단하게 한 차례 마시는 술’을 의미한다. ‘간단히’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므로 어떤 사람에게는 한잔 하는 것이 수십 잔의 술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때는 ‘한 잔’이라고 띄어 쓰지 않고 붙여서 쓴다.

 ‘한번’ 역시 의미에 따라서 띄어쓰기가 달라진다. “어디 한번 먹어 볼까”에서는 ‘하나’라는 의미보다는 ‘시험 삼아’의 뜻이다. ‘언제 등산이나 한번 갑시다”에서는 ‘기회 있는 어떤 때’의 의미이며, “한번은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일도 있었다”에서는 ‘지난 어느 때나 기회’의 뜻이고, “배짱 한번 좋구나”에서는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강조한다.

 헷갈린다면 해당 자리에 ‘두 번’ ‘세 번’등을 넣어 말이 통하는지 살펴보자. ‘어디 두 번 먹어볼까’ ‘언제 등산이나 두 번 갑시다’ ‘배짱 세 번 좋구나’는 어색하므로 이때는 ‘한 번’이 아니라 ‘한번’으로 써야 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이 약을 딱 한 번 먹었는데 두통이 멎었다”는 “이 약을 딱 두 번 먹었는데 두통이 멎었다’도 가능하므로 ‘한번’이 아니라 ‘한 번’이 맞다.

 ‘한걸음’도 비슷하다. “친구가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한걸음에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에서는 ‘하나’ ‘둘’의 의미가 아니라 쉬지 않고 내쳐 달렸다는 뜻이므로 붙여 쓴다. 반면 “지친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에서처럼 걸음의 단위를 나타낼 때는 띄어 써야 한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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