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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은 흡혈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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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포털(portal)은 관문이다. 이 출입구가 사이버 스페이스를 지배한다. 가상공간은 이제 제국과 식민지라는 두 체제로 재편됐다. 포털이 제국이 됐다. 처음에는 단지 통과하는 문인 줄 알았다. 문을 넘어가야 콘텐트의 창고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지금은 관문이 곧 콘텐트다. 이 문에 콘텐트를 공급하는 언론사와 정보제공업체들 모두 식민지가 됐다. 식민지 백성은 제국의 호령에 숨죽인다.

 대한민국의 대표 포털 네이버는 제국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주간 기준으로 네이버에 접속하는 순 방문자는 2500만 명. 이들 네티즌은 매일 또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정보를 얻고, 놀기(게임·음악 등) 위해 네이버의 문을 두드린다.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노인과 컴퓨터를 접할 수 없는 어린이들을 빼면 전 국민이 이 포털에 묶여 사는 셈이다.

 이런 접속을 통해 네티즌들은 즐거움과 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습관적 클릭은 중독으로 변한다. 내 정보도 다 내준다. 이는 네이버의 노예가 되는 길이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예상치는 각각 2조3000억원, 7000억원대.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노예들의 클릭은 더 거대한 제국을 부르는 외침이다.

 이런 포털 제국, 권력이 된 지 오래다. 그림자는 곳곳을 뒤덮고 있다. 네이버 홈페이지에는 뉴스캐스트라는 코너가 있다. 주요 언론사의 뉴스가 모이는 곳이다. 여기서는 검열이 일상화돼 있다. 언론사는 기사를 게이트키핑한다. 공익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기사를 걸러낸다. 1차, 2차, 3차 검증을 통과하는 기사만 살아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면에 인쇄된 기사도 뉴스캐스트에서는 검열 대상이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기사는 삭제된다. 포털도 똑같이 공익이란 화두를 앞세운다. 기사를 생산하는 쪽의 공익과 콘텐트를 실어주는 쪽의 공익이 충돌한 꼴이다. 이 충돌의 승자는 늘 포털이다. 땀을 들인 기사를 포털에 헌납한 대가는 미미하다.

 이쯤 되면 “포털에서 뛰쳐나와”라는 훈수가 나올 차례다. 다 알지만 그거 힘들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어서다. 포털에 갇힌 언론은 탈출하고 싶지만 홀로 서기 위한 근육(트래픽)을 키우지 못했다. 더구나 포털에서 탈출하면 경쟁자들이 그 트래픽마저 가져간다. 이런 굴욕의 씨앗은 언론이 스스로 뿌린 거다. 그래서 반성한다.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그렇다고 포털이 더 강한 권력으로 가는 건 곤란하다. 포털이 시장을 장악하고, 정보를 지배한다면 ‘빅 브러더’와 다를 바 없어진다.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HDNet의 마크 쿠반 회장은 이런 현실을 빗대어 “포털은 흡혈귀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저항,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지만 거듭된다면 바위에 금이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