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 소심한 베팅? … 그래도 난 EL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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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박모(54)씨는 지난해 9월 거래 증권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국투자증권 서초중앙지점 이모 차장이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기초자산인 주가연계증권(ELS)을 사모로 만듭니다. 타이밍이 좋아 보입니다.” 주식시장이 ‘8월 쇼크’로 푹 꺼져 있던 때였다. 시장의 바닥이 멀지않았고 반등도 기대된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선뜻 1억원을 넣었다. 다음 날 ELS가 설정됐다. 그때 삼성전자 주가가 75만8000원, 현대차는 19만70000원. 두 종목 중 하나라도 7% 이상 오르면 조기 상환되는 조건이었다.

 설정 후 보름도 안 돼 삼성전자가 10% 올랐다. 현대차도 7% 상승했다. 조기상환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세금을 빼고 1억422만원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3주 만에 422만원의 수익을 손에 쥔 것이다. 연 수익률로 환산하면 60%가 넘는다.

 박씨는 ELS ‘매니어’다. 금융투자자산 5억원을 대부분 ELS로 굴린다. 몇 년간 현대모비스 등 시가총액 상위 우량주가 기초자산인 종목형 ELS에 주로 투자했다. 평균 투자수익률은 연 18%이고, 한 번도 손실을 본 적이 없다. 주변 친구들이 ‘해외펀드에 물렸다’고 한탄할 때 박씨는 속으로 웃는다. 한투증권 이 차장은 박씨에 대해 “우량종목 ELS 위주로 투자하는 안목을 가졌고, 운도 따랐다”고 말했다.

 올해도 ELS가 화두다. 유럽 재정위기가 여전하고, 글로벌 실물경제는 시계 제로다. 코스피 지수는 1800~2200의 박스권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투자자들의 눈높이도 낮아졌다. ELS는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 주가가 일정 선 이상으로 폭락하지 않으면 은행 금리보다는 나은 수익을 내도록 설계됐다. 소심한 듯 실속 있게 ‘베팅’하는 투자상품인 셈이다. ELS와 구조가 비슷한 파생결합증권(DLS)도 인기다. 지난해 ELS가 35조원, DLS는 13조원 발행됐다. 각각 전년대비 40%, 73%나 늘어났다. 이런 인기몰이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하나은행이 자사 프라이빗 뱅커(PB) 200명을 대상으로 ‘2012년 유망 투자자산’을 묻자 응답자의 29%가 ELS와 DLS를 꼽았다. ‘주가가 박스권에서 계속 헛바퀴를 돌려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외환은행 신탁연금부는 2008년 8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340회, 1조원이 넘는 ELS를 발행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원금 손실을 낸 적이 없다. 대기록의 비결은 뜻밖에 단순하다. 손실 가능성이 낮은, 안정적인 상품만 만들어 팔았다. 외환은행의 ELS는 대부분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했다. 더 높은 수익을 낼 줄 몰라 그랬던 게 아니다. 은행 거래 고객의 안정 추구 성향에 맞췄다. 이 은행 이민석 차장은 “개별 종목 ELS는 기대 수익률 대비,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과도하다”고 지수형을 고집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ELS는 분명 위험이 따르는 상품이지만,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매우 안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ELS의 위험성이 노출된 사례도 많다. 지난해 8월은 ELS의 무덤이었다. 2100을 웃돌던 코스피 지수가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의 불똥으로 단숨에 1700으로 내려앉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원금을 까먹을 수 있는, 일명 ‘녹인 배리어’ 구간에 들어간 ELS가 속출했다. 하이닉스·LG전자·삼성전기·LG디스플레이·현대증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였다. 이때 투자자 중 일부는 원금의 60%만 건지고 상품을 중도 해지했다. 그중 한 명이던 한모(36)씨는 “이런 상품인 줄 몰랐다. 꼼꼼히 살피지 못했던 나의 불찰이었다”고 말했다. ELS에 투자하려면 앞서 본인의 투자 성향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LS(Equity-Linked Securities·주가연계증권)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일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주가지수 등락구간별로 수익률이 달라지는 것 등 유형이 다양하다. 자산 대부분을 채권에 투자하고, 일부를 주가지수 옵션 등 파생상품에 투자해 추가 수익을 낸다. 기초자산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종목형·지수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소한 원금은 보장하는지 여부에 따라 보장형과 비보장형,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에 따라 만기 또는 조기상환 시 일시 지급형과 월 지급형 등으로 나눈다.

DLS(Derivatives-Linked Securities·파생결합증권)

ELS와 마찬가지로 자산 가격에 연계돼 수익이 결정된다. 다만 대상이 되는 자산이 금과 같은 원자재, 금리, 신용, 통화 등으로 다양하다. 최근 발행되는 상품 중 신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것은 만기가 수개월로 짧은 게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통화나 원자재가 기초자산이면 상대적으로 만기가 길다. 발행자는 원자재 가격 선물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를 발행하고, 관련 파생상품 및 기초자산, 실물 등을 다양하게 보유해 수익 지급 위험을 헤지한다. 넓은 뜻으로는 ELS와 DLS를 통칭해 DLS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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