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기업 내부거래 관행 더 개선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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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은 웬만하면 그룹 내에서 다 해결하려 든다. 현대차의 경우 부품은 현대모비스, 철강은 현대제철에서 납품 받는다. 또 광고는 이노션, 자동차 운송 등 물류는 글로비스, 정보시스템(SI)은 오토에버시스템즈, 건설은 현대엠코 등에 맡긴다. 현대차뿐 아니라 다른 그룹도 대동소이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43개 기업집단의 경우 그룹 내부에서 거래되는 내부거래 비중이 매출액의 12%나 된다. 내부거래 자체가 나쁜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세계 초일류의 경쟁력을 갖게 된 데는 내부거래 덕분이 컸다. 부품의 질을 높이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내부거래만 한 게 없다. 독일과 일본의 제조업이 강한 것도 따지고 보면 수직계열화와 그에 따른 내부거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문제다. 내부거래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광고·SI·건설·물류 등은 수직계열화와 이로 인한 효율성 제고라는 순기능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 수의계약을 통한 내부거래다. 외부의 독립기업들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참여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니 그룹의 횡포라는 비난을 듣는 것이다. 가령 신차 출시 전략 등 타사에 노출돼선 안 되는 기업 비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기밀을 제외한 나머지를 경쟁입찰에 부치면 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조달(아웃소싱)받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데도 내부거래에 의존하는 건 시장경제 질서에도 어긋난다. 망해야 할 기업인데도 계열사라서 존속하고, 효율적인 기업인데도 계열사가 아니란 이유로 도태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어제 4대 그룹이 공정위와 협의해 물류·광고·SI·건설 등 4개 업종의 내부거래 문호를 외부기업에까지 열기로 한 건 잘한 일이다. 효율성과는 큰 관련이 없는데도 내부거래에만 의존한 게 잘못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또 외부기업에 입찰 참여의 기회는 주되 의무적으로 물량을 배정하지 않기로 한 것도 잘한 일이다. 개방의 효과가 입증돼 다른 그룹과 업종에도 확산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