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승진 갈수록 어려워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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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임원직급 단계를 축소하고 중견간부들의 승진 연한을 늘려 임원승진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등 기업체 승진판도가 변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투명경영을 내세워 사외이사를 대폭 늘려 등기임원이 되는 길은 더욱 좁아졌다.

LG.두산.제일제당 등 대기업이 올들어 임원 직급을 상무-(전무)-부사장-사장등 3~4단계로 줄여 얼핏 임원승진단계가 단출해 보이지만 '기업체의 별' 인 임원으로 오르는 능선은 더욱 가팔라 지는 추세다.

삼성 등 대부분의 대기업 직원들은 입사 8년차 안팎에서 과장에 승진한 후 18년이 지나야 부장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승진 연한을 연장해 '50대 부장시대' 가 성큼 다가왔다.

어렵사리 임원으로 승진해도 매년 업적평가를 토대로 연봉과 직책을 받기 때문에 임원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어 임원승진이 더 이상 출세의 보증수표로 통하지 않는다.

또 '이사' 란 직급은 점차 회사 최고의사 결정기구인 이사회 멤버에게만 주어질 것으로 보여 상무.전무.부사장은 집행임원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경제연구원 양병무 부원장은 "임원들도 직위보다는 어떤 일을 하고 얼마의 성과를 내느냐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됐다" 며 "최고경영자가 아닌 이상 임원간의 연공서열도 점차 없어 질 것" 이라고 전망했다.

◇ 더 멀어진 임원승진〓삼성의 한 계열사에서 올해 과장으로 승진한 K(35)씨는 "몇차례 발탁승진을 하지 않는 이상 40대 임원은 이미 물건너 간 셈" 이라고 말했다.

차장승진까지 9년을 기다려야 하고 차장에서 임원승진을 바라볼 수 있는 수석부장까지 또 9년이 걸린다. 그것도 제때 승진 단계를 밟아야 가능한 일이다.

LG전자는 사외이사를 3명에서 5명으로 늘린데다 임원 수를 단계적으로 줄일 방침이다.

지난해 임원 수를 30% 줄인 한화는 사업규모가 커져도 임원은 현 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다.

◇ 중견간부가 넘친다〓임원승진 자격을 까다롭게 하고 간부의 승진연한을 늘리면서 중견간부들이 양산되고 있다.

한 중견그룹의 차장은 " '보이는 게 과장이고, 널린 게 차장' 이라는 얘기가 나올정도" 라며 "차장으로 승진해도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팀장자리를 꿰차기가 어려워 대부분 실무책임자로 남는다" 고 말했다.

특히 최근들어 갓 입사한 사원을 포함해 5년차 미만의 인력들이 벤처 쪽으로 이직하는 바람에 중견간부들조차 단순업무를 처리하는 실정이다.

SK㈜는 연초 차장제도를 없애면서 차장들이 앉은 자리에서 일제히 부장으로 올랐지만 대부분 하는 일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발탁승진 임원의 고뇌〓제일제당 김종현 상무는 지난해 말 자금부장에서 상무로 발탁돼 회사로부터 차량유지비 등 열가지 정도의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金상무의 속내는 그리 편치 않다. 회사 경영정보를 총괄하는 DNS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그는 다섯달이 지나면 자신의 업적에 따라 새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金상무는 "연말에 엄정하게 평가된 '성적표' 를 받아야 하는 심적 부담이 크다" 며 "의욕만큼 성과가 나타날지 걱정돼 이달말 휴가기간에 하반기 목표관리를 다시 정리해 볼 생각" 이라고 말했다.

㈜두산 주류부문 관리담당 성재철 상무는 올초 회사에 영업이익 목표액을 제시하고 연봉 계약을 했다.

成상무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시황이나 경영환경 변화 등을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지 못하게 됐다" 고 말한다.

그는 "하루.일주일.한달 단위로 끊어 목표를 점검하다 보면 막히는 일이 한두가지 아니다" 며 "하루의 목표가 뒤틀리면 회사문을 나서기가 찜찜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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