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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번째 편지〈우울한 패러디 타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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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외모가 사람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듯이 이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 때 내 옆자리의 친구녀석 이름은〈임신중〉이었습니다. 당시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검은 교복을 입고 다닐 때인데 왼쪽 가슴에 직사각형의 흰 이름표를 박음질해서 달고 다녔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런 대로 괜찮지만 버스를 타게 되면 여학생들이 피식거리거나 얼굴을 붉히곤 해서 친구녀석은 버스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습니다. 등하교 시간이 곧 지옥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거나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제 이름이 아름답고 남들이 부르기에 편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은 제 이름을 뜻대로 지을 수도 또 가질 수도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받은 이름을 가지고 평생 살아야 합니다. 숙명인 것입니다. 이름은 그 누구도 아닌 곧 자신의 고유한 기호이며 상징이기 때문에 외모와 함께 성격의 일부를 형성합니다.

나 역시 이름 때문에 혼란을 많이 겪었습니다. 조부가 지어준 대녕(大寧)이란 이 평범한 이름은 대영 혹은 대령으로 자주 불리곤 하는 것이어서 자신에 대해 곧잘 집중력을 잃곤 하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나를 모르는 어떤 사람은 수첩에 댄영이라고 적어놓고 혼혈아가 아닌지 주위에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아무튼.

우리 나라에는 일본식 여자 이름이 꽤 많습니다. 아끼꼬가 명자(明子)이듯이 아들 자(子) 자(字)를 많이 붙이는 것입니다. 요즘엔 그런 이름이 많이 없어졌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아주 흔하게 뒤에 아들 자자를 같다 붙였습니다. 역시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것입니다.

그 다음엔 맑을 숙(淑)자 입니다. 영숙이 명숙이 정숙이 혜숙이 봉숙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이 맑을 숙자로 끝납니다. 그 다음 가운데 자로 아름다울 미(美)를 많이 씁니다. 미영이, 미란이, 미경이, 미혜......기타 등등.

제 이름을 싫어해 법원에 가서 개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 년 전만 해도 민법 조항이 까다로워 이름을 바꿀려면 실로 다시 태어나는 만큼의 복잡하고 힘겨운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최근엔 법 개정을 해 비교적 수월하게 개명을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름의 중요성은 사람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술집 간판도 마찬가지고 영화, 소설 이름(제목)도 그 작품의 주제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간판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다녀봐도 우리 나라만큼 간판이 다채로운 나라는 없습니다. 가히 패러디의 천국입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가령 경남 하동 읍내에 있는 어느 정육점 이름은 〈저팔계〉이고 그 옆의 고깃집 이름은 〈이랴이랴〉입니다. 또 정읍에서 변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어느 야식집 이름은 〈월광(月光)〉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목을 따서 지은 이 야식집 이름은 참으로 걸작입니다. 그에 해당하는 여관 이름 중에 〈기러기 여인숙〉이 있고〈삼거리 다방〉도 있습니다.

또 내가 사는 동네 이발소의 이름은〈고밀도 이발관〉이고 중국집 이름은 〈짱개마을〉이고 그 옆의 술집은 〈빨간 손톱〉이고 노래방은〈붕가붕가〉이며 돼지고기집은〈돼지가 고추장에 빠진 날〉이고 조개구이집은 〈조개부인 뚜껑 열렸네〉이며 닭갈비집은 〈불타는 닭갈비〉입니다. 또 있습니다. 재즈 카페 이름은 〈재즈나 칭칭나네〉, 어느 식당 이름은 〈밥나와라 뚝딱 술나와라 뚝딱〉, 돈까스 집은〈돈까스군 샐러드양〉이란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그 뛰어난 상상력(?)과 패러디 감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패더리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에로 비디오 제목들입니다. 엊그제 〈007 언리미티드〉를 영화마을이란 비디오 대여점으로 빌리러 갔다가 에로 코너를 보고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숫기가 부족해 어쩌다 한번쯤 보고 싶어도 여지껏 대여해 보지 못한 에로물들의 제목(이름)은 우리 나라가 패러디의 천국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성욕애인〉〈침대는 말한다〉〈변태보감〉〈박하 사랑〉〈미친 밤〉...이 정도는 그래도 점잖은 편에 속합니다. 따지고보면 패러디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하지만 과연 이런 제목들이 있는 것입니다.

〈포르노 닷컴〉 〈터널 향기〉 〈털 밋 섬씽〉 〈성욕 애인〉 〈빨간 백합꽃〉〈여성동무 으뜸 가리개〉 〈팔도 기생뎐〉 〈여간첩 리철순〉 〈색정 구락부〉 〈딸딸이 일병 구하기〉 〈감각의 계곡〉 〈소녀 색정〉......그만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예술 혹은 외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갓난아기도 쳐다보는 텔레비전에서 여성 출연자의 노출 가슴을 그대로 보여주고 수퍼모델 선발대회에서는 졸바지에 색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모델 지망생의 모습을 여과없이 내보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시청율을 의식해 고의적으로 편집해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정규 뉴스 시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가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언급하는 척하며 여자들의 벗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닌 말로 시청자들을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하물며 비디오 제목이 이 정도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전 국토가 어째 유흥가로 변하고 에로의 기운으로 뒤덮이는 것 같습니다. 봄이면 찾아오는 황사현상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땅엔 그런 문화를 소화하고 이겨낼 수 있는 성인 남녀만 사는 게 아닙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나 사춘기의 중교등학생들을 보면 때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보석들 말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성인 사이트를 뒤지면 성인 남자인 내가 견디기에도 확실히 숨이 찹니다. 차라리 성인들은 에로 비디오나 그깟 포르노 사이트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호기심이 충만한 청소년들이 주 고객인 것입니다. 성(性)이 인간한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데 시작부터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IMF 이후에 유흥(윤락)사업은 더욱 활황 산업이 되었습니다. 유흥업소 출입자 중에 금붙이를 들고 은행 앞에 줄을 서 있던 사람이 섞여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오 분만 세워놓았다 돌아와 보면 차창에 벌거벗은 여자들 사진이 박힌 카드가 몇 개씩 꽂혀 있습니다. 사람이 한갓 소비재로 전락한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는 곧 짐승의 나라로 변할 것 같습니다.

원조교제라니. 그것이 어떻게 원조(援助)입니까? 그 여중생, 여고생이 커서 나중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과연 좋은 아내나 어머니가 되겠습니까? 그런 소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온전한 한 인간으로 또 남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성장하겠습니까?

베끼기와 벗기기의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굳이 성명학의 존재 이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개는 이름들을 잘못지어 생긴 일들입니다. 생각없이 함부로 남의 이름을 슬쩍슬쩍 갖다붙여 범사회적 성격이 이렇게 형성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베끼기가 가장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도둑질 말입니다. 그 뜻도 모르는 패러디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못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걸핏하면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을 베껴 결국 시청자들한테 그 수치를 뒤집어 씌우는 한국의 방송산업 종사자들과 문화 생산자들부터 깊이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보기에 일본은 배울 게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원조교제나 윤락사업 아이디어 혹은 방송 프로그램이나 베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두고두고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많이 치른 배고픈 난민의 나라여서 그런 것입니까?

사람이든 사회든 고통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존재 의식이 깊어져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난민 의식을 버리고 고유한 제 이름들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수치심을 잃어버리면 그게 곧 난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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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및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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