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원조물자 하역항서 원조외교 허브로 … 160개국 ‘개발과 나눔’ 모델이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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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의 개발원조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제4차 세계개발원조총회’가 30일 오전 부산 벡스코에서 공식 개막했다. 개회식에는 160여 개국의 정상·각료급 정부 대표와 국제기구 대표 등 3500여 명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환영사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연설을 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라니아 알 압둘라 요르단 왕비. [연합뉴스]

30일 세계의 시선은 대한민국의 항구도시 부산에 쏠렸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개발 관련 국제회의인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개막식. 개도국의 개발 전략을 논의하는 이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 등 160여 개국 정상과 정부 대표, 국제기구 수장 등이 모였다. ‘게이츠 & 멀린다 재단’의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개발지원에 나서고 있는 민간 인사들도 참가했다.

 이날 부산은 개발원조의 ‘새 역사’를 만든 도시가 됐다. 그동안 단순 원조 중심이었던 국제사회의 원조 패러다임이 부산 총회를 통해 개도국 개발 전략과 남남(개도국-개도국) 협력 강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산은 또 세계 160개국이 ‘개발과 원조’를 고리로 펼치는 화려한 외교 무대로 떠올랐다. 사전 행사가 시작된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수많은 다자·양자 회담이 열렸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클린턴 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개발 의제와 북핵 문제, 지역 정세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김 장관은 또 앤드루 미첼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 남수단·니카라과·요르단의 개발 담당 장관,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과 각각 만났다.

 클린턴 장관도 필리핀·엘살바도르·가나·탄자니아의 수석대표들과 만나 ‘더 나은 변화’를 위한 미국의 개발정책을 설명했다. 개발을 매개로 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정책을 구현하는 장으로 십분 활용한 셈이다. 클린턴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개발원조는 이제 지엽적 문제가 아니라 외교·국방과 함께 미국 정책의 기둥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 국무장관이 개발총회에 참석한 전례가 없어 반신반의하며 초청장을 보냈는데 곧바로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부산이 6년 만에 화려한 외교무대로 재조명된 셈이다.

 특히 6·25전쟁 직후 한국이 세계 최빈국이던 시절 원조물자가 쌓여 있던 하역항에서 개도국으로 원조물자를 실어 보내는 선적항으로 바뀐 부산의 상징성은 큰 주목을 받았다. “더 많은 나라가 부산과 같은 놀라운 변화를 이루도록 돕는 것이 국제사회 원조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개발의 효과에 대해선 한국보다 더 잘 아는 나라가 없다”(클린턴 장관)는 등 주요 인사들은 앞다퉈 ‘부산의 기적’을 언급했다.

 이날 오후 부산 대연동의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6·25전쟁 당시 부산항은 유엔군이 한국에 들어오는 통로였지만, 이제는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군(PKO)을 전 세계로 내보내는 관문”이라고 말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11개국 장병 23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남남 협력’과 함께 ‘공여국-수원국 공동책임론’도 화두였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원조를 자선으로 치부하지 말고 투자로 봐야 한다”며 “원조가 효과를 거두려면 공여국과 수원국의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그는 “지난 20여 년간 연평균 5∼8%에 달하는 성장률에서 보듯 아프리카의 잠재력은 크다”고 설명했다. 르완다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원조물자 집행과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해 개발원조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우리 정부도 새마을운동 공적개발원조(ODA) 시범사업 국가로 라오스와 함께 르완다를 선정했다.

 부산 총회 참석자들은 이날 개발원조의 원칙이 담긴 ‘정치 선언문(political statement)’을 발표했다. 정치 선언문은 정부와 시민단체, 국제기구 등 개발 주체들 간의 공동 원칙으로 ▶주인의식 ▶성과 지향 ▶투명성 ▶책임성을 제시했다. 개발 중심으로 원조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대표사례인 한국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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