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 … 금감원, 체크카드 혜택 축소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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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권혁세 금감원장

대학원생 양지원(26·여)씨는 요즘 지갑 속의 체크카드를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 양씨는 3개월 동안 30만원 이상만 쓰면 영화·커피는 물론 토익 응시료까지 깎아 준다고 해서 이 카드에 가입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부가 서비스 이용조건이 ‘직전 한 달간 20만원 이상 사용’으로 대폭 강화됐다. 그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부가 서비스 조정’이라고만 설명하더라”며 “수수료를 깎아 준다고 가맹점에 생색은 내놓고 정작 비용은 카드 고객에게 뒤집어씌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카드전쟁’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1라운드가 카드사와 가맹점의 힘겨루기였다면 2라운드엔 카드사와 고객이 링에 올랐다. 가맹점의 수수료율 인하 압박에 손을 든 카드사가 소비자에게 주던 부가 서비스 혜택을 줄여 영업이익 감소를 벌충하려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엔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28일 “경영합리화 노력 없이 곧바로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주요 카드사들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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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문제가 불거진 것은 계좌에 넣어 둔 돈 범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체크카드’다. 카드사는 2.0~2.5%였던 체크카드의 가맹점 수수료율을 올 3월 중소가맹점은 1%, 일반가맹점은 1.5~1.7%로 내렸다. 카드사가 부가 서비스를 변경하려면 6개월 전에 미리 고지해야 한다. 수수료 인하 여파가 슬슬 소비자에게 미칠 때가 됐다는 뜻이다. ‘신한BC체크플러스 미래든 카드’는 내년 4월부터 포인트 적립률이 0.5%에서 0.2%로 떨어진다. ‘현대HMC CMA체크카드는 같은 달부터 전 가맹점 1% 캐시백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금융감독 당국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유럽발 금융위기가 심해지고 국내 가계부채도 늘고 있다”며 “체크카드의 부가 서비스를 갑자기 줄이는 것은 직불형 카드 사용을 늘려 ‘외상 거래’를 줄이려는 정부 방침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약 412조원, 체크카드는 약 52조원이다. 체크카드 비중이 11%로 미국(42%)·독일(93%)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체크카드 활성화 방안은 금융위원회가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인 신용카드 구조 개선대책에도 핵심 내용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금감원이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체크카드 부가 서비스 축소 움직임이 신용카드로 옮겨 갈 가능성도 크다. 카드사는 지난달 2.0~2.15%였던 중소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대형마트 수준인 1.6~1.8%까지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중소가맹점의 기준도 연매출 1억2000만원 미만에서 2억원 미만으로 문이 넓어진다. 본격 적용은 내년 초부터다. 금융 당국은 이렇게 되면 전체 가맹점(206만 개)의 72%(148만 개)가 대형마트 수준의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드회사 입장에선 체크카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부담이다. 벌써 부가 서비스 축소가 확정된 카드사도 있다. 한 대형 카드사 임원은 “수수료율이 내려가면 카드사는 현금서비스 등 대출 비중을 높이거나 고객에게 돌아가는 부가 서비스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도한 신용카드 발급·사용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체크카드와 같은 강도의 ‘권고’를 하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부가 서비스가 소비자와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급격히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는 더 비판적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카드사가 수수료율 인하의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없이 부가 서비스를 없애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하·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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