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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호텔 … 스트로스칸 낚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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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성폭행 혐의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풀려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사진)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추문 사건이 외부 정치세력에 의한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스트로스칸 측은 즉각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피해 여성은 “터무니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의혹의 발단은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에드워드 엡스타인이 스트로스칸의 성폭행 의혹 사건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보도를 하면서다. 이 기사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잡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26일 보도됐다.

 가장 미심쩍은 대목은 성폭행 신고가 그 즉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5월 14일 낮 12시6분에서 7분 사이에 스트로스칸이 묵던 2806호 VIP룸에 들어간 피해 여성 나피사투 디알로(32)는 이후 12시26분쯤 건너편에 있는 2820호에 들어갔다. 디알로는 이날 칸을 만나기 전은 물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2820호에 드나들었다. 스트로스칸은 12시28분 2806호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이후 디알로는 객실 책임자와 함께 12시42분 스트로스칸이 묵던 2806호에 들어가 호텔 경영진에게 성폭행 발생 사실을 보고했다. 호텔 측이 경찰에 성폭행 사건을 신고한 것은 오후 1시 반이 넘어서다.

 스트로스칸이 사용하던 블랙베리 스마트폰의 해킹 의혹도 제기됐다. 스트로스칸은 이날 오후 공항행 택시 속에서 블랙베리를 분실한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블랙베리는 12시51분 마지막 신호를 끝으로 꺼진 상태였다. 소피텔 호텔 밖에서는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날 아침 잠에서 깰 때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에서 임시 연구원으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당신이 블랙베리 휴대전화로 부인에게 보낸 e-메일 중 적어도 한 개가 UMP 사무실에서 읽혀졌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전에도 스트로스칸은 외무부에 있는 친구로부터 “정적(政敵)들이 당신을 스캔들로 흔들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FT는 “스트로스칸이 그의 블랙베리가 해킹당했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호텔 직원들의 행동도 석연치 않다. 호텔 측이 경찰에 성폭행을 신고한 것은 사건 발생 후 한 시간이 지난 1시31분이다. 이후 경찰이 출동했을 때 소피텔의 기술책임자인 브라이언 이어우드가 신원 미상의 한 남성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이 보안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외신들은 이번 사건의 배후에 아코르 그룹의 2인자인 자비에 그라프가 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라프는 이날 호텔에서 발생한 모든 비상 상황에 대한 책임자다.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내가 스트로스칸을 낙마시킨 주인공”이라고 주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이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에 보도되자 그는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그라프는 “사건 당일 저녁까지 어떤 보고도 받지 못했고, 이는 믿기 어려운 실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FT 보도가 나간 직후 스트로스칸 측 윌리엄 테일러 변호사는 성명을 내고 “스트로스칸의 정치적 맞수 세력(집권 UMP)이 그를 의도적으로 목표물로 삼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소피텔과 모회사인 아르코 그룹은 이러한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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